서울의 한 초등학교 입학 관련 가정통신문을 보니 ‘꼭 챙겨주세요’ 항목에 ‘파일 꽂이 또는 북엔드’라는 항목이 있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북엔드(bookend)를 ‘책버티개’라고 순화했다. 사진은 2017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1학년 학생들이 가정통신문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가정통신문은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는 공식적인 문서다. 학사일정부터 주의사항까지 교육과 관련한 주요 알림사항이 적혀 있다. 아이들과 보호자가 초·중·고 12년 동안 가장 자주 접하는 공식 문서이기도 하다.
올해 쉬운 우리말 쓰기 연재에서는 ‘과학관·천문대 속 우리말’과 더불어 ‘학교 가정통신문 속 우리말’도 함께 다뤄보고자 한다. 가정통신문 내용을 알기 쉽도록 순화하여, 일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공문서에 관한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공공언어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기사를 쓰기 위해 전국 초·중·고교에서 모은 학교 가정통신문을 톺아보니 코로나19 관련 공지사항이 많았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나눠준 ‘학교 교육과정 관련 실외 마스크 착용 세부기준 안내’ 가정통신문을 살펴보자. ‘실외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거나 50인 이상의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 ‘함성·합창 등 비말 생성이 많은 경우’라는 말에서 다중이용시설, 비말을 조금 더 쉽게 바꿔볼 수 있겠다.
다중이용시설은 불특정 다수가 출입하고 이용하는 시설을 말한다. ‘실내공기질 관리법’에 따르면 도서관·미술관·공연장·체육시설과 버스·철도·지하철·택시 등 대중교통, 쇼핑센터(대형마트·시장·면세점·백화점 등), 영화관, 대형식당, 대중목욕탕 등이 다중이용시설에 해당한다. 다중이용시설은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로 풀어 쓸 수 있겠다. 비말(飛沫)은 날 비, 물거품 말 자를 쓴다. 날아 흩어지거나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이른다. 비말의 순화어는 침방울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을 보니 ‘신학기 대비 코로나19 대응 및 예방수칙 안내’에서 ‘아프면 검사받고, 집에 머물며 고위험군(60세 이상, 기저질환자 등) 만남 자제하기’라고 돼 있다.
기저질환(基底疾患)은 어떤 질병의 원인이나 밑바탕이 되는 질병을 말한다. 대부분의 가정통신문이 보호자 대상으로 발송되지만, 세계적인 유행병이 도는 시기에는 관련 안내문과 공지사항을 더욱 알기 쉽게 풀어쓰는 게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도 좋을 듯하다.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활용하여 검사 실시(음성이면 등교, 출근 가능)’라는 문구에서 키트(kit)는 질병이나 바이러스 따위의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도구를 뜻한다. 키트의 순화어는 ‘꾸러미’다. ‘음성이면 등교’라는 부분에서는 ‘코로나19 음성’이 나온 경우의 결과 사진이나 그림을 함께 표시해주면 어땠을까 싶다.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가정통신문이 이해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한 교육청의 모바일 알림장 앱 서비스 이용 관련 통신문을 보니 ‘○○ 신청하기-배너 선택-로그인’이라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배너(banner)는 인터넷 웹페이지 화면에 나타나는 작은 사각형 형태의 알림 창을 말한다.
‘배너’의 순화어는 ‘막대광고, 띠광고’이다. 학생의 보호자가 젊은 부모일 수 있지만 인터넷 접근이 부담스러운 조부모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결혼이주여성, 결혼이주남성일 수도 있다. 보호자에게 장애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그림 주석을 사용한다든지, 점자 등을 활용한 가정통신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에 관한 공식 문서인 만큼 누구나 알기 쉬워야 하기 때문이다.
로그인(log-in)은 컴퓨터나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미리 등록된 사용자의 이름과 암호를 입력하는 일을 말한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를 보니 로그인 대신 ‘들어가기’ ‘접속’이라는 말을 순화어로 제안해두었다. 배너, 로그인, 팝업창(알림 창) 등은 인터넷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미 편하게 쓰고 있는 말이긴 하지만, 순화어를 함께 알아두면 그 뜻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경기도 한 중학교의 ‘학교 교육과정 관련 실외 마스크 착용 세부기준 안내’ 가정통신문. 다중이용시설은 불특정 다수가 출입하고 이용하는 시설을 말한다. 비말(飛沫)의 순화어는 침방울이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가정통신문을 보자.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보편)지원 사업 안내’에서 지급방식에 관한 항목을 보니 ‘바우처(국민행복카드 발급받아야 바우처 사용 가능)’라고 돼 있다. 바우처(voucher)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교육, 주택, 의료 따위의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때 정부가 비용을 대신 지급하거나 보조하기 위하여 내놓은 지불 보증서를 말한다. 문화부 발굴 행정 분야 전문 용어 표준화 고시 자료에는 바우처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상품권’ ‘이용권’을 쓰라고 돼 있다.
‘학교안전공제회 보호자 직접 청구 안내’ 가정통신문에서 청구 절차 항목을 보자. ‘보상범위 및 구비 서류 확인’에서 구비 서류의 뜻은 정확히 무엇일까? 구비(具備)는 있어야 할 것을 빠짐없이 다 갖춘 것을 말한다. 구비 서류는 한마디로 ‘빠짐없이 갖추어야 하는 서류’라는 뜻이다.
제출 서류 항목을 보니 ‘청구인 서명 날인하여 서류 제출’에서 ‘날인’이 어렵다. 날인(捺印)은 누를 날, 도장 인 자를 쓴다. 쉽게 말해 ‘도장을 찍음’이라는 뜻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날인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도장 찍음’을 쓰라고 돼 있다.
‘공정한 후기 고등학교 신입생 배정을 위한 가거주 근절 안내’ 가정통신문을 보자. ‘고등학교 진학과 관련하여 특정 학교 진학을 위한 가거주 또는 위장 전입 등이 매년 발생하여 이에 대하여 안내 말씀을 드리니…(후략)’에서 가거주(假居住)는 주민등록표상의 주소지에 실제 거주하지 않는 일을 말한다. ‘가거주’의 순화어는 ‘임시거주’이다.
단어와 문장을 집약적이고 경제적으로 쓴 뒤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통신문과 안내문 특성상, 말을 마냥 쉽게 풀어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주석이나 덧붙임 말을 달아두면 빠른 이해를 도울 듯하다.
한 고등학교의 ‘제6회 입학식 안내’ 가정통신문을 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입학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며 ‘유튜브 ○○고등학교 TV 실시간 스트리밍’이라고 돼 있다. 스트리밍(streaming)은 음악 파일이나 동영상 파일을 스마트폰 따위의 휴대용 단말기나 컴퓨터에 내려받거나 저장하여 재생하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일을 말한다. 요즘은 학생들이 ‘스밍’이라는 말로 줄여 쓰기도 한다. 스트리밍의 순화어는 ‘바로 재생, 실시간 재생’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입학 관련 가정통신문을 보니 ‘꼭 챙겨주세요’ 항목에 ‘파일 꽂이 또는 북엔드’라는 항목이 있다. 북엔드(bookend)는 세워놓은 책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물건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북엔드’를 ‘책버티개’라고 순화했다.
또 다른 한 초등학교 ‘예산편성 전 주민의견수렴을 위한 설문조사 및 예산토론방 참여 안내’ 통신문을 보았다. ‘○○교육청에서는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 의견을 수렴하여 예산에 반영함으로써 예산과정의 민주성을 증대하고자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에서 수렴(收斂)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의견이나 사상 따위가 여럿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하나로 모아 정리한다는 말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는 ‘수렴’과 ‘모아들임’을 함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예산토론방의 주제를 보니 ‘학교 미세먼지 저감 방안’ ‘자유학기(학년)제 운영 내실화 방안’ 등이라고 적혀 있다. 저감(低減)은 낮추어 줄인다는 뜻으로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저감 대신 순화한 용어 ‘낮추어 줄임’을 쓰라고 돼 있다. 각각 순화어를 적용하면 ‘학교 미세먼지 줄이기 방안’, ‘자유학기(학년)제 운영 실속화 방안’이 된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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