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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르네상스 때도 10대들을 엄청 쪼았겠군”

등록 2022-05-10 07:11수정 2022-05-11 14:18

연재 ㅣ 미술교실에선 무슨 일이?

1296년에 피렌체의 두오모(도시를 대표하는 대성당)가 착공되었다. 피렌체는 경쟁국이었던 피사와 시에나의 그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화려한 두오모를 원했다. 산타 레파라타 성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길이 153m, 폭 90m, 약 2511평의 면적으로 동시에 3만명이 미사를 올릴 수 있는 규모였다.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이었다. 피렌체의 자부심으로 충분했다.

73년이 지난 1369년에야 돔 지붕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완성되었다. 그사이 교황의 아비뇽 유수가 있었고, 기록적인 대기근이 있었고, 백년전쟁의 여파로 피렌체 은행의 파산이 있었고, 흑사병 대창궐이 있었다. 피렌체는 두오모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완공을 코앞에 두고 공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제단 위를 덮는 돔 천장을 올릴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에서 온 건축가들은 지름 45m나 되는 돔 천장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피렌체의 자부심이어야 할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 마리아’란 뜻으로 피렌체 두오모의 공식 명칭)는 머리가 없는 상태로 한동안 남겨졌다. 피렌체인들의 자괴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흘러 1419년이 되어서야 두오모 공사가 재개된다. 피렌체의 길드 중 가장 부유했던 모직 길드에서 기어코 피렌체의 염원을 해결하겠다며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두오모 길드 위원회가 결성되어 신속하게 공모전이 열렸다. 이때 브루넬레스키가 등장한다. 18년 전 세례당의 청동문 제작 경쟁에서 기베르티에게 패한 후 뚜렷한 활동이 없던 이였다. 조각가 겸 금속 세공사였던 그가 건축 공모전에 참여한 것이다. 그것도 100년 넘게 누구도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는 공모전에. 건축에 관한 한 문외한이나 다름없던 그에게 주변의 조롱과 비난이 따랐음은 당연했다. 18년 전의 경쟁에서도 기술적 미숙성으로 고배를 마셨던 그가 돔 설계에 도전하다니. 더군다나 그는 기베르티에게 패배하고 줄행랑치지 않았던가! 로마에서 고대 유적을 실측하며 공부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신의 저주로 쇠망한 로마에서 뭘 배웠겠는가!

주변의 시선은 냉담했고 설계도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어느 날 묵묵부답하던 브루넬레스키가 비판자들을 향해 달걀을 들어 보였다.

“여러분 중에 누군가 이 달걀을 탁자 위에 바로 세운다면 설계안을 공개하리다.”

조롱과 야유가 쏟아졌다.

“달걀을 어떻게 세운단 말인가! 간사한 꾀로 위기를 모면하려 들지 말라!”

브루넬레스키는 달걀 밑단의 공기층을 깨고 대리석 위에 간단히 세워 보였다. 더 큰 조롱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건 나도 하겠다. 우리를 농간하는가! 설계안이 있기는 한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작자군!”

주변의 성토를 무릅쓰고 그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의 설계안을 본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누가 이걸 못하겠냐고 지금과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겁니다. 저는 분명히 두오모의 돔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이때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브루넬레스키는 건설과 토목 공사에 필요한 준설기나 기중기, 베어링이 장착된 회전 크레인 등의 기계를 발명하였음에도 설계도를 남기지 않는다. 후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코덱스에 스케치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경쟁자 기베르티와 다른 건축가들을 물리치고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안이 최종 선정된다.

당시의 건축가들이 역사상 최대의 돔 천장을 위해 참고한 것은 로마의 판테온이었다. 판테온 돔의 지름도 43m로 피렌체 두오모와 비슷했다. 그러나 판테온은 통콘크리트 구조여서 이를 따르자면 양생용 비계를 세워야 했다. 이미 완성된 벽체 높이만 50m에 달하는 상황에서 지면 위의 고정 없이 허공에 목조 비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브루넬레스키는 벽돌 쌓기를 활용했다. 돔 둘레를 8등분하고 벽돌을 쌓아서 안쪽 지름과 바깥쪽 지름을 달리하여 서로 맞물리게 하는 방안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성행한 아치 구조의 변형이었다. 종적 아치를 횡적 아치로 전환한 것이다. 또 가로 벽돌 사이에 세로 벽돌을 나선형 패턴의 회오리 모양으로 쌓아 올려 구조적 밀접도를 더욱 높였다. 이뿐만 아니라 벽돌을 쌓아 올리며 석재와 목재로 된 거대한 테두리를 중복해서 둘렀다. 공사는 1436년에 정수리 부분의 랜턴(현재의 전망대)을 올리며 완성되었고, 총 16년이 걸린 역사상 최고의 난공사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피렌체 두오모를 보여주며 브루넬레스키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전공 학자들의 강의와 책을 정확하게 전달하려 나름 노력했다. 몇주간의 고생(?)이 명멸했다. 그러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몇몇 아이는 엎어져 잠을 잤고, 꼿꼿이 등을 세운 녀석들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는 표정이었다. 퇴근길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 반 수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상했던 바였고, 나는 준비한 카드가 있었다.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브루넬레스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엎어졌던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피렌체공화국의 수호성인 중 하나는 ‘산 조반니’이다. 세례자 요한을 가리킨다. 두오모 바로 앞에는 세례자 요한을 기리는 팔각형의 건물이 있다.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퇴역 군인들의 도시로 피렌체 성곽을 세울 때부터 있었던 건물이다. 원래는 군신 마르스를 위한 신전이었고, 숫자 8을 길하게 여겼던 로마 문화의 영향으로 독특하게 팔각 형태를 띠고 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곳에서 물세례를 받는다. 이 예식을 통해 ‘산 조반니’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얻고 피렌체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여 ‘산 조반니’ 세례당은 피렌체인에게 절대적 의미를 지닌 곳이었고, 추방당한 시인 단테가 죽을 때까지 엄마의 품처럼 그리워한 곳이기도 하다.

1401년에 세례당의 목제 문을 청동으로 교체하는 공모전이 발표된다. 총 7명의 지원자 중에는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있었다. 심사 주제는 성경 이야기 중 ‘이삭의 희생’이었다. 최종 우승자는 기베르티였다. 화면 구성이나 연출에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이 좀 더 입체적이었고 생동감이 넘쳤으나, 제작 기술 면에서 기베르티가 앞섰다.

낙담한 브루넬레스키는 친동생처럼 가까웠던 도나텔로와 무작정 로마 여행을 떠난다. 탈락의 절망은 브루넬레스키로 하여금 다른 분야의 일에 몰입하게 만든다. 당시 로마는 빈곤과 무질서가 극심했다.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다 허물어진 고대 로마의 유적을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는 것은 앞서 말했다.

“브루넬레스키는 천재적인 건축 공학자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은 처음부터 그가 모든 것을 갖춘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좌절에도 자신을 다시 일으켰던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처럼 인간을 넘어 신적 경지에 이른 작품에 경탄을 금치 못하지만, 그들에게도 철부지 10대가 있었고 좌절의 20대가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들이 달랐던 건 삶의 곡절에서 회피하지 않고 용기로 극복해냈다는 사실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있다. 미술사를 통해서 르네상스의 천재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 정서적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 내가 준비한 카드였다. 나는 사족처럼 다시 말을 이었다.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와 열두 제자들의 헤일로(halo)를 그리지 않고 난리법석의 경박한 장면을 그린 것도 관행을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용기였으며,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에서 온통 성기를 노출한 알몸으로 거대한 벽면을 채웠던 것도 신념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고자 했던 용기였습니다. 르네상스 수업에서 여러분에게 꼭 남기고 싶은 것은 천재들의 위대함보다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그들의 용기입니다. 그러므로 르네상스는 천재들의 시대가 아니라 용기의 시대인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의 눈빛이 더욱 또렷해짐을 느꼈다. 짜식들~ 분명 감명받은 바가 있을 것이었다. 마침 종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떤 녀석이 이렇게 수군댔다. “르네상스 때도 10대들을 엄청 쪼았겠군~”

글·그림 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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