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엔 거대하고 까마득하게 높은 산이 있다. 그 이름은 수미산(Sumeru). 높이가 8만유순, 즉 80만㎞이다. 이로부터 남쪽으로 7개의 산과 8개의 바다를 건너면 ‘염부주’가 있다. 이곳은 부채꼴 모양의 대륙으로 너비가 7천유순에 이른다. 염부(앵두 모양의 과일이 열리는 열대지방의 나무)가 무성한 그곳의 다른 이름은 ‘사바세계’이고 인간이 사는 땅이다.
수미산 중턱에는 성곽이 있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하늘에 둥둥 떠 있다. 이곳에는 천왕이 산다. 동쪽 성곽에는 중국 당나라의 갑옷으로 중무장한 파란색 피부의 천왕이 있다. 양쪽 날이 번득이는 장검을 들고 동쪽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지국천왕이다. 그의 칼은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끊어낸다. 시기심과 욕망, 심지어 이데올로기까지 난도질한다. 그야말로 절대무기이다. 서쪽 하늘의 성곽에는 하얀 피부의 광목천왕이 산다. 천왕들 중 시력 제일이다. 부릅뜨지 않아도 우주의 끝까지 살필 수 있고 장애물이 있어도 투시한다. 그의 절대무기는 창과 탑이다. 창으로 악의 세력을 찌르거나 꿰어서 탑에다 봉인한다. 탑 속에는 태곳적부터 악령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어쩌다 열리면 끔찍한 재앙이 벌어진다.
이쯤에서 아이들은 반드시 묻는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사는 동네가 달라서 둘이 만날 일 절대 없다.” 아이들은 대체로 순순히 납득한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남쪽 성곽은 증장천왕이 사는 동네다. 그 또한 화려한 당나라식 갑옷을 뽐내고 무엇보다 붉은 피부가 인상적이다. 그의 손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 꿈틀댄다. 우리 문화권의 용은 뱀의 형태와 유사하다. 공룡 몸매에 박쥐 날개가 달려 있고 불을 내뿜는 것은 서양의 용이다. 동양의 용은 물의 신이어서 먹구름과 비를 몰고 온다. 여의주는 주인의 소원을 들어준다. 요술 램프의 지니(Genie)와 같다. 지니는 알라딘의 소원을 딱 세 번 들어주지만 여의주는 횟수 제한이 없다. 그래서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1984년부터 1995년까지 약 12년 동안 여의주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여의주의 신통을 일으키는 주문은 ‘바일라바다라 훔발타’라고 불교경전(법륜보참 권9)에 분명하게 적혀 있다. 여의주는 원래 용의 뇌 속에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입 밖으로 튀어나와 사바세계 어딘가에 숨겨졌는데, 용은 여의주가 있어야 완전체가 되고 신통을 부릴 수 있는 것이어서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여의주를 가진 자가 용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큰 강의 물줄기를 용이라고 생각했다. 한강의 하중도를 여의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북쪽의 다문천왕이 가장 매력적이다. 검은 피부에 커다란 비파를 타고 있다. 마치 흑인 재즈연주자가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듯하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북녘 하늘로 그가 연주하는 비파음이 파르르 떨리며 울려 퍼진다. 때로는 날카로운 비수이기도 하고, 때로는 죽어야 끝나는 영원한 춤을 부추기는 음악이 된다.
그렇다면, 천왕들은 무엇 때문에 살벌한 절대무기를 들고 수미산을 지키고 있는 걸까?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청동기 유목인에게 말은 훌륭한 음식이었다. 소나 양은 겨울 동안 눈을 파헤치거나 얼음을 깨고 풀이나 물을 찾지 못하는 반면, 말은 발굽으로 눈을 파헤치고 얼음을 깬다. 말은 겨울 동안 스스로 초원을 돌아다니며 먹고살 수 있기에 유목인에게 매우 유용한 겨울용 고기였다. 탈 수 있게 길들인 말은 한참 후의 일이다. 등 위로 올라타기에 말은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비교적 유순한 부계 혈통이 확립된 뒤 누군가 순종적인 말을 발견하고 재미 삼아 올라탔을 것이다. 유목인이 기마의 엄청난 효과를 알아차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대규모의 소떼나 양떼를 관리하는 새로운 차원의 목축이 가능해졌다.
서기전 3300년 이후의 한파로 유라시아의 초원 지대가 더욱 건조해지며 확장되었다. 청동기 유목인들은 가축 떼를 더 자주 더 넓게 이동시키고 먹이려 했다. 그들은 네 바퀴 수레만 있으면 초원 어디라도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찾아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막과 보급품을 가득 실은 네 바퀴 수레 덕분에 유목인들은 가축 떼를 이끌고 강변 골짜기를 벗어나 몇 달 동안 새롭고 드넓은 초원을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네 바퀴 수레는 곧 움직이는 집이었고 이것은 유목 생활의 혁명이었다. 특히, 우랄 지역 남쪽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초원 지대의 유목민들은 바퀴 위 생활을 제일 먼저 활용하고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그들은 네 바퀴 수레로 물이나 식량과 천막 등의 무거운 화물을 옮겼고, 자신들이 경영하는 초원을 순찰하거나 가축 몰이를 하거나 타 부족과의 교역 및 습격 전투에는 기마를 활용했다.
서기전 2100년, 이들은 최초로 전차를 개발한다. 고속 주행이 가능한 살 달린 바퀴가 등장한 것이다. 전차는 나무를 구부리거나 정확하게 다듬는 정밀 목공 작업의 놀라운 결과물이었다. 바퀴 테두리는 나무를 조립해 붙인 완벽한 원형이어야 하며, 하나하나 깎은 바큇살을 바깥쪽 바퀴에 뚫어놓은 구멍에 박고 여러 개의 끼움구멍이 있는 안쪽 바퀴통에 연결해 전체를 단단하게 고정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손 공구로 나무를 깎으며 눈과 손으로 가늠해서 만들었다. 전차는 당시 최첨단 하이테크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초원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판도는 급변한다. 전차는 굉음을 내며 빠르고 위협적으로 적진 속으로 달려들었다. 전차 조종사, 즉 전차사는 자루에 창을 가득 싣고 기마 궁수 또는 창기병과 대적했다. 전차 바닥에는 온몸의 힘을 가득 실어 창을 던질 수 있는 발판이 있었다. 상체의 힘만으로 한번 투창하면 끝나는 창기병은 전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궁수도 마찬가지다. 청동기 시대의 활은 약 1.5미터 길이였는데 말 위에서 활을 쏘려면 측면으로 몸을 틀어야 했다. 등자는 서기후 300년 무렵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시대 이후로 통나무로 보강된 토벽과 V자형의 해자와 망루가 있는 요새가 확산되는 것은 전차전이라는 전술적 혁신이 전투의 규모와 강도를 모두 높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원의 한파는 서기전 2000년 무렵 극에 달한다. 이로 인해 삼림지역이 후퇴하고 초지가 팽창했으며 습지가 줄어든다. 수레와 전차의 활용으로 광역화되고 전투력이 강해진 유목 집단은 자원이 있는 곳 근처에 장기간 거주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로 인해 각 부족 간의 거주지 쟁탈 전쟁이 일어났고, 이는 대대적인 ‘의자에 먼저 앉기 놀이’(game of musical chairs) 현상을 낳았다. 승리한 집단이 더욱 넓은 목초지를 선점하였고(의자를 먼저 차지하였고) 패배한 집단은 외부로 밀려났다. 청동기 유목민들의 대이동은 이때부터였다.
어느 날 전차를 탄 전사들이 페르시아에 나타났으니, 역사는 이들을 아리안(Aryan)이라 부른다. 부족 이름은 그들의 원고향을 밝혀준다. ‘Aryan’의 ‘Arya-’는 ‘서남쪽’을 의미하는데, 이들의 고향이 우랄 지역 남쪽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초원지대라는 뜻이다. 이들은 페르시아에 와서도 최초로 말을 길들였던 그들의 기원을 잊지 않는다. 사막 지형에서 말보다 쓰임이 많은 낙타를 길들인 것이다. 이들 중 낙타를 조련하는 데 특출한 능력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자라.우슈트라’(Zara.ùštra)이다. 고대 페르시아어로 ‘낙타를 다룰 수 있는 자’라는 의미이고 그리스어로 ‘조로아스터’, 독일어로 ‘차라투스트라’라고 읽는다.
조로아스터는 사막 기후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는 종교를 창건한다. 낮과 밤의 극심한 기온 차와 같이 조로아스터교에선 선과 악이 극렬하게 대립한다. 그리고 유일신이 등장하는데, 그 신의 이름은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이다. ‘지혜의 하느님’(Lord Wisdom)이란 뜻이다. 또 한 무리의 아리안족이 동진하여 ‘신두’(Sindhu)에 다다른다. 페르시아에선 ‘신두’를 ‘힌두’(Hindhu)라 불렀다. 큰 강, 즉 인더스강을 가리킨다. 전차로 인도를 정복한 아리안족의 ‘아후라’는 서서히 ‘아수라’(Asura)로 변화된다.
인도 신화의 아수라는 절대 악신이다. 아수라는 인드라(Indra)와 대립한다. 인드라는 모든 신들의 영웅이며 제왕이며 폭력적이고 거친 싸움꾼이며 무엇보다 벼락을 던지는 신이다. 그는 벼락, 즉 바즈라(Vajra)로 세상을 다스린다. 아수라에게는 여신 중 가장 어여쁜 딸이 있었다. 모든 신들의 왕, 인드라는 아수라의 딸을 강제 추행하고 아내로 삼아 버린다.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아수라는 함부로 벼락을 던지는 신에게 제대로 대항을 못 했다. 아수라의 마음 한구석에 원망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아수라의 원망은 계속 커졌다. 심장만 한 원망이 몸의 크기가 되고 사방으로 번지며 끝내는 우주를 가득 덮을 정도로 팽창한다. 그래서 밤하늘과 우주는 검은색이다. 아수라의 원망이 우주 공간 전체에 켜켜이 쌓여버렸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아이들이 순순히 듣고만 있지 않는다. ‘인드라 나쁜 놈!’, ‘아수라가 불쌍해~’. 어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아수라가 억울한 건데 왜 악신이고, 나쁜 짓을 한 인드라가 왜 착한 신인가요?” 후련한 답변을 못 하는 교사를 책망하며 아이들이 아우성친다.
빗발치는 항의를 뒤로하고 아수라를 칠판에 그린다. 이미지는 일본 나라시에 있는 1300년 된 고찰 고후쿠지(흥복사)의 아수라상이다. 일본의 국보로 8세기경의 조각이다. 아수라상은 석굴암에도 있고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복도에도 있지만, 원망하는 표정과 소년 아수라의 모습을 잘 살린 것은 단연 고후쿠지의 조각이다. 아이들은 아수라의 표정에 감정이입한다.
아수라가 수미산을 공격할 때면 온 세상이 요동치는데, 그 급박한 사정이 인간들의 세상인 염부주에서 관찰될 때가 있다. 일곱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 저 멀리 아득한 곳이긴 하지만 먹구름이 갑자기 몰려오고 마른벼락이 지축을 흔들고 장대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질 그때 염부주로 이어진 하늘이 잠깐 열린다. 올해 장마에도 인드라의 벼락과 아수라의 검은 기운과 증장천왕의 용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세상의 비밀을 이제 깨쳤다는 표정이다. 몇몇 아이들의 진지하고 해맑은 눈망울에 나는 자격지심이 들고 만다.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해야겠다.
수미산 상공에는 층별로 신들의 천궁이 있다. 1층엔 부처의 입멸 이후로 56억7천만년 뒤에 중생을 구제하는 미륵의 도솔천이, 2층엔 인드라의 도리천이, 3층엔 우주를 순조롭게 운행하는 법칙이 신격화된 브라만(Brahman)이 산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정병의 긴 목이 걸려 있고 그 속엔 존재를 생성하는 ‘불사의 물’ 감로수가 있다. 제일 위층 펜트하우스엔 스스로 깨닫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절대 지존 부처가 산다.
그리고, 수미산 아래 지하세계에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아가고 있다. 쇠로 된 금륜, 물로 된 수륜, 바람으로 된 풍륜이 그것이다. 금륜은 지상과 천상에서 명을 다한 모든 존재의 주검에서 딱딱하거나 구체적인 물질만을 빨아들인다. 수륜은 주검에서 액체 상태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풍륜은 바람이나 공기와 같은 비가시적인 존재나 추상적인 것들을 빨아들인다. 세 개의 수레바퀴가 빨아들인 것들은 바퀴가 돌아가며 재조합되고 그 결과 뜻밖의 것으로 새롭게 탄생되는데,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 윤회로 거듭난 것들은 온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사찰의 가람배치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한 것이다. 절에 가면 제일 먼저 일주문이 나오는데 수미산 입구에 들어선 것과 같다. 다음의 천왕문은 수미산의 중턱 즈음이고 이어 불이문에 들어서면 신들의 천궁에 도착한 것이다. 그 구역엔 미륵전과 죽음 이후의 지하세계를 보살피는 지장전이 있고 가장 큰 건물인 대웅전에는 부처와 함께 좌우로 브라만, 즉 범천과 인드라, 즉 제석천이 자리한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수미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해마다 먹구름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계절이 되면 나를 보고 키득키득 웃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들은 수미산 이야기를 기억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표정은 딱 이렇다. ‘선생님 구라에 더 이상 안 속습니다. 저 이제 고등학생이라고요~’ 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곤 “아수라~ 아수라~” 하면서 지나간다.
나도 따라 미소 지을밖에.
글·그림 이우학교 노길상 미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