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19일 열린 충북 지역 다문화 학부모 모임의 온라인 토론회 모습.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제공
“한국인 아빠와 중국인 엄마 사이에서 자라는 우리 딸을 보며, 내가 좀 더 교육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지 늘 고민했어요. 혹시 한국인 부모를 둔 가정의 아이들보다 부족한 것은 없는지 항상 생각하고요.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다문화가정 아버지들이 아이 교육을 위해 한발 나선 것이지요.”
중국인 여성과 결혼해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김민기씨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해 12월29일 창립한 충북 제천·단양 지역의 ‘우리 모두 다문화 아버지회’(이하 다문화 아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문화 아버지회는 김씨와 부인인 왕미초씨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다문화 아버지회는 충북에서는 최초이고 전국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이 모임은 다문화가정의 자녀 교육은 물론 다문화 교육정책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다문화가정의 대부분이 엄마가 외국인이고 아빠는 한국인인데, 한국인 남편들도 교육 현장에 목소리를 보태며 아이들의 다문화 정체성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29일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강당에서 ‘우리 모두 다문화 아버지회’ 회원들이 창립식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제공
충북 지역에서 다문화 학부모 교육공동체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이하 북부분원)에서 진행하는 다문화 학부모 대상 부모교육과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자녀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이 특히 반응이 좋다.
다문화 아버지회의 온라인 모임에만 50여명이 참여하고 있고 부모교육, 자녀와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 등을 열면 10명 이상의 학부모들이 꾸준히 북부분원을 방문한다.
충북 일부 지역 학교 교실에는 다문화가정 등의 이주배경을 가진 학생이 50~60%에 이른다. ‘친구의 엄마나 아빠가 한국인이 아닌 경우’가 늘었다는 이야기다. 다문화 학부모와 자녀를 위한 교육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류효숙 북부분원장이 다문화 학부모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가며 적극 지원했다.
북부분원의 문을 활짝 열어 다문화 아버지회를 비롯한 ‘다같이 즐거운 토요다문화학교’(이하 다즐토), 세계시민 아카데미, 어울림 가족캠프, 다문화 학생 대상 진로·멘토링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끌었다. 국제교육원이 문턱 없는 사랑방 역할을 자임하니 다문화 학부모들의 참여가 점점 늘었다.
류 분원장은 “영어교사로 일해오면서도 느꼈지만, 이미 교육 현장은 어떤 업무를 맡아도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나라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다문화 학부모들도 교육주체로 성장하고픈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시혜적인 입장에서 프로그램이나 커뮤니티를 꾸려가는 방식보다는 교육자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이분들도 똑같이 한국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있기에 학부모회 등을 꾸릴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준 것이지요.”
충북 지역 다문화 학부모 모임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요리 교실을 진행했다.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제공
다문화 학부모 공동체가 활발해지면서 아이들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라서 다른 엄마들처럼 나를 잘 못 챙겨줘” “난 엄마한테 한국어를 배운 적 없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말투야. 부끄러워”라는 식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다문화 학부모 공동체가 활발해지니 아이들이 부모의 활동을 더 반기게 된 것이다.
류 분원장은 “아이들도 ‘우리 엄마가 댄스 동아리 대표야’ ‘우리 아빠는 ○○모임에서 외국어를 가르쳐’ 이런 식으로 말하며 뿌듯해한다. 다문화 학부모들도 자신의 어학 능력이나 장기를 살려 서로가 서로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필리핀 어머님이 춤에 특기가 있으셨어요. 한국, 일본, 중국 어머님들과 함께 댄스 동아리를 꾸리기도 하고 전통요리 만드는 수업을 열기도 하면서 주체적으로 모임을 이끌더라고요. 네팔이나 일본 어머님 등은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배운 한국어 말고, 고급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 서로 같이 공부를 하기도 하죠. 그 모습을 아이가 자연스레 보고 배우는 겁니다. 교육의 선순환인 거죠.”
다문화 학부모 모임에서 함께 문화 다양성에 관한 영화를 본 뒤 소감 나누기를 하고 있다.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제공
유학생 시절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한국어 석사과정을 밟은 중국인 엄마,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 중인 네팔인 엄마 등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는 다문화 학부모들의 ‘스토리’도 이런 공동체 활동을 통해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
교육기관이 일종의 거점 기능을 하면서 소통이 활발해지니 다문화 학부모들도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디어에서 종종 다뤄지는 ‘숨겨야 할 것 같은’ 다문화가정의 모습 대신 서로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부모는 물론 아이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한 다문화가정의 아버지는 “시혜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 계속 참여하게 된다. 교육자치의 관점에서 모임이 진행되니 아이가 학교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문화 학부모 모임을 통해 외국인 아내와 살고 있는 어려움을 공유하기도 하고 낮잠 자는 문화를 가진 베트남 사회에 대해 공부도 하게 됐어요. 처음엔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래’라며 불만을 가졌는데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됐어요. 아이도 저의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지켜보며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고요.”
충북국제교육원 충주분원에서 다문화 학부모·학생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고영원 팀장(교사)은 “글로벌 다문화 학부모 포럼 등 지난해 6월부터 다문화 학부모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 다양성을 주제로 영화, 요리, 연극을 다루는 ‘해피레인보우’, 부모 역할 및 자녀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동아리, 해외 이주 엄마들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중언어 수업 동아리 ‘맘스스쿨’ 등이 있다”고 말했다. “10차시에 걸쳐 자녀 교육에 관한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동아리나 가족들이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볼 수 있는 역할극도 해봤습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깊이 공감해주는 시간이었죠.”
지난해 2월19일 열린 충북 지역 다문화 학부모 모임의 온라인 토론회 모습.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제공
‘다즐토’에서는 한국어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영어 등도 배울 수 있다. 중도 입국 및 이주 가정 학생들의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과 기초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고 사회성 발달을 돕기 위해 매주 토요일 충주분원과 북부분원에서 진행한다. 세계시민성을 키울 수 있고 언어교육을 겸할 수 있다는 입소문에 한국인 부모들이 “우리 아이도 다즐토에 보내고 싶다”고 문의해온다.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과 프로그램은 결국 ‘일반 시민들’에게도 유익하다는 이야기다.
다문화 아버지회를 비롯한 학부모 공동체의 핵심은 교육 자치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프로그램보다는 공동체 방식이 확장성을 갖추기에 적합하다. 류효숙 분원장은 “이주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공교육 현장에 주체적으로 참여해보면서 한 단계씩 밟아나갈 수 있도록 소통 창구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시민교육, 문화 다양성 교육의 관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결혼 이민자 및 외국인 가정이 계속 늘어나는 시대에 아이들이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역량을 키우려면 해당 가정의 부모교육이 선행되어야 하지요. 학부모 간 친목 도모뿐 아니라 다문화가정의 교육적 성장을 위해 학부모 커뮤니티 등을 활성화하며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울타리를 만들어보는 게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