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윤석열 정부가 유·초·중·고 교육비의 주요 재원으로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의 용처를 고등교육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주무부처인 교육부가 돌연 태도를 바꿔 침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기획재정부의 교부금 삭감 논리를 조목조목 반대했던 교육부가 새 정권 눈치를 보느라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6일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과 기획재정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행법상 내국세의 20.79%를 배정받는 교부금의 칸막이를 열어 고등교육이나 직업교육에도 쓸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학령인구 감소 등을 고려해 교육 부분 간 균형 있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재정의 약 70%를 차지하는 교부금의 용처를 고등교육까지 확대하면, 유·초·중·고 교육 예산이 줄어드는 셈이어서 보수·진보 교육감은 물론 교육부와 교원단체도 반대해 온 사안이다.
교육부는 경제정책방향 발표 뒤 나흘이 지난 20일까지도 흔한 설명자료나 반박자료조차 내지 않은 채, 문재인 정부 때와 달리 ‘침묵’을 이어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재부와의 협의에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때까지는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정소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교육부가 뒷짐만 지면서 경제부처의 논리가 다 맞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계에서는 새 정권 들어 ‘교육부 폐지론’이 불거져 교육부가 과도하게 위축돼 있다고 의심한다. 더욱이 교육부에 힘을 실어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자리마저 ‘공석’인데다, 박순애 후보자가 임명되더라도 교육이 아닌 공공기관 경영평가 전문가라는 점 역시 교육부의 ‘돌변’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재부와 ‘장외여론전’을 펼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교부금 개편 논리를
반박해왔다. 오석환 교육부 기획조정실장(당시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지난 1월19일 열린 ‘지방교육재정 바로 알기’ 백브리핑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 없이 교부금 일부를 고등교육에 그냥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교육부는 교육재정 수요에 학생 수보다 학교와 학급(시설비·기관운영비 등), 교원수(인건비)가 훨씬 큰 영향을 끼친다고 반박했다. 2001~2021년 학생수가 250만명 줄긴 했으나, 오히려 학교는 1716곳, 교원은 9만5천여명이 늘었다. 또 시도교육청 중장기 학교 신설 계획 조사 결과, 3기 신도시 개발 등에 따라 앞으로 576곳의 학교가 신설돼야 한다. 지역 황폐화 우려로 인해 도농 지역의 작은 학교 통·폐합도 쉽지 않다. 특히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고 나면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과목을 위해 교원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재정당국은 교부금 이월액(2020년 2조7244억원)과 불용액(1조6626억원)을 문제 삼지만, 교육부는 “이월액 대부분은 겨울방학에 집중되는 학교 공사 시설비”이며 “불용액은 낙찰차액 등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금액으로 다음연도 세입재원으로 편성·활용된다”고 강조해왔다. 또 17개 시도교육청이 운용 중인 ‘재정안정화기금’(2020년 말 적립액 2조3천억원)은 “세수 감소 시기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남는 재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전교조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어 “그동안 학생 수가 줄었지만 학급 수와 학교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며 “질 높은 공교육 실현을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 상한제(20명) 현실화를 위한 교육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역시 입장문을 내 “학교회계의 대부분은 인건비, 시설비, 기관운영비 등 경직성 예산”이라며 “(고등교육에 교부금을 떼어주고 유·초·중·고) 교육예산을 축소하면 학생들에게 투입될 예산부터 삭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총 설명을 종합하면, 전국 초·중·고에는 학급당 학생 수가 30명 이상인 과밀학급이 2만개가 넘고 건물의 40%는 지은지 30년이 넘은 노후 건물이다. 학교 2곳 가운데 1곳가량은 아직 석면이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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