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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벌 묻지 않는 채용, 교육의 ‘봄’ 부른다

등록 2022-04-02 07:29수정 2022-04-02 09:37

[한겨레S] 커버스토리 - 교육운동 오랜 동행 송인수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어 ‘교육의봄’서 15년째 함께 활동해
솔직한 맘으로 싸워가며 정책 완성도 높인 공동 리더십의 힘
“아이들에게 자기 결정권 줘서 우회할 힘 키워주는 게 중요”
“학교 서열 등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채용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일에 집중하기 위해 교육의봄을 새로 만들었어요.” 교육의봄 윤지희(왼쪽) 송인수 공동대표가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교육의봄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학교 서열 등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채용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일에 집중하기 위해 교육의봄을 새로 만들었어요.” 교육의봄 윤지희(왼쪽) 송인수 공동대표가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교육의봄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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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이든 톱은 대개 한 명이며, 복수인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투톱으로 시작하더라도 얼마 안 가 깨지고, 대부분 단독 수장이 된다. 사람들이 못돼서가 아니라 효율적 조직 운영의 논리, 고독한 개별자인 인간의 본성 탓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 관련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의 공동대표를 지낸 송인수(58)·윤지희(61) 두 사람은 희귀하다. 둘은 2020년 초 12년간의 사걱세 활동을 끝내고, 그해 10월 기업의 채용 차별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인 ‘교육의봄’(이사장 손봉호)을 새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둘이 함께다. 시민운동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교육의봄 공동대표 윤지희·송인수씨를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근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학벌없는 채용 문화 확산되면, 교육에도 봄바람이 불겠죠”
―교육의봄이 출범한 지 1년 반인데 잘되고 있나요?

“처음엔 좀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학벌 중심의 채용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기업에서는 저희의 존재 자체를 모르잖아요. 채용 전문가나 기업 책임자들과 신뢰를 쌓는 과정에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좀 인정을 받는 것 같아요.” (송인수, 이하 송)

교육의봄은 지난해 내내 기업별 채용 현황 조사부터 실시했다. 조사를 토대로 20여차례 전문가 포럼과 시민 강연을 열었으며, 그 결과물을 단행본(<채용이 바뀐다 교육이 바뀐다>)으로도 묶어냈다. 구호를 먼저 외치기보다 사걱세 활동 때처럼 실태 파악과 구체적인 사실 확인부터 시작했다. 상근 활동가만 벌써 11명(공동대표 포함)이며, 후원회원도 1천명 가까이 모였다.

지난해 2월 교육의봄이 연 학벌과 업무성과의 관계에 관한 토론회 모습. 교육의봄 제공
지난해 2월 교육의봄이 연 학벌과 업무성과의 관계에 관한 토론회 모습. 교육의봄 제공

청년 리더십 위해 퇴진 결단

―사걱세를 두고 왜 새로운 시민단체인가요?

“먼저, 사걱세와의 결별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연대이자 운동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이 운동은 새로운 게 아니에요. 조사를 해보면 사람들이 자녀 사교육을 시키는 첫번째 이유로 채용 과정에서 학벌을 따지기 때문이라고 답하잖아요. 그래서 이 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 문제를 온전하게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고, 그 과제를 오래전부터 설정해놓고 있었어요. 그러나 다른 교육 과제들이 많다 보니까 채용 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따로 독립해서 이 분야만 다뤄야 빨리 성사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사걱세 운동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과 맞물리기도 했고요.”(윤지희, 이하 윤)

―사걱세 창업자인데 후배들에게 물려줬다고요?

“역량 있는 사람들이 저희 때문에 성장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었어요. 중견 간부 10여명 정도가 탄탄하게 집단 리더십을 가지고 함께 일해가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둘이 남아 있으면 그게 안 되거든요. 운동의 성장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던 거죠.”(윤)

“어떤 면에서는 저희가 떠날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분들이 일을 맡게 된 겁니다. 내가 설립자이고 중요한 인물이니 조직을 떠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그분들은 아마 다 다른 기관으로 흩어졌을 겁니다. 30대 후반의 두 여성 리더십(정지현·홍민정)이 이어받은 데 대해 다른 시민단체들이 부러워합니다.”(송)

기독교 교사들의 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을 이끌던 송인수와 학부모들의 운동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에서 활동했던 윤지희는 2008년 6월 사걱세를 출범시켰다. ‘민간 교육부’를 자임한 사걱세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늘리는 정책 등을 감시하고 견제해왔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대학지원 때 출신 고교를 기재하는 게 금지됐으며, 외고 입시와 대학별 논술고사가 대폭 개편되고, 선행교육 규제법도 제정(2014년)됐다. 또, 부모들의 조바심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전국 50여곳에 사걱세 지부 격인 등대모임을 만들고, <아깝다 학원비>, <아깝다 영어 헛고생>, <웃어라 수포자> 등 5종의 소책자를 만들어 지금까지 200만부를 보급했다.

“둘 다 세밀한 것에 예민해서 엄청 싸우죠. 그러나 상호 믿음이 있고, 부딪힌 문제 그것만 가지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풀어왔어요.” 윤지희·송인수 교육의봄 공동대표가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둘 다 세밀한 것에 예민해서 엄청 싸우죠. 그러나 상호 믿음이 있고, 부딪힌 문제 그것만 가지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풀어왔어요.” 윤지희·송인수 교육의봄 공동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제 나홀로 대표는 두려워

―어떻게 해서 함께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1998년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라는 연대 단체에서 알게 됐는데 송 선생님이 저랑 뜻이 가장 잘 맞았어요. 19개 단체가 모인 그 연대체에서 전교조가 정책 개발이나 재정 면에서 중심이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군소 단체들이 전교조 의견만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 2005년쯤 전교조와 따로 가는 게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는 안을 냈는데 우리 둘만 찬성을 한 거예요. 결국 저희만 탈퇴했죠. 교원평가제 도입 등 여러 다른 사안에서도 뜻이 같았기에 새로운 교육운동을 한다면 송 선생님하고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윤)

“비하인드 스토리도 이야기하셔야죠. 하하.”(송)

―숨겨진 이야기는 뭐예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쪽의 이주호 의원이 하는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게 됐어요. ‘사교육비 절반 학교교육 만족 두배’라는 이 후보 쪽 공약에 대한 토론문을 밤에 쓰면서 사교육비라는 단어가 팍 꽂혔어요. 교육운동이 성공하려면 소수의 교육운동가가 아니라 시민과 학부모들이 나서야 하는데 지금까지 교육운동 주제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한밤중에 송 선생님한테 우리 운동을 사교육 문제로 하자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반응이 뜨뜻미지근했어요. 구박을 많이 했죠. 하하.”(윤)

“두가지 고민 때문이었어요. 하나는 사교육이라는 키워드를 내걸고 내 인생을 쏟을 때 과연 성과가 날 것이냐에 대한 회의가 있었어요. 은사님이신 손봉호 교수님조차 그건 부동산 문제보다 10배는 더 어려우니 너의 시간을 거기에 낭비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다행히 이 고민은 ‘어떤 사안이든 자기 인생을 거는 사람이 있어야 성사된다’는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가슴에 와닿아서 해결이 됐는데 다른 하나가 또 남더라고요. 좋은교사운동의 제 후임 대표를 맡는 후배 교사들이 저처럼 또 사직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사표를 안 내도 되는 법 개정이 이뤄지면 그것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새 일에 뛰어들겠다고 대답했으니 구박받을 만했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있고, 곧이어 총선이어서 국회 통과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대선 뒤인 2008년 2월에 기적적으로 법이 개정됐어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이제 하늘로부터 차출됐다고 말했죠. 하하.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이 운동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게 시작했어요.”(송)

―기업의 공동창업자도 결국은 헤어지던데 두분은 무려 15년째 찰떡궁합을 맞춰왔어요.

“둘이 자기주장이 강하다 보니, 서로 부딪치기도 많이 했죠. 하하. 일하다 보면 사소한 부분에서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 둘은 세밀한 것에 아주 예민한 사람들이거든요. 다행히 서로 솔직해지자는 마음을 갖고 싸움에 임했기에 고비들을 넘겨왔습니다. 공동대표 체제는 내부에서 상대를 끝까지 설득해야 하니까 정책 대안의 엄밀도나 완성도가 엄청 높아지기에 어려움보다도 유익함이 훨씬 크죠. 지금은 저 혼자 일을 하라고 하면 배짱이 편한 게 아니고 내 판단이 맞나 싶어서 굉장히 두려워요.”(송)

“업무분야를 나눠서 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둘은 성격적으로 업무의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야 편안하고 의사결정을 잘할 수 있어서 둘이 똑같은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솔직히 많이 힘들어서 이번엔 같이 안 할까도 생각했어요. 하하.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기 이익을 취하거나 자기가 돋보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확실히 있기 때문에, 부딪힌 문제 그것만 가지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풀어왔죠.”(윤)

1995년 참교육학부모회 활동을 시작으로 교육운동을 해온 윤지희 교육의봄 공동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95년 참교육학부모회 활동을 시작으로 교육운동을 해온 윤지희 교육의봄 공동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뾰족’ 윤지희와 ‘윤리’ 송인수의 결합

광주가 고향인 윤지희는 대학 3학년 때(1982년) 민주화 시위를 주도해 1년간 감옥살이를 했으며, 출소 뒤에는 인천의 전자회사와 봉제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결혼해서는 여성민우회 등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1993년 즈음부터는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5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 동북부 지부를 만들고, 1999년부터 4년간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을 맡았다.

―윤 선생님이 교육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아이가 생긴 뒤 <우리교육> 등 교육 관련 잡지나 책을 읽으면서 교육관을 정립해가고 있었지만, 막상 학부모가 되니까 우리 아이가 뒤떨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주변 학부모들이 영어 공부 등 사교육을 많이 시켰거든요. 그래서 참교육으로 저를 붙들기 위해 참교육학부모회 활동을 시작했죠. 처음엔 사무실이 없어서 저희 집에서 모임을 했어요.”

―선생님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12년 정도 학교운영위원을 하면서 어떨 때는 또 부딪칠 게 뻔해 학교 가는 길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그래도 교장 선생님이 당돌하게 생각하든 말든 할 말은 다 했죠. 아예 제 정체성을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했어요. 불화하는 것, 뾰족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밤 12시, 새벽 1시까지 학원으로 내몰리는 폭력적인 상황에 날마다 노출돼 있는데 그걸 묵인하는 부모, 교사, 사회와 싸우자고 말입니다.”

좋은교사운동을 만들어 활동했던 송인수 교육의봄 공동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좋은교사운동을 만들어 활동했던 송인수 교육의봄 공동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강원도 원주 출신의 송인수는 가난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학생운동을 할 생각조차 못 했다. 교사 3년차이던 1992년 학부모한테 불법 찬조금을 거두라는 부장 교사의 지시를 거부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면서 교육운동을 처음 고민했다. 1995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 이어 1998년 좋은교사운동 창립에 앞장섰으며, 2003년에는 학교를 퇴직하고 좋은교사운동 상근 대표를 맡았다.

―전교조 소속 선생님까지도 관행이라며 찬조금 모금을 수용했다는데 송 선생님의 거부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어요?

“저는 대학 때도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신앙적으로 해석할 수가 없었어요. 또래 친구들이 시대문제 때문에 끌려가고 분신하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제 문제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죠. 학교 선생이 된 뒤 촌지나 교재 채택료, 불법 찬조금을 받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복잡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냥 신앙 윤리적으로 잘못된 거라는 생각에서였어요. 대학 시절 친구들은 불의한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자기를 던졌는데 나는 이까짓 촌지나 채택료 때문에 쩔쩔매면서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전교조에 가입하면 될 텐데 왜 새로운 교사단체를 만들었어요?

“전교조 선생님들과 많이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 울타리에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한데, 뜻은 동의하나 저에게 맞는 옷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기독교인 교사들 가운데서 뜻이 맞는 사람들하고 모임을 조직하기 시작한 거죠.”

학교 공부 손 놓았던 아이들의 변화

자녀교육에서도 두 사람은 자신의 철학과 원칙을 지켰다. 두 집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찍부터 대학 입시 경쟁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뜻을 굳히고,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 자유롭게 지내거나”(송인수의 두 아들) “만화책 읽기 등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면서”(윤지희의 두 딸)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학원 등 사교육은 권하지도 거의 받지도 않았다. 고2 또는 고3 때가 돼서야 각각 대학에 가야겠다고 스스로 결정하고는 입시를 준비했고, 각자 원하는 전공의 대학에 갔다.

―아이 성적이 떨어지고 공부마저 안 할 때는 부모로서 속이 터지지 않았나요?

“공부에서 손을 놓은 것을 알았지만, 아이에게 한번도 점수와 등수를 물어본 적이 없어요. 물어보게 되면 점수와 등수라는 안경으로 아이를 보면서 그 안경 속에 들어올 때만이 내 새끼인 거고 바깥에 있을 때는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을 해도 평가 안 해주게 되거든요. 점수와 등수라는 좁은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기를 포기하니까 아이의 존재가 보이고 다툴 일도 적어졌어요. 또, 제 기대를 내세워 아이의 선택권을 훼손하지 않았는데 그게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도 중요했고요.”(송)

“저는 같이 만화책 빌려다 읽고 그랬는데 책값만도 집 한채 값은 될 거예요. 하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봐요. 그 기반 위에서 기다림도 가능하고, 대화도 가능하죠.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 ‘넌 미숙한 사람이야, 그러니 너의 판단은 잘못됐어’라고 하게 되고, 아이와는 관계가 끊어지거든요. 특히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녀교육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윤)

―대개는 아이가 학습의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조바심을 내는 것 같아요.

“맞아요. 좋은 스펙을 갖춰서 돈과 안정성이 확보되는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직업관을 벗어놓고, 성공의 기준을 아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아이를 보는 시선의 폭이 넓어지죠. 또, 성장기에 단계별로 너무 촘촘하게 부모가 개입하다 보면 아이가 갖는 자기 결정권이 없어지게 돼 정작 힘을 내야 될 시기에는 자기 에너지가 없게 돼요. 저는 인생이 강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강은 가다가 산맥을 만나면 우회하는 등 곡선으로 흐르잖아요. 그렇게 흐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고요. 사람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난관을 만날 때 우회할 수 있는 힘을 어린 시절에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인격으로 존중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필요하죠. 어떤 시점에서 못 했던 결핍의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가 있거든요. 제 큰아이 같은 경우도 초등 5학년 때 수학을 내려놨지만, 재수할 때 중학교 수학부터 다시 해서 한달 만에 끝내고 그 뒤 고교 과정을 따라잡더라고요.”(송)

“6살 아이도 떼쓰기 할 때는 자기 나름의 이유가 다 있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떼쓰는 게 잦아들어요. 어린아이가 그럴진대 청소년기 아이들을 성적으로만 서열을 매기고 줄 세우는 것은 그 아이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생명력을 갉아먹는 일이죠. 누구와 비교해서의 성공이 아니라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진짜 성공하는 삶이잖아요.”(윤)

2008년 10월 서울 동숭동 한 소극장에서 열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창립대회. 송인수 제공
2008년 10월 서울 동숭동 한 소극장에서 열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창립대회. 송인수 제공

2016년 4월26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가들이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6년 4월26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가들이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방대와 대안·혁신고에서 반겨

교육의봄은 올해 학벌과 업무 능력이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연구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또, 학벌을 따지지 않고 역량 위주의 채용을 하는 기업 1천곳을 찾아서 널리 알리는 캠페인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교육의봄 활동에 대한 반응은 어때요?

“폭발적이죠. 저희가 지난해 4월부터 업계의 채용 현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정리해서 강연을 시작했는데 혁신학교나 대안학교 부모님들이 굉장히 힘을 얻더라고요. 기업의 채용 방식 변화를 내다보고 아이를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에 보낸 게 아니라 입시 경쟁 교육을 시키지 않고 싶어서 보냈는데 자기들의 선택과 일치되는 신호가 기업에서 오니까 위로를 많이 얻고 자신감을 갖더라고요.”(송)

“대학교수님들의 경우 우리 의견에 반대하는 메일을 보내오신 분들도 있지만, 많은 분, 특히 지방대학 교수님들은 매우 희망적인 이야기라고 호응해주세요.”(윤)

2017년부터 모든 공기업은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다. 주요 민간기업들이 금방 이러한 대열에 합류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학벌과 스펙 위주의 채용을 기업들도 재검토하게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송인수가 받은 “하늘의 차출”과 윤지희의 초지일관이 이번에도 뭔가 사고를 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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