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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혐오’는 남의 일? 함께 ‘대항표현’ 만들어봐요

등록 2022-06-28 08:26수정 2022-07-18 18:26

미디어 속 차별·혐오 살펴보는 수업들
혐오표현에 맞서는 프로젝트 수업
‘나’ 인식한 뒤 ‘타인’ 이해하게 돼
영화 통해 ‘대항 내러티브’ 만들고
편견이 차별로 이어지는 과정 살펴봐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 아니죠”

대전 보문중 학생들이 시청자미디어재단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대전광역시교육청 주최 ‘찾아가는 미디어 클래스’에 참여한 모습. 김상은 강사 제공
대전 보문중 학생들이 시청자미디어재단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대전광역시교육청 주최 ‘찾아가는 미디어 클래스’에 참여한 모습. 김상은 강사 제공

“‘잼민이’요! 유튜브 댓글에서 ‘잼민이’가 왜 깝치냐고 했어요.”

“‘틀딱’, ‘페미충’도 많이 써요. 현실에서는 거의 안 쓰고, 유튜브나 웹툰에서요.”

“일상에서 여러분이 듣거나 쓰게 되는 차별·혐오표현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대답이다. 필자는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라는 책으로 청소년들과 만날 때마다 이들의 말과 행동, 생각에 미디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실감한다. ‘미디어 속 차별·혐오 문제를 다루는 수업은 없나?’ 그때마다 이런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나’를 발견하고, ‘타인’도 바라보는 미디어 수업

“나는 누구일까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적어보세요.”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대전 지역 학교에서 미디어교육을 하는 김상은 미디어교육 강사의 수업은 ‘자기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가 하는 ‘청소년 주도 온라인 혐오표현 대항 프로젝트’ 수업(이하 프로젝트)은 ‘2021 미디어교육 우수사례 공모전’(시청자미디어재단 주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전 지역 중학교 자유학기제(구봉중학교),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방학 미니캠프(동방여중, 동대전고)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다.

학생들은 ‘나를 설명하는 단어’를 써보며 내가 경험한 고정관념(신념)이 편견(부정적 감정)으로, 이 편견이 차별(행동)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본다. 김 강사는 “한 예로 ‘여자는 치마를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이 ‘바지를 즐겨 입는 여자는 여자답지 못하다’라는 ‘편견’으로, ‘치마 입지 않은 여자를 보면 혀를 찬다’는 ‘차별’로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제 얘기도 해요. 저는 말괄량이 같은 아이였는데 그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을 심어주니까 자꾸 위축되었다는 사연이죠. 청소년기 주변 시선 탓에 자신을 부족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위축되어 있음을 깨달으면, 다른 이에 대해 내가 가졌던 편견도 쉽게 발견하죠. 나를 인식한 뒤엔 타인을 이해하는 활동으로도 확장합니다.”

대전 가오중 학생들이 시청자미디어재단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대전광역시교육청 주최 ‘찾아가는 미디어 클래스’에 참여한 모습. 김상은 강사 제공
대전 가오중 학생들이 시청자미디어재단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대전광역시교육청 주최 ‘찾아가는 미디어 클래스’에 참여한 모습. 김상은 강사 제공

영화 스토리 이어가며 ‘대항 내러티브’ 만들기도

김 강사는 수업 때 학생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편견 등을 미디어를 활용해 역으로 깨보자”고도 제안한다. 그의 수업에는 영화를 텍스트 삼아 이른바 ‘대항표현’(혐오표현에 맞대응함으로써 혐오 현상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만들어보는 과정도 있다. 부당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 이야기를 놓고 다음 장면을 기획, 제작해보는 식이다.

1등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리는 엄마의 닦달과 수영 코치의 체벌로 힘들어하는 수영 선수 ‘준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4등>을 소재로 학생들이 만든 대항표현 결과물은 놀랍다. 학생들은 코치가 어린 시절 체벌을 경험했던 회상 장면을 넣고, ‘선생님도 이렇게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행복하셨나요?’라고 질문했다. 이른바 ‘대항 내러티브’를 창조해낸 것.

흔히 차별·혐오 앞에선 침묵(회피) 또는 똑같은 폭력으로 대응하기 쉽다. 학생들 역시 처음엔 주인공이 코치에게 똑같이 힘을 행사하는 장면을 설정했다. 김 강사는 “감정(폭력) 대 감정으로 대응하거나 문제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을 고민해볼 것을 권해봤다”고 설명했다.

‘대항짤’ 만들기 활동으로 ‘사회적 연대’ 경험

“차별 금지! 동양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혐오표현도 폭력, 말도 칼이 될 수 있습니다.”

2020년 경기 고양 대화중 학생들이 만든 대항표현 이미지(이하 대항짤) 속 문구들이다. 이는 최은옥 국어 교사가 진행한 ‘대항짤로 혐오에 대항하기 수업’(대항 수업)에서 탄생했다.

‘2021 미디어교육대상’(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최 교사는 미디어에 대한 관심으로 2012년 전국국어교사모임 매체연구회에 가입해 뜻이 맞는 동료 교사들과 공부도 하고 책도 집필하는 등 미디어 리터러시(이해)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카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총 6차시 대항 수업에선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인가?’ ‘피해자 입장은?’ 등 차별·혐오표현 현상을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질문을 학생들 앞에 던진다. “아무리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 해도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권리까지 침범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닌 범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틀딱충’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 억울할 것” 등 학생들은 생각을 정리하며 대항표현 및 대항짤을 만들어본다.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시대에 ‘사회적 연대’의 의미로 대항표현을 고민하고, 이를 실천해보는 과정이다. 최 교사는 “차별·혐오의 반대말은 ‘평등’ 혹은 ‘애정’이 아닌 ‘소통’이라고 생각한다”며 “나와 다른 타인, 사회적 소수자와도 소통하려는 민주적인 자세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업 후 학생들이 일상에서 혐오에 대응한 실제 사례도 흥미롭다. 국어과 활동 중 ‘틀린 맞춤법’ 사례를 웹툰 속에서 발견한 학생들이 댓글로 이를 지적하자 일부 네티즌들은 ‘잼민이’ ‘ 급식충’ 등 혐오표현들을 쏟아냈고, 이에 학생들이 대항표현으로 되받아쳤다는 일화다. “여러분도 학창 시절에 급식을 드셨을 텐데, 이런 표현을 들었다면 기분이 어떠실까요?”

천안 불당중학교 매체비평 동아리 학생들이 글쓰기 활동을 하는 모습. 한나람 교사 제공
천안 불당중학교 매체비평 동아리 학생들이 글쓰기 활동을 하는 모습. 한나람 교사 제공

차별·혐오 낯설게 보는 책·영상·오디오 활용도

최근엔 교사 연수에서나 교사들 사이 사례 나눔을 통해 차별·혐오 문제를 다룬 콘텐츠도 공유되고 있다. 이를 교과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에 발 빠르게 적용하는 교사들도 있다.

강원도 홍천 내면고 윤재오 국어 교사는 지난해 ‘언어와 매체’ 수행평가에 교육방송(EBS)의 유튜브 웹예능인 <딩동댕 대학교> ‘탈모 편’ 영상, 네이버 라디오 플랫폼에 올라오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오디오 클립, 책 <안전하게 로그아웃> 등을 활용했다. 이런 자료들을 살펴본 뒤 ‘유튜브와 텔레비전에서 차별과 혐오 요소 찾아 분석하기’ ‘나만의 인권 선언문 만들기’ 등으로 이어지는 7차시 수업이다.

올해는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통해 학생들이 소수자 관련 책을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이끄는 중이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뭐든 다 배달합니다> 등이 대표적인 책이다. 그는 “‘차별과 혐오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듯 장애인, 난민 등을 실제로 만나 보지 못한 아이들은 미디어가 묘사하는 일면만으로 그들을 접하고 평가하기 쉽다”며 “책을 통해 이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간접적으로나마 깨닫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 불당중 한나람 국어 교사는 매체비평 동아리 학생들과 유튜브 영상 ‘편견 가득 드라마 이 대사 바꾸자, 쫌’, 책 <미디어 리터러시 쫌 아는 10대> 등을 활용해 ‘미디어에 감춰진 편견, 차별·혐오 현상’을 다뤄봤다. 학생들은 모둠별 주제를 정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에 “드라마에서 남자만 부자로 나오는 것이 이상했다” “드라마나 영화 송출 시 성·인종에 대한 편견이 있는 대사와 장면을 규제하면 어떨까?” 등 다양한 생각을 펼쳐놓기도 했다. 한 교사는 “일상 깊숙이 자리한 미디어 문화 속에서 아주 작은 것이나마 이상하고 불편하다 싶은 점을 포착하는 경험을 제공해보자는 뜻으로 준비해본 활동”이라고 소개했다.
대화중학교 학생들이 만든 ‘대항짤’. 최은옥 교사 제공
대화중학교 학생들이 만든 ‘대항짤’. 최은옥 교사 제공

한편, 미디어 속 차별·혐오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때 이를 인권·시민교육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의 ㄱ고교에 근무하는 한 사회 교사는 “현재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가짜뉴스 감별에만 초점을 두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인권교육 차원의 다양한 사례들이 공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청연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저자 carax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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