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지어져 펜션같은 느낌을 주는 딩가동 2번지의 외관. 임학현 작가 제공
청소년들에게 ‘공간’은 학교 또는 학원이다. 노래방이나 피시방, 스터디카페는 청소년들의 ‘즐겨찾기’이지만 용돈의 한계로 맘껏 가기는 어렵다. 지자체들이 또래들과만 오롯이 어울리고 싶은 청소년들만을 위한 전용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놀이부터 수다, 휴식부터 공부까지 다 할 수 있는 시설도 있고, 해외교류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도 있다.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되면서 이 시설을 찾는 청소년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딩가동 1번지·2번지·3번지…
‘딩가동 1번지’는 2년 전 서울 중랑구청이 신내1동에 세운 청소년 전용공간이다. ‘자유롭게 딩가딩가 놀고 가라’는 뜻을 담은 공간으로 계획 단계부터 청소년과 지역주민들, 디자인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지은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이 건물에서 아이들은 보드게임도 하고 탁구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모임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다.
지하 1층의 주제는 ‘다양한’으로 포토존, 당구장, 미니축구 등의 게임 공간과 노래방 존이 있다. 지상 1층은 ‘활기찬’을 주제로 영화 감상은 물론 강연 및 회의, 보드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상 2층은 ‘비밀스러운, 아늑한’을 주제로 소규모 독립 휴식공간과 모임 공간, 서가, 의견 공유의 장인 메모지 존으로 이뤄져 있다.
청소년 운영위원회가 주기적으로 회의를 해 공간 운영부터 프로그램 기획까지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그림을 좀 그리는 아이들은 또래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마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마술 강의를 하기도 하고, 비즈공예에 자신이 있는 아이는 비즈공예를 선보이기도 하는 등 청소년들의 자발적 재능기부 활동이 활발하다. 지난해 11월 열린 첫돌 축제도 청소년들이 직접 네일아트, 페이스 페인팅, 전통놀이, 작품전 등 20여가지 다채로운 게임과 체험을 준비해 지역주민과 함께 신나게 잔치를 벌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청소년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공주영(17)양은 “공간 운영이나 프로그램, 축제까지 모두 청소년들끼리 회의하고 결정하고 이끄는 게 너무 재밌고 보람이 있어서 계속 참여하고 있다”며 “딩가동은 뭐든 다 할 수 있는 ‘할머니 시골댁’ 같은 곳이자 ‘우리들만의 아지트’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면목2동에 문을 연 ‘딩가동 2번지’는 내외부 모두 목재로 지어져 도심 속 펜션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1층은 회의실, 영화감상, 보드게임 등의 다목적 놀이공간으로, 2층 다락 공간은 휴식과 유튜브 크리에이터 공간으로 꾸며졌다. 특히 작은 창으로 하늘을 보며 수다를 떨 수 있는 다락방은 아이들의 인기 아지트다. 면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정원에는 텃밭과 포토존이 있다. 나눔장터와 길냥이 돌봄 프로젝트 등 각종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기획·실천하는 딩가동 2번지의 청소년 운영위원들의 주인의식도 남다르다. 요즘은 이달 28일에 열리는 축제를 앞두고 한창 바쁘다. 이은비(16)양은 “이곳은 학교에서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문화체험부터 멘토링까지 학교에서 할 수 없는 색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며 “올해는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되어 훨씬 더 많은 체험부스를 갖춘 축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이 기획하고 설계하는 그들만의 아지트 ‘딩가동’은 계속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딩가동 3호와 5호는 올해 10월에 묵동과 망우동에 문을 열 예정이고, 4호는 12월에 면목동에 문을 열 예정이다.
전주 청소년들의 아지트, 우주로 1216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3층에 위치한 전국 최초의 트윈세대(12∼16살) 전용 공간으로, 전국의 지자체와 교육기관이 벤치마킹을 하러 발걸음이 줄을 잇는 곳이다. ‘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생활SOC 아이디어·우수사례·홍보영상 공모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도서관을 떠나가는 청소년들이 도서관에서 계속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2019년 말 만들어졌으며,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여는 등 이 세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공간은 △소통을 위한 ‘톡톡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쿵쿵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슥슥존’ △사색의 공간인 ‘곰곰존’ 등 4개 경험존으로 구성돼 있다. 슥슥존에서는 3D펜, 각종 지류, 드로잉 도구, 다양한 만들기 재료 등을 구비해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원한다. 특히 매월 첫째·셋째 주 토요일에는 3D펜 강사가 상주해 자유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보는 체험을 제공하고, 둘째·넷째 주 토요일에는 뜨개질 강사가 상주해 초급부터 중급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뜨개 굿즈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최고 수준의 촬영 장비와 편집 프로그램을 갖춘 동영상 제작실 ‘슥튜디오’에서는 원하는 영상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볼 수 있고, 비치되어 있는 건반악기와 기타를 자유롭게 연주해도 된다. 쿵쿵존은 프로젝터, 스크린, 음향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공연이나 밴드 활동을 원하는 청소년들의 공연 무대로 개방하고 있다.
우주로 1216의 내부 모습. 우주로 1216 제공
서가에는 트윈세대의 관심과 흥미를 반영한 도서들이 1500여권 채워져 있으며 다양한 주제의 도서 전시회와 지역 예술 작가와의 만남, 청소년들이 자신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진행하는 강의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 역시 청소년들이 공간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 박여은(12)양은 “올해 초 친구 따라 왔다가 책도 읽고 보드게임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등 너무 재미있는 놀이터여서 운영위원으로 자원하게 됐다”며 “운영위원으로서 앞으로 이곳을 널리 알리는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서영(12)양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니까 내가 우주로를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보람이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 손으로 직접 기획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다문화에 관심 많다면, 미지센터
다른 나라 문화나 문화다양성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라면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미지센터)를 눈여겨보자. 올해로 설립 22주년을 맞은 미지센터는 서울시가 설립하고 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시설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국제교류 특화 시설이다. 국내에서 다문화체험을 하거나 국외 탐방을 지원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인문적 소양과 상생의 지혜를 갖춘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모집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몽골 아동을 위한 동화 창작 프로젝트 몽-구르다’로, 몽골 현지인 강사로부터 몽골 문화를 배우고, 현직 동화 작가로부터 동화 창작을 익힌 뒤, 몽골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드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2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희망의 마스크’ 프로그램은 온라인 교육을 받은 뒤 마스크를 제작해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제출하는 활동이다. 이렇게 제작된 마스크는 인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으로 보내지며, 참여한 청소년은 자원봉사 활동 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어서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외국인들과 함께 요리 실습을 하는 모습. 미지센터 제공
원래는 아프리카부터 유럽·아시아·남미까지 다양한 외국인 강사들로부터 역사와 문화를 배우면서 요리 등을 실습도 해보고, 중국과 일본 등으로 탐방을 나가서 현지 청소년과 교류하는 프로그램들이 왕성하게 운영되었지만, 코로나19로 지난 2년간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 그래도 온라인으로 타이(태국) 요리도 배우고, 인도 요가도 체험하고, 이탈리아 식사 예절도 접하는 등 해외문화 실습 프로그램이 알차게 진행됐다. 특히 일본, 이란, 프랑스 청소년들이 직접 등장해 패션과 뷰티를 이야기하고 대만, 일본 현지인들이 인생샷 스팟을 알려주는 등 랜선으로 떠나는 해외교류 유튜브 채널인 ‘미지센터’는 청소년 시설 유튜브 중에는 가장 높은 구독자 수와 조회수를 자랑한다.
문화교류나 세계시민의식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모집해서 활동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만 15~24살 청소년 5명 이상으로 구성된 동아리라면 매년 초 누리집을 참고해서 신청하고 선정되면 일정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전성우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프로그램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대신 참여생들을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청소년들로 확대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며 “올해부터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문화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미지센터 제공
학교밖 청소년이라면, 꿈드림
학교밖 청소년이라면 꿈드림을 두드려보자. 9살부터 24살까지 학교밖 청소년은 누구든지 전국 200여곳의 꿈드림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의 거주지와 가까운 꿈드림은 누리집(www.kdream.or.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는 △상담 지원 △교육 지원 △직업체험 및 직업교육훈련 지원 △자립 지원 △건강검진 등이다. 마음이 힘든 청소년들은 심리나 진로, 가족관계와 친구관계 등과 관련해서 대면·비대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검정고시로 학력을 취득하길 원하거나 대학에 입학하거나 학교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청소년에겐 필요한 학습적 지원을 제공한다. 취업을 원하는 경우엔 진로탐색과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진로를 결정하고, 취업훈련 기관과 연계해 일자리로 연결해준다. 자신의 재능이나 특기를 키우고 싶은 아이들에겐 문화예술 등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10대 특성에 맞춘 건강검진 서비스도 무료로 지원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서비스 외에도 누리집에서는 지역 꿈드림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프로그램을 상세히 검색할 수 있다. 학교밖 청소년에 특화한 대입 설명회부터 배우가 되기 위한 진로 체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한 근로권익교육, 댄스나 스포츠 동아리 활동, 숲체험과 단합대회까지 청소년들의 필요에 맞춤한 프로그램이 풍성하다. 오는 27일에는 유튜브에서 ‘온라인 꿈드림 축제’가 열린다. 학교밖 청소년들의 재능과 끼를 자랑하는 무대와 함께 진로와 성공, 도전과 실패 등에 대한 강연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