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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생조합원이 운영…“사회적경제, 참 좋아요”

등록 2022-03-14 16:23수정 2022-03-15 02:30

협동의 힘 키우는 학교 현장

교육 현장에 안착한 사회적경제
‘학교협동조합’ 통해 협력의 힘 배워
학생이사들이 조합 살림 계획하며
소비와 지출의 선순환 구조 만들고
지역공동체 나눔·봉사 활동까지
매점운영분과 학생조합원들이 학교협동조합 매점 활성화 등 홍보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한 모습.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학교협동조합 매점의 취지를 알리고 친구들에게 사회적 경제에 관해 알리는 행사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매점운영분과 학생조합원들이 학교협동조합 매점 활성화 등 홍보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한 모습.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학교협동조합 매점의 취지를 알리고 친구들에게 사회적 경제에 관해 알리는 행사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학생조합원이라는 말, 생소하시죠? 우리 학교에는 ‘학생조합원, 학생이사’가 있어요. 사회적 경제를 배우며 협동조합을 꾸려가거든요.”

부산 만덕고등학교 3학년 이현승군의 말이다. 이군은 1학년 때부터 만덕고 사회적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학생이사’를 맡아 학교협동조합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기획하고 조합원 친구들과 함께 운영한다.

학교협동조합 일을 보면서 사회적 경제에 관한 개념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군은 “‘1일 창업, 나도 사장님’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의 새로운 방식을 알게 됐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과도 관련이 있어 조합 활동이 늘 즐거웠다”고 말했다.

학교협동조합은 학생 이사, 교사 이사, 학부모 이사, 감사 등으로 구성된다. 정기 회의를 통해 협동조합의 한 해 살림을 계획한다. 학생이사회에서는 매점운영분과, 협동조합홍보분과, 창업활동분과 등 세부 활동 계획을 세운다. ‘학생 강사단’도 조직해 졸업한 선배들과 함께 협동조합 및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교육활동을 논의하기도 한다.

학교협동조합이 뭐길래

‘사회적 경제’의 뜻은 나라와 제도의 성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통용되는 원칙이 있다. 사회적 경제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사회적 목적 추구, 지분에 근거하지 않는 경제적 성과 배분의 원리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 개념이 ‘학교협동조합’이라는 방식으로 안착했다.

학교협동조합은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가 일반적이다. 교육협동조합 등 일반 협동조합보다 공익적 가치와 목적, 비영리성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다. 일반 협동조합은 운영 사업에 제한이 없는 반면 사회적 협동조합은 전체 사업 가운데 법령에서 명시한 공익적 사업을 40% 이상 운영해야 하는 등의 규정이 있다. 학교협동조합은 방과 후 학교, 창업 프로그램, 농산어촌 지역 연계, 학교 매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2022년 1월 기준으로 전국에는 161개의 학교협동조합이 운영 중이다.

학교협동조합을 통해 학교를 기반으로 경제·사회·교육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경제 등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다.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지역 주민 등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협동조합기본법’상의 조직인 만큼 교육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살아 있는 경제교육 현장이기도 하다. 소비와 지출이 ‘공익’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학교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로, 공통의 경제·사회·문화·교육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학교 구성원인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 조직’이라고 규정한다.

학교협동조합 ‘학생 이사’들이 정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이사회는 매점운영분과, 협동조합홍보분과, 창업활동분과 등 세부 활동 계획을 세운다. ‘학생 강사단’을 조직해 졸업한 선배들과 함께 협동조합 및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교육활동을 논의하기도 한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학교협동조합 ‘학생 이사’들이 정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이사회는 매점운영분과, 협동조합홍보분과, 창업활동분과 등 세부 활동 계획을 세운다. ‘학생 강사단’을 조직해 졸업한 선배들과 함께 협동조합 및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교육활동을 논의하기도 한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부산 1세대 학교협동조합입니다”

만덕고 사회적협동조합은 부산에서 처음 만들어진 학교협동조합이다. 2016년 10월27일 교육부의 설립인가를 받은 뒤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협동의 열매를 맺어가며 성장했다. 학교 매점 ‘산드레’ 운영, 학생 경제교육, 학생 복지, 통합교육 지원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학생들과 교직원, 지역 주민이 자연스레 모이고 소통하는 ‘만덕사랑 나눔장터’가 대표적이다. 만덕고는 지난 2월 학교협동조합 참여 공모전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문난이 만덕고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협동조합 및 사회적 경제 교육을 진행하고자 설립했다. 친환경 먹거리를 판매한 수익금 등을 학생들의 장학과 복지에 활용한다”며 “지역 공동체와 협업해 다양한 진로탐색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협동조합은 마을과 학교가 끈끈하게 이어지는 통합교육의 장입니다. 학생들 스스로 협력과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협동조합 정신을 체험해 보면서 ‘대안 경제’에 관한 상상력도 키워갈 수 있지요.”

학생·학부모 조합원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홀몸 어르신에 대한 돌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반려식물 화분 나눔, 도시락 제공 등 정서 지원 활동을 했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학생·학부모 조합원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홀몸 어르신에 대한 돌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반려식물 화분 나눔, 도시락 제공 등 정서 지원 활동을 했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학교와 지역 공동체가 ‘따로 또 같이’

5년간 차근차근 쌓아온 협동의 힘 덕분에 만덕고는 지역 주민들과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학교협동조합의 다양한 사업들이 주춤한 적도 있지만 학생조합원들은 길을 찾아냈다. 직접 만든 반려식물 화분과 도시락을 들고 지역의 독거 어르신을 찾아 정서 지원 봉사활동에 나선 것이다. ‘노인 봉사단’ 양성 프로그램, 1인 가구 대상 목공예 수업 등을 통해 학교와 마을을 잇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독거 어르신 등 봉사 대상을 학생조합원들이 직접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이때는 주민센터와 복지관 등 지역 공동체와 손잡고 대상자를 발굴해 조합 활동에 나섰다. 공교육 현장과 지역 행정·복지센터가 연계된 교육과 봉사가 자연스레 진행됐다.

문 이사장은 “학교가 마을로, 마을이 학교 안으로 서로 연결돼 실질적인 마을 교육 공동체의 역할을 원활히 진행하고 있다. 마을선생님과 학생조합원들이 함께 반려식물 심기, 도시락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며 배움이 곧 나눔으로 이어지도록 구성한다”며 “학교협동조합이 지닌 가치와 역량을 꾸준히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학생이사들과 논의하며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협동조합 동아리 활동 시간에 마카롱을 만들고 있다. 학교 동아리 활동 시간에 마을선생님을 초빙해 제품을 기획, 제작, 공유하는 사회적 경제의 다양한 사례를 경험한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학생들이 협동조합 동아리 활동 시간에 마카롱을 만들고 있다. 학교 동아리 활동 시간에 마을선생님을 초빙해 제품을 기획, 제작, 공유하는 사회적 경제의 다양한 사례를 경험한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사회적경제 배움도 ‘내리사랑’

고3이 된 학생이사로서 이현승군은 졸업 뒤의 학교협동조합 활동까지 계획하고 있다. 만덕고 사회적협동조합은 ‘학생 강사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협동조합을 경험한 졸업생들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졸업생 신분으로도 자연스레 학교를 찾을 수 있는 건 3년 동안 몸으로 배운 ‘협동의 힘’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군은 “졸업한 뒤에도 학교협동조합을 찾아 후배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나눠주는 ‘학생 강사단’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라며 “우리 학교협동조합의 전통이기도 하다. 졸업생이 되면 협동조합 활동을 갑자기 그만두는 게 아니라 ‘내리사랑’처럼 사회적 경제에 관한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 역시 ‘학생 강사단’ 선배들에게 많이 배웠거든요. 학교협동조합은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는 꿈터 역할을 해요. 보통 ‘고등학교’ 하면 시험, 대입, 삭막한 교실 분위기를 떠올릴 텐데, 학교 다니는 동안 협동의 힘을 배우다 보니 ‘서로 잘되는 것’에 대한 연대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11월23일 ‘만덕사랑 나눔장터’에서 학생조합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눔장터는 학생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한다. 기획, 섭외, 부스 운영 등 행사 전반을 이끌고 학교협동조합 활동과 성과 등을 공유한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지난해 11월23일 ‘만덕사랑 나눔장터’에서 학생조합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눔장터는 학생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한다. 기획, 섭외, 부스 운영 등 행사 전반을 이끌고 학교협동조합 활동과 성과 등을 공유한다. 만덕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문 이사장은 아이가 만덕고 재학생이던 2016년 학교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협동조합에 관한 매뉴얼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다. 학교에 교실이 아닌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를 다들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던 때다.

한데 ‘과연 이걸 누가 할 것인가. 왜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의구심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교사들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교육의 가치’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문 이사장은 아이가 졸업한 뒤에도 협동의 매력에 빠져 지역 공동체와 학교를 잇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는 영어와 국어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미리 경험하고 새로운 경제를 상상해보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5년 동안 학교협동조합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교육공동체와 협동조합을 아우르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매점만 해도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단순히 간식을 사 먹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구입한 아이스크림 1개가 우리를 위한 복지와 연대로 돌아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지요. 수익을 내는 여러 방식과 사회적 경제가 선순환되는 구조를 배우고, 자연스레 협동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지요.”

학생들이 협동조합 매점을 운영하는 모습. 남해 상주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무지개’ 제공
학생들이 협동조합 매점을 운영하는 모습. 남해 상주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무지개’ 제공

협동의 색은 일곱빛깔 무지개

경남 남해군에도 학교협동조합이 있다. 대안학교인 상주중학교에는 학생들이 창립한 ‘무지개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 매점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경제를 이해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주중 무지개 협동조합은 이 학교 학생들이 교육청 공모를 통해 설립한 조합이다. 2018년 창립 당시 학부모들이 운영하는 ‘동고동락 협동조합’으로부터 설립 절차에 관한 조언도 받았다.

학생조합원이 자치 활동을 통해 학교 매점을 직접 운영하며 수익금은 장학금으로 활용한다. 소비와 지출이 자연스레 나눔 활동으로 이어진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협동조합의 날’을 기획해 협동조합의 가치와 운영 원리를 배우기도 한다.

상주중학교와 마을을 둘러싼 협동조합이 활성화되기까지 학부모인 이종수 동고동락 협동조합 이사장이 발품을 많이 팔았다. 아이들에게 협동의 힘, 대안적인 삶에 대한 길을 알려주고 싶어 이 이사장과 네 가족이 남해에 터를 잡으며 마을공동체와 학교협동조합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학교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뿐 아니라 대안 경제에 관한 감각도 함께 익힌다. 매점 운영, 창업동아리 아이디어 공모, 다양한 사회적 기업에 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아이들 스스로 협동의 힘을 키워가며 자기 진로를 살펴나가는 것이다. 인생에는 학교 졸업, 대학 입학, 취업하기 등과 같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알게 된다.

이 이사장은 “목표는 네 가지다. 경쟁이 아닌 연대하는 삶의 공동체, 학교와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교육공동체, 개인 소비적 삶이 아닌 함께 나누는 경제 공동체, 함께 먹고 춤추고 노래하는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워주는 거죠. 온 마을이 함께하는 학교협동조합 활동을 통해서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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