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90점 이상의 수학 성적을 받으며 선행도 잘 따라가던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1∼4등급으로 수학 성적이 분산된다. 중학교 때 수학 A등급을 받던 아이 중에 누구는 1등급으로 유지되고, 누구는 4등급으로 떨어지는 걸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은 책 <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블루무스 펴냄)는 올해 초 31쇄를 찍으며 수학 공부법 책으로는 역대급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난해 예스24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한국학교사서협회에서 뽑은 ‘학부모·교사가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추천되기도 했다.
이 책을 쓴 류승재(사진)씨는 고려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최상위권부터 최하위권까지 다양한 성적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재수생까지 수학을 가르쳐온 25년차 강사로 “문제해결력을 키우지 않고 지나친 선행학습과 양치기식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가짜 수학 공부를 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중학교 때 같은 A등급이라고 해도 고교 때 성적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자기주도적으로 개념을 이해해서 어려운 문제도 스스로 풀어본 아이들은 고교 때도 수학을 잘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식대로만 수동적으로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어온 아이들은 고교 때 본래의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게 수학 공부의 본질이기도 하고, 고교 수학 성적의 분기점은 이 문제해결력이기도 하다. 수학의 문제해결력이란 “문제를 독해하고 분석하는 능력, 배운 개념들을 가지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지를 설계하는 능력, 주어진 조건들을 보고 추론하는 능력”이자 “낯선 문제, 비정형적 문제, 어려운 문제 등을 자기 스스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여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류씨는 말한다. 문제해결력은 어떻게 키워질까? 그는 “문제를 많이 푼다고 느는 게 아니라, 작은 문제라도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야 늘어난다”며 “문제해결력이 극대화된 아이들은 문제집 한권만 제대로 풀면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와도 100점을 받을 수 있지만 문제해결력이 없으면 문제집 10권을 풀어도 100점을 받을까 말까 한 상태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은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심화’ 공부가 아니라 ‘선행’을 하느라 바쁘다. 이에 대해 “심화를 하는 것보다 선행을 하는 게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더 쉽고 편하기 때문”이라고 류씨는 지적한다. 쉬운 교재로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지식과 정보를 주입하는 일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보다 훨씬 쉬운데다 부모 입장에서도 자녀가 선행을 2∼3년치 나가고 있으면 “우리 아이가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원으로선 선행을 상품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 입시체제에서 내신 경쟁이 치열해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선 선행 위주의 반복적인 문제풀이가 유리하기도 하다. 하지만 입시를 위해서도 결국 중요한 건 고등학교 수학 실력이며, 이를 키우기 위해선 초·중학교 때 선행을 하기보다 심화능력을 키우는 게 장기적으론 유리하다. 심화능력을 키우면 선행 속도도 빨라지지만, 선행을 많이 한다고 해서 심화능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그는 “선행이 부족해서 혹은 여러번 반복하지 못해서 고등 수학을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올바른 선행이란, 한 학기 과정의 기본개념을 익히고 심화까지 충분히 진행한 뒤 그다음 과정 선행을 나가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수학을 잘하기 위한 다섯가지 습관을 제안한다. 한 문제라도 혼자서 끙끙대고 풀어보려는 자기주도성, 선생님이나 책에서 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의 언어로 개념을 정리하는 습관, 선생님의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듣지만 않고 ‘역질문’하는 습관,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성실성, 스스로 학습 계획을 짜는 습관 등이다.
이를 위해서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 저학년 때는 수학을 따로 시키지 않고 독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보드게임이나 레고, 블록쌓기 등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을 시키는 게 좋다고 한다. 그는 어린 자녀를 수학학원에 데리고 오는 부모들에겐 “일단 독서습관부터 잡아주고 오세요”라며 돌려보내는데 그 이유는 “오랜 시간 수학 강사로 일하면서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 중에 국어를 못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수학을 못하는 아이들은 거의 다 국어를 못하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이 점점 더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기 때문에, 수학 실력이 독해력·이해력·추론력 등을 포함하는 언어능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독서습관이 생겨서 알아서 스스로 책을 읽고 독서량이 많아지면 언어능력도 향상되고 이는 수학의 문제해결력으로도 이어진다. 보드게임이나 레고, 블록쌓기 등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도성과 인내심, 집중력 등을 키워주기 때문에 권유한다.
강의식 수업을 들었으면 강의 시간의 3배 이상을 혼자서 복습하고 정리하는 데 써야 한다는 등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강조하고, 사교육이나 선행 대신 자기주도적 심화 공부를 주장하는 그의 방향은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그에게 불리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의 주장은 일부 대형 학원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지만, 그는 “이제는 수학 공부의 방향이 이렇게 바뀌는 게 맞고, 또 이제는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학원들과 학부모도 많다”며 웃었다. 그것이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은 이유일 것이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