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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인문학, ‘애들’이 할 줄 아느냐고요?

등록 2022-03-28 16:23수정 2022-03-29 02:30

기고ㅣ십대들에게 인문학이란
지난해 여름 강화도 자람도서관에서 10여년을 만나온 사람들과 <어린왕자>를 읽고 별의 은유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별을 상징으로 채워보았다. 쩡열 제공
지난해 여름 강화도 자람도서관에서 10여년을 만나온 사람들과 <어린왕자>를 읽고 별의 은유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별을 상징으로 채워보았다. 쩡열 제공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어릴 적 나는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학교 공부에서 중요한 건 호기심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는 정해진 시간만큼 정해진 것을 배워야 하는 공간이었다. 내가 궁금하지 않아도 공부를 시작하고, 내가 더 알고 싶어도 공부를 멈춰야 하는 곳이며 정해진 질문과 답이 아닌 것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한 공간에 긴 시간을 머물며 질문이 점차 줄어들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이게 어릴 적 세상의 모든 것을 질문했던 어린이들이 ‘몰라요’ ‘없어요’ ‘그런데요’를 반복하는 청소년으로 변하는 과정이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어린이·청소년의 수동적 태도와 무기력을 문제시하며 인문학 공부를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교육공동체 나다’(이하 나다) 역시 ‘휴머니잼’ 등과 같은 청소년 인문학 강좌를 진행할 때 그런 기대를 품은 어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강좌를 통해 만나는 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이 억지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어린이·청소년을 대하는 모순된 태도를 체감한다. 내 삶의 대부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고 주어진 것에 의문을 품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동시에 비판적 사고와 능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는 폭력적이다. 정해진 질문과 답을 통해 점수를 매기고 성과를 판단하는 교육의 형태 안에서는 얼마나 (비판적인) 정답을 잘 맞히느냐로 비판적 사고를 측정한다는 아이러니를 피할 수 없다.

종종 ‘인문학’ 같은 걸 ‘애들’이 할 줄 아느냐는 말을 듣곤 한다. 아마 여기서 ‘인문학’은 고전 강독과 독서 토론 같은 모양일 테고, ‘애들’은 아무것도 모르거나 몰라도 되는 존재로 함부로 대상화된다.

인문학이 다루는 것은 특정 형태의 책과 이론이 아닌 인간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다. 동시에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 전체가 질문의 대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이·청소년들 역시 이 세계를 맞닥뜨리고 살아가며 그 안에 속해있는 존재들이다.

나다의 인문학 공부는 어린이·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질문하고,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그런지 되물으며 세계를 파악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논술을 위한 비판적 사고를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를 위한 세계를 고민하기 위해 질문의 힘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공부는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와 자발적이고 평등한 관계 맺기를 통해 누군가의 삶에 체득되기 시작한다. 내가 바로 청소년기부터 나다를 만나 자연스레 그 이야기를 내 삶의 태도로 가지게 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나다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근 10년을 만나온 사람들이 있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지속적인 관계에 대한 안정감을 가진 우리에게 인문학 공부는 정해진 시간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강좌가 없어도 보고 싶다며 화상회의에서 만나 새벽까지 화면 앞에 앉아 서로의 고민과 소소한 일상을 나눴다.

학교에서 교사의 부당한 요구에 분을 삭이지 못하던 날은 정해진 내용 대신 학교 안에서 우리가 빼앗긴 권리와 싸워야 할 부조리에 관해 고민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파티를 하던 날은 아무도 집에 가지 않겠다며 몇 시간을 웃고 떠들고 각자가 보내왔던 지난 1년의 고단함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던 날도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세계를 나눠준 건 우리가 서로를 친구라고 여긴 덕분이었다.

지난해 점차 학년이 올라가며 경쟁적인 교육을 본격적으로 체감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불안이 어디서 온 것인지, 각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적 선택 앞의 무거운 마음도 너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걸 전하고도 싶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자유롭고 다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야 할지를 상상했다.

이미 우리가 함께해온 시간은 우리 몸의 기억이 되었고, 자연스레 체득한 관계와 세상에 대한 특별한 태도가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불안하겠지만 적어도 함께 세상을 고민해온 이 시간은 조금은 다른 선택과 다른 태도를 만들 거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관계를 맺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바로 그게 우리가 함께했던 ‘인문학의 힘’일 것이다. 

쩡열(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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