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충북에너지고등학교 강수진 교사, 이동민양, 범수아양, 이태욱군이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를 마친 뒤 창업동아리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수진 교사 제공
“특허를 3개 보유하고 있어요. 누구보다 ‘만들기’에 진심인 친구들끼리 매일 밤낮으로 연구하고 개발한 결과랍니다.”
살면서 하나 갖기도 어려운 특허증을 세 개나 보유한 고등학교 동아리가 있다. 차세대 전지분야의 공립 마이스터고등학교인 충북에너지고등학교 동아리 ‘엘아이엠’(L.I.M.) 학생들 이야기다. 동아리 이름인 엘아이엠은 ‘렛 잇 메이킹’(Let It Making)의 약자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설계한 뒤 직접 만들어보자’는 슬로건으로 2018년 결성했다.
이 학교 3학년 이동민양이 개발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 쇼핑 안경, 범수아양이 만든 비상용 망치 안전벨트, 졸업생이 출원한 태양광 스마트팜까지 특허 종류도 다양하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2학년 때 이미 대기업에 취업이 확정된 이태욱군도 만만치 않은 ‘스펙’을 갖췄다.
지난 13일 오전 충북에너지고등학교 이동민양, 범수아양, 이태욱군, 강수진 교사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교생들이 ‘이유 있는 발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시각장애인들 위해 발명했어요”
“시각장애인이 편의점, 마트에서 과자나 음료수를 고를 때 제품명을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점자 표기가 되어 있어도 그냥 ‘음료’ ‘과자’라고 적혀 있는 수준이지 자신이 원하는 정확한 물건을 살 수가 없더라고요.”
창업동아리 엘아이엠 회장인 이동민양이 ‘시각장애인 인공지능 쇼핑 안경’을 개발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제품에 점자가 새겨져 있어도 ‘음료’라고만 돼 있어 콜라나 사이다 등 종류를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발명 계기가 됐다.
고민 끝에 이양은 안경에 카메라를 달았다. 이 안경에는 스피커와 음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이어폰도 달려 있다. 시각장애인이 이 안경을 쓰면 인공지능형 카메라가 인식을 해서 자신이 고른 과자나 음료 이름이 무엇인지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이차전지를 전공하고 있는 이양은 “제품 개발을 위해 자료를 찾다가 스마트폰으로 인한 노안 급증 기사를 봤다”며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눈이 안 좋아진 어르신, 노안이 온 성인에게도 유용한 제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발명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특허증을 받았을 땐 실감이 잘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셨어요. 십대에 벌써 지식재산권을 갖게 됐다고요.(웃음)”
차세대 전지 분야에 특화된 공립 마이스터고인 이 학교의 창업동아리 활동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마치 ‘스타트업’ 같다. 3~5월에 아이디어 회의 등을 진행하고 창업 및 발명 대회들이 몰려 있는 5~7월에는 학생들이 사업계획서와 피피티(PPT) 자료를 준비하게 된다. 이태욱군, 이동민양, 범수아양, 강수진 교사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강수진 교사 제공
비상용 망치를 여기에 달아볼까?
저녁 뉴스에 빈번히 나오는 차량 침수 사고, 전복 사고 등을 본 뒤 안전에 관한 발명을 하게 된 학생도 있다. 3학년 범수아양이 낸 특허의 정식 명칭은 ‘차량유리 파열기 조립체’다. 특허 제품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비상용 망치 안전벨트’라고 부른다.
범양은 “차량 전복 사고나 침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창문을 깰 수 있어야 한다. 한데 사고가 나면 몸이 자유롭지 않게 되고 당황한 탓에 비상용 망치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발명 아이디어를 찾았다”고 말했다. “안전벨트를 찰칵하고 끼우는 접합 부분에 비상용 망치를 결합시켜 봤어요. 사고가 났을 때 손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에 창문을 깰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하니까요.”
범양은 제품 개발로 특허증을 얻은 것도 큰 성과지만 무엇보다 마이스터고에 입학할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또래들보다 비교적 꿈이 확실한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들어오거든요. 바로 가까이에 롤모델로 삼을 만한 선배가 있다면 더 든든하지 않을까요?”
“2학년 때 취업 확정됐죠”
학생들은 발명 및 창업동아리 활동을 하며 특허 출원뿐 아니라 취업의 벽까지 가뿐히 넘었다. 지난해 졸업한 이 동아리 출신 4명이 삼성전자와 삼성에스디아이(SDI) 등 손꼽히는 기업에 입사했고 올해 2월 졸업생들도 모두 우수기업에 취업했다. 현재 3학년인 이태욱군은 지난해 대기업인 ‘한화큐셀’에 채용이 확정됐다. 이차전지 전공을 살려 학업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전국에 있는 마이스터고에 대해 전부 알아봤다. 과학을 워낙 좋아해서 이론과 실습을 겸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며 “미래 유망 분야인 신재생에너지, 배터리 사업 분야를 알아보다가 이차전지를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에너지에 특화된 학교를 다니다 보니 관련 기사를 자주 찾아보게 돼요. 동아리에서 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전공 관련 토론도 자주 하게 되고요. 취업을 준비할 때 발표 능력이 중요한데 이런 부분들이 도움이 됐죠. 기술과 과학, 수학, 영어에 흥미 있는 학생들이라면 학교생활이 즐거울 겁니다.”
사업계획서부터 발명 컨설팅까지
이 학교 창업동아리 활동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마치 ‘스타트업’ 같다. 보통 3~5월에 아이디어 회의와 토론을 진행하며 발명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고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창업 및 발명 대회들이 몰려 있는 5~7월에는 학생들이 사업계획서와 피피티(PPT) 자료를 준비하게 된다.
충분한 아이디어 검토와 설득의 과정을 거쳐 2학기 때부터 시제품을 제작해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제품 개발’이라는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 발명과 특허 등 지식재산권에 관한 교육과 컨설팅이 학기 중 진행되고 시제품 제작 등 학교 차원에서의 지원도 확실하다.
지난해 제14회 전국 창업발명 경진대회에서는 발 세건기(발 세척과 건조가 동시에 되는 제품)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대상을 받기도 했다. 농작물 수중·토양재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태양광 스마트팜’도 특허를 받았다. 벌레 쫓는 해충 퇴치기, 펜의 각종 세균을 없애는 자외선(UV) 펜 소독기, 칫솔 살균기 등 다양한 발명품은 학생들이 방과 후에도 치열하게 연구·개발한 결과물이다.
강 교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연간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밟아나가며 학생들의 창의력과 개발 능력, 발표력까지 키워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중소벤처기업부, 특허청 등이 주관하는 아이디어 공모전인 ‘지식재산(IP) 마이스터 프로그램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 학교에는 엘아이엠뿐 아니라 여러 창업동아리가 있어요. 이차전지와 태양전지 등 학교 전공 교육과정과 연계해 ‘만들기’에 진심인 학생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