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강암은 토목, 건축 등의 재료로 쓰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암석이다. 화강암의 순우리말(고유어)은 ‘쑥돌’이다. 편광은 ‘쏠림빛’이라고 바꿔 쓸 수 있겠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 5월29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립어린이과학관을 찾았다.
2017년 12월에 문을 연 이곳은 감각놀이터, 4차원(4D) 영상관, 천체투영관, 하늘마당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과학교실, 천문 프로그램을 비롯해 과학 해설사와 함께 전시물 속 과학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알아보는 주제 해설 시간도 있다.
하늘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에는 한국 과학사, 오른쪽에는 서양 과학사의 굵직한 발견들을 시대 순서에 따라 써두었다. 측우기, 금속활자, <종의 기원> 등 교과서에서 한번씩은 보고 들었던 내용이라 눈길이 갔다.
2층 전시실 앞을 지나자 ‘사이언스 랩’이라는 말이 보였다. ‘랩’은 요즘 기업에서도 참 많이 쓰는 말이다. 랩은 실험실을 뜻하는 ‘래버러토리’(laboratory)의 줄임말이다. 랩의 순화어는 ‘실험실’ 또는 ‘연구실’이다. ‘사이언스 랩’은 ‘과학실험실’로 쓰면 누구나 쉽게 그 뜻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암석을 만지고 살펴볼 수 있도록 여러 도구를 마련해둔 곳으로 들어갔다. 어린이과학관답게 그림이 알록달록, 글씨가 큼직큼직해 보기 편했다.
관찰 방법에 대한 설명에서 “테이블에 놓인 화강암, 편마암, 석회암 중 하나를 골라 색깔, 결정, 줄무늬 등의 겉보기를 관찰해요” “조암광물을 찾아 암석 옆 빈칸에 놓아요” “암석 박편 살펴보기’ ‘편광현미경의 버튼을 눌러 조암광물의 박편을 관찰해요”라는 말이 보였다.
화강암은 토목, 건축 등의 재료로 쓰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암석이다. 화강암의 순우리말(고유어)은 ‘쑥돌’이다. 건축용어 사전에도 실린 말이다. 화강암이라는 한자말에 밀려 순우리말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미 입에 붙은 한자말을 버리고 갑자기 쑥돌이라 바꿔 부르자는 게 아니다. 과학관은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공적인 교육 현장이다. 쉬운 우리말 표현을 자연스레 만날 수 있도록 이런 곳의 설명문에서만큼은 ‘화강암(쑥돌)’이라는 식으로 표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관은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공적인 교육 현장이다. 쉬운 우리말 표현을 자연스레 만날 수 있도록 이런 곳의 설명문에서만큼은 ‘화강암(쑥돌)’이라는 식으로 표기하면 어떨까.
암석 박편에서 암석은 <행정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바위’라고 쉽게 쓸 수 있다. 박편(剝片)은 ‘벗길 박’자에 ‘조각 편’자를 써서 벗겨져 떨어진 조각을 말한다. 박편의 순화어는 ‘얇은 판’ 또는 ‘얇은 조각’이다.
조암광물(造巖鑛物)이라는 말도 눈에 들어왔다. 마침 7살 아이와 함께 과학관을 찾은 보호자가 있어 설명문 가운데 어려운 말은 없는지 물었더니 “몇 군데는 뜻을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진형(39)씨는 “조암광물이나 편광 같은 말은 아이에게 바로 설명해주기 어려워 함께 뜻을 찾아보기도 했다”고 한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 과학 용어는 원래 어려운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때는 크게 관심이 없어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아이에게는 자세히 설명해주고 싶은 게 또 부모 마음이죠.(웃음)”
조암은 바윗돌을 이룬다는 뜻이다. 암석을 구성하는 작은 알갱이들을 조암광물이라고 한다. 편광현미경(偏光顯微鏡)은 편광으로 광물의 구조를 관찰하는 데 쓰는 현미경이다. 두 개의 니콜프리즘으로 이루어진 인조 편광판이 있고, 재물대가 회전하게 돼 있다. 편광은 ‘쏠림빛’이라고 바꿔 쓸 수 있겠다. 편광현미경의 비슷한 말로는 광물현미경, 암석현미경이 있다. ‘니콜프리즘’과 ‘재물대’도 어렵게 느껴진다. 이런 말은 니콜프리즘(영국의 물리학자 니콜이 만든 방해석 편광프리즘), 재물대(관찰 재료 올림판)처럼 주석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소리의 높이와 크기가 같아도 소리를 내는 악기의 종류가 다르면 다른 소리가 난다. 악기마다 공기의 떨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학에서 ‘소리의 맵시’라고 한다. 건반을 밟거나 버튼을 눌러 마림바나 트럼펫을 연주하고 스틱을 두드려 전자드럼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모습.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암석의 생성 과정을 그림으로 쉽게 표현해둔 점이 좋았다. 풍화, 침식 등의 용어를 순화한 표현도 있으니 참고해보자. 풍화는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햇빛, 공기, 물, 생물 따위의 작용으로 점차 파괴되거나 분해되는 일을 말하는데, ‘삭음’으로 순화할 수 있다. 침식은 ‘깎임’이라는 말로 쓸 수 있다.
광물 구분법에 대한 설명을 보니 ‘광물은 저마다 독특한 성질(색, 조흔색, 결정형, 쪼개짐, 굳기 등)을 갖고 있다’라고 돼 있다. 조흔색(條痕色)은 하얀 도자기 판에 광물을 긁었을 때 보이는 광물 특유의 가루 색을 말한다. 긁거나 그었을 때 보이는 색이니 조흔색이라는 어려운 말보다는 ‘그음색’이라는 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 동선을 따라 주요 조암광물의 특징을 살펴봤다. 기억조차 어렴풋한 석영과 장석, 흑운모와 휘석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흑운모에서 운모(雲母)는 화강암에 많이 들어 있는 규산염 광물의 하나라고 한다. 운모는 ‘돌비늘’이라고 하니 뜻이 쉽게 다가온다. 흑운모는 ‘검은돌비늘’이다. 검은돌비늘은 전기 절연체에 활용된다.
동물의 골격 구조를 설명한 곳으로 이동했다. 양의 골격 구조를 나타낸 그림을 보니 부위마다 쉬운 우리말을 먼저 달아두었다. 꼬리뼈(미추), 목뼈(경추), 위팔뼈(상완골), 넙다리뼈(대퇴골), 턱뼈(하악골) 등이라고 써두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옥상인 하늘정원으로 올라가면 천체관측소가 있다. 천체관측소 벽면에 붙어 있는 사수자리 성단(星團), 나선 은하(螺旋銀河)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성단은 ‘별무더기’ ‘별송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나선 은하는 공 모양의 중심부와 그 주위에 나선 모양의 팔이 감긴 것처럼 보이는 은하를 말한다. 은하계와 안드로메다은하 따위를 이른다. 나선은 ‘소용돌이 선’을 말하고, 은하는 천구(天球) 위에 구름 띠 모양으로 길게 퍼져 있는 수많은 천체의 무리를 말한다. 둥글게 보이는 밤하늘을 학문적으로 ‘천구’라 부른다.
1층으로 걸어 내려오니 오는 15일 예정된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을 기원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아이들은 “누리호야 힘내!” “우주로 높이 날아올라! 파이팅!” 같은 쪽글을 정성스레 눌러쓴 뒤 누리호 사진에 힘껏 붙여주었다.
행성(行星)은 ‘떠돌이별’이라는 쉬운 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별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을 행성이라고 한다.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처럼 하늘에 붙어 있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떠돌이별’이라는 동화 같은 말이 행성의 처지를 잘 나타내주어 의미가 쉽게 다가온다.
행성 말고 항성(恒星)도 있다. ‘천구 위에서 서로의 상대 위치를 바꾸지 아니하고 별자리를 구성하는 별’을 말한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 가운데 행성, 위성, 혜성 따위를 제외한 별 모두가 항성에 해당한다. 북극성, 북두칠성, 견우성, 직녀성 등의 항성은 ‘붙박이별’이라는 아름다운 말로도 바꿔 쓸 수 있다.
과학관 층층에 놓인 실험 도구를 이리저리 만지며 눈을 반짝이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싱그러웠다. 1층으로 걸어 내려오니 오는 15일 예정된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을 기원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커다란 누리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응원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누리호야 힘내!” “우주로 높이 날아올라! 파이팅!” 같은 쪽글을 정성스레 눌러쓴 뒤 누리호 사진에 힘껏 붙여주었다.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교수 김형주
공동기획 |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