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지능이 아닌 노력을 칭찬해줘야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다. 아이가 천재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메타인지를 방해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니야, 틀렸어. 피(P)를 두 개 썼어야지. 여기 P가 하나 빠졌잖아. 다시 써봐. 자, ‘해피’는 ‘에이치-에이-피-피-와이’라고. 피가 두 개!”
아이를 옆에서 ‘끼고 가르친다’는 부모들의 가장 흔한 실수다. 아이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 틀리면 당장에라도 고쳐주고 싶고, 못하면 왜 기억 못 하느냐고 닦달도 하고 싶다. 아이 참고서에 빨간 줄을 쫙 긋고선 “왜 틀렸는지 빨리 생각해봐”라고 말하며 나름대로는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다. 모두 ‘메타인지 학습’을 방해하는 행동들이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뒤 중간고사를 앞둔 지금 ‘아이가 공부하는 것만 보면 속이 답답하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중3 자녀를 둔 한 아빠는 “성적이라는 결과표가 곧 나올 텐데 ‘저렇게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뭔가를 더 알게 됐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수많은 학습법, 공부법 중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메타인지 학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해야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전문가들과 함께 알아봤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인지에 대한 인지’다. 자신의 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학습법에서는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뜻한다. 20년 넘게 메타인지에 관한 연구를 해온 리사 손 교수(컬럼비아대 바너드칼리지 심리학과)는 말한다. “아이의 메타인지는 부모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키울 수 있다”라고. 리사 손 교수는 “아이가 스스로 틀려보고 도전해봐야 메타인지가 키워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 <메타인지 학습법>과 이비에스(EBS) 부모특강 시리즈를 통해 메타인지 학습법을 알린 리사 손 교수는 “보통 부모는 아이가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답이 정답인 줄 알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한다. 틀린 답이 아이 기억에 고착화될까봐 크게 걱정한다”며 “고쳐주고 싶고, 빨리 정답을 알려주고 싶은 부모의 그 마음을 누를 때 아이의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엄마, 근데 이 답은 뭔가 이상한 거 같아”라고 스스로 인지한 뒤 이야기할 때 메타인지가 작동한 것이다. 오답과 실수를 통해 메타인지 능력이 쌓인다는 것이다. “학습에 있어 실수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실수를 하면 메타인지가 알아차리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지요. 아이는 어른보다 당연히 메타인지의 과정이 오래 걸립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속도에 맞춰 공부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합니다.”
많은 부모가 메타인지를 키우면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이런 접근은 메타인지를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메타인지의 진짜 목적은 이를 키우는 과정 자체가 바로 배움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진짜 공부>를 쓴 국내 1호 인지과학자인 박경숙 박사는 동기와 인지, 정서, 의지, 행동이 공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며 “메타인지는 학습의 감독자이며 방향키”라고 강조했다.
공부는 암기 위주의 생존공부(1차원), 타인을 이기기 위한 전략적 공부(2차원),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즐기기 위한 융합공부(3차원)로 나뉘는데 메타인지를 활용한 융합공부를 통해 학습자들의 공부 생활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암기식의 1차원 공부와 목적 달성을 위한 2차원 공부를 무시하거나 배격하지 않는다. 3차원 공부를 위해서는 1차원과 2차원 공부를 선행하며 융합을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짜 공부’는 자기 인생을 재료로 합니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아이들이 점과 선의 형태로 정보를 기억하는 1차원 공부, 면을 넓혀가듯 진행하는 2차원 공부에 이어 입체도형처럼 공부에 깊이와 높이를 더한 3차원 공부의 단계까지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합니다.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해본 경험이 메타인지 능력을 높여주니까요.”
보통 ‘전교 1등의 공부’가 2차원 공부에 해당한다. 목표로 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오랫동안 모든 걸 동원해 학습하는 분야다. 3차원 공부는 서술형 문제를 풀거나 리포트 등을 쓸 때, 예술가가 작품을 구상할 때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정보들을 융합하고 새로운 정보가 창조되는 과정이다.
인지는 아이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메타인지는 자신이 어떤 현상이나 학습 내용을 제대로 보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동기는 아이가 공부를 시작하게 한다. 여기에 스스로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감독자이자 나침반 구실을 자처하는 메타인지가 적용되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인지는 아이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메타인지는 자신이 어떤 현상이나 학습 내용을 제대로 보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구체적으로 아이 학습에 메타인지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메타인지를 활용한 자기주도학습이란 다른 사람의 조력 여부와 관계없이 학습자가 주도권을 가지는 공부 과정을 말한다. 학습자인 아이 스스로 공부 목표를 정하고 자원을 확인하며 학습전략과 방법을 선택한 뒤 공부 결과를 평가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박 박사는 전략적 공부 방법으로 ‘피큐포아르’(PQ4R)와 ‘머더’(MURDER) 학습을 이야기했다. 예습하기(Preview), 질문하기(Question), 읽기(Read), 숙고하기(Reflection), 암송하기(Recite), 복습하기(Review) 등의 단계를 거쳐 ‘학습의 감독자’인 메타인지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머더 학습은 분위기(Mood), 이해(Understanding), 회상(Recall), 탐색(Detect), 정교화(Elaborate), 복습(Review)을 말합니다. 공부할 수 있도록 아이 스스로 환경과 기분을 정돈하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반드시 표시해두는 거죠. 한 단원을 공부한 뒤에는 반드시 자신의 말로 배운 것을 적어보는 ‘회상’ 단계가 필요합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인지’한 뒤 돌아가서 되새기는 탐색도 중요하지요. 스스로 해결이 안 되면 다른 책을 찾아보거나 선생님을 만나서 해결하도록 하면 됩니다. 정교화와 복습을 통해 학습 내용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고 검토하고 유지하는 과정까지 거치면 아이의 학습은 ‘진짜 공부’가 되는 겁니다.”
많은 부모가 메타인지를 키우면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이런 접근은 메타인지를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리사 손 교수는 “메타인지의 진짜 목적은 이를 키우는 과정 자체가 바로 배움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습법이 곧 ‘성적 올리는 법’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의 먼 미래까지 살펴보고, 메타인지 학습법을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고급 스킬’로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리사 손 교수는 이런 메타인지 학습의 핵심을 ‘모니터링’(monitoring)과 ‘컨트롤’(control)로 본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학습 과정을 돌아보는 ‘모니터링’과 단계별로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컨트롤’ 단계가 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아는 것이 모니터링 단계이고,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해야겠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컨트롤 단계이다. 모니터링을 못 하면 컨트롤도 못 한다. 모니터링 단계가 특히 중요한데, 스스로 다 안다고 착각하면 결코 제대로 된 컨트롤 단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불편한 학습’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를 외운 뒤 뜻만 주르르 쓰는 방식보다, 영어 단어 철자 중간중간에 빈칸을 뚫어놓으면 학습이 조금 더 ‘불편’해진다. 같은 단어를 외우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불편한 과정’이 들어가면 아이 스스로도 어떤 부분을 어떻게 모르는지 알게 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손쉽게 메타인지를 기르는 방법은 아이가 자신의 문제집을 직접 채점하는 것이다. 부모가 채점하면 아이는 모르는 것에 대해 겁을 먹게 된다. 틀린 게 부끄럽기도 하고 혼날까 봐 걱정도 되면서 모르는 것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데 스스로 채점해보면 틀린 것과 맞은 문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때 부모는 아이의 점수나 결과보다 성취 과정 자체와 노력을 알아주어야 한다.
아이의 지능이 아닌 노력을 칭찬해줘야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다. 아이가 천재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메타인지를 방해한다. “나 이번에 공부 하나도 안 했어. 시험 망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을 자꾸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결과가 안 좋게 나올까 봐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일들이 점점 생기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지능을 믿고 칭찬한 경우에는 읽기 쉬운 글에만 자신감을 보인다. 반면 노력과 과정을 믿어준 경우의 아이들은 읽기 쉬운 글이든 어려운 글이든 모두 자신감을 보였다는 실험도 있다. 지능을 칭찬받은 아이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면 쉽게 포기한다는 이야기다. 부모가 아이의 지능이 아닌, 들인 노력에 대한 언급을 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리사 손 교수는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누군가를 가르쳐보는 것을 꼽았다. “○○야, 이거 공부 다 하고 친구들한테 선생님처럼 설명해줘”와 같은 말들이 효과가 좋다. 공부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아이를 지식 전달자로 만드는 것이다. ‘선생님 놀이’ 하듯 공부하면 메타인지가 작동하기 쉽다는 이야기다. 아이 스스로도 자신이 친구들에게 설명할 내용을 생각하면서 공부하게 되고, 수학이나 영어 등을 학생의 관점이 아닌 선생님의 관점에서 스스로 바라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요약과 정리 능력도 커진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