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서울 초등학생의 평균 등교 일수는 42일이었다. 1학기 등교 일수는 11일, 2학기 등교 일수는 31일이었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등교한 날보다 등교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초등학생인 박선우(12)군, 박세은(9)양 남매는 지난 1년간 온라인 수업을 한 적이 없다. 코로나19 이전처럼 매일 등교해서 수업을 받았다. 코로나19 이전과 다른 점은 마스크를 썼다는 점뿐, 친구들과 노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술래잡기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경찰과 도둑’ 등을 하면서 뛰놀았다. 교실에서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떨면서 놀았다. 학교 체육관에서 피구나 배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학교에서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인라인스케이트와 보드, 외발자전거도 탔다. 매달 1∼2번씩 학교 밖으로 체험학습도 나갔다. 복숭아도 따고, 피자도 만들고, 염색도 해보고, 비누도 만들어봤다.
학교에서 귀가하면 가방만 던져놓고 또 나가 놀았다. 개울에 들어가 개구리, 올챙이, 물고기를 잡았고, 나비와 잠자리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장마철에는 친구들과 그림을 그렸고, 무더위 때는 매일 물놀이를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물놀이는 흙놀이로 바뀌었고 개울이 얼자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이들 남매의 이런 삶이 가능했던 건, 농촌유학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여름 학교에서 아이들이 물총놀이를 하는 모습.
서울 신학초등학교에 다녔던 선우군과 세은양은 또래와 달리 스마트폰도 없고 유튜브나 게임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부모가 학업을 위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자연과 체험, 책을 벗하며 키운 덕분이었다. 그랬던 아이들이 코로나19로 학교도 나가지 못하고 친구도 못 만나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게 되자 점점 유튜브와 게임의 세계로 스며들어갔다. 아이들은 장난감과 책도 멀리하고 바깥 산책도 귀찮아하게 됐다. 엄마 이하정(43)씨의 스트레스와 잔소리는 커져갔고, 잡힐 듯 잡힐 듯 했던 코로나19는 점점 더 불확실성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학교 이(e)-알리미로 ‘농촌유학 모집 신청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이는 서울시교육청과 전라남도교육청이 손을 잡고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서울시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중학생이 전남의 시골 학교로 1학기 전학을 가서 생활을 해보는 것이었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넌지시 이런 게 있다고 알렸다. 둘째 세은양은 “그럼 학교 매일 갈 수 있는 거야? 나, 갈래요!”라고 답했다. 반면, 첫째 선우군은 “한달 정도면 모르겠는데 6개월이나 친구들을 못 만나는 건 좀…” 하면서 망설였다. 그러자 동생의 설득이 시작됐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개구리도 잡고 학교도 매일 가고…. 꼭 같이 가자”는 세은양의 설득 끝에 선우군의 마음이 움직이자 이씨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유학 학교’로 지정된 학교들은 매일 등교가 가능한,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들이었다. 이씨는 그중 순천과 곡성의 3군데 학교를 신청했고 1순위로 신청했던 순천 월등초등학교에 배정되었다. 이씨는 남편을 서울에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1학기만 보내고 오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지난해 2월 순천으로 내려갔다.
순천 주동마을에 도착한 날 마을 이장님이 환하게 맞이해주었다. 제공받은 집은 내부가 편백으로 마감된 7평짜리 복층형 모듈하우스였다. 냉장고·텔레비전·전자레인지·세탁기 등이 갖춰져 있었고, 집 앞에는 화단이, 뒤에는 텃밭이 주어졌다. 옆에도 서울에서 유학 온 가족들을 위한 모듈하우스들이 나란히 있었다. 아이들은 “이거 매일 펜션에 사는 거 같겠다!”며 좋아했다. 학교에 등교한 첫날 세은양은 외쳤다. “엄마! 학교가 이렇게 재밌는 곳인지 몰랐어! 우리 2학기도 연장해요!”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기에 바빴지만 엄마도 바빴다. 학교에서 도서관 자원봉사도 하고 방역봉사도 했다. 화단에는 맨드라미, 천일홍, 피튜니아를 심고 텃밭에는 상추, 감자, 옥수수, 애호박을 키웠다. 복숭아 농사와 매실 농사를 짓는 마을의 일손을 돕기도 했다.
아빠가 서울에서 내려오면 마을 구경 다니고 인근 도시로 여행도 다녔다. 보성 녹차밭, 율포 해수욕장, 고흥만과 소록도, 남해 바다와 독일마을, 담양 죽녹원과 화순 고인돌마을 등…. 고흥 우주발사 전망대에서 누리호 발사 현장도 함께했다.
1학기가 마쳐갈 즈음 아이들의 부탁으로 2학기 체류를 신청했다. 그리고 2학기가 마쳐갈 즈음 또 연장했다. 그래서 이들 가족은 올해도 농촌유학 중이다.
이씨에게 농촌유학으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니까 저녁에 집에 오면 밥을 너무 잘 먹어요. 밥 먹고 씻고 나면 피곤해서 쓰러져 자요. 6학년 아들이 9시30분이면 자요. 서울에선 있기 힘든 일이잖아요.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유튜브나 게임을 할 시간이 없어요. 밖에서 신나게 뛰어노느라.”
보통 대도시 부모들이 농촌유학을 망설이게 되는 큰 이유는 학원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골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도 다양할 뿐 아니라 무료다. 이들 남매가 다닌 학교는 영어, 중국어, 드론, 컴퓨터, 피아노 등 9개 방과 후 수업이 전액 무료였고, 승마수업은 소액의 실비만 받고 진행됐다. 아이들은 특히 1주일에 2번씩 진행한 영화수업을 좋아했다. 학생들이 감독, 조감독, 배우를 맡아 영화를 만들었는데, 세은양은 좀비 영화의 감독을 맡았고 선우군은 뮤직비디오의 출연 배우를 맡았다.
아이들에게 농촌유학의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다. 선우군은 “학교에 매일 가는 거요!”라고 답했다. 불편한 점은 없을까? “친구들이 적은 거 빼고는 다 좋다”고 말했다. 전교생 수가 40명 안팎이라 학급별 인원수는 소수정예다. 선우군은 “가능한 한 여기서 오래 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언젠가 떠나야 하게 되면 굉장히 아쉬울 거 같다”고 말했다.
학생 수가 적은 것에 대해 세은양은 생각이 달랐다. “학생 수가 적어서 모두가 다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반면, “아빠가 보고 싶을 때”가 서울 생활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보고 싶은 것 말고는 평생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세은양은 종종 아빠에게 “직장을 바꿔서 여기에 내려오면 안 되냐”고 부탁한다.
농촌유학은 이 아이들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게 될까? 이하정씨는 “저희 아이들은 초등학생 시절을 행복으로 기억할 거 같다”고 말했다. “보통 서울 아이들은 학원과 숙제에 치여 사는데 우리 아이들은 매일매일 신나고 자유롭게 놀거든요. 아이들이 스스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해요. 그런 행복한 어린 시절을 제가 선물로 줄 수 있으니 저도 너무 행복하죠.”
이씨에겐 어떤 경험으로 남게 될까? 이씨는 지난해 5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순천연향도서관에서 ‘가족 글쓰기’ 프로그램에 등록해 농촌유학의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애초 도서관에서 비매품으로 펴낸 이 책은 최근 출판사를 통해 <슬기로운 농촌유학>(문예춘추사)으로 세상에 나왔다. “제가 평생 책을 쓸 거라곤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너무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됐잖아요. 농촌유학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거 같아요.”
아이들은 책을 받고서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네가 힘들고 지칠 때 이 책을 보며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고 힘을 내라’고.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처음 시작한 농촌유학 프로그램은 올해 성공적으로 2년차를 시작했다. 올해 1학기 신청 학생 수는 223명으로 지난해 1학기 학생 수(81명) 대비 약 3배로 늘었다. 신청 학생의 절반 이상이 학기 연장을 신청해 높은 만족도를 보여주고 있다.
농촌유학의 형태는 세가지다. 가족과 함께 내려가서 사는 가족체류형, 학교 근처의 농가에서 살며 학교를 다니는 홈스테이형, 유학생들이 지역센터에 함께 살면서 학교를 다니는 지역센터형이 있다. 가족체류형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지역센터형도 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당 초기정착금 50만원과 매달 유학비를 30만원 이상 지원한다. 오는 2학기 신청은 7월 중에 받을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양영식 교육혁신과장은 농촌유학의 인기 비결에 대해 “도시에서 경험하기 힘든 자연친화적인 교육환경, 개별 맞춤형 교육을 통한 학업능력 향상,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는 생태 가치를 배우고 생태시민으로 성장시키고자 한 교육 정책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높게 평가해준 덕분”이라며 “더 많은 지자체와 협의를 해서 농촌유학 지역을 더 확대시키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누리집에서는 지난해 농촌유학에 참여한 부모와 아이들의 수기집 <흙을 밟는 도시 아이들 이야기>를 내려받아 볼 수 있다.
글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사진 문예춘추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