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참교육학부모회와 전교조가 공동 주최한 졸업앨범 전시회에서 학부모들이 전시된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다. 화수중 학운위 제공
[표지이야기] 고양 화수중 ‘우리들의 학운위’
학부모회 학년 대표가 위원 겸임
민주적 의사결정 참여 이끌어
급식·졸업앨범·수학여행 등 척척 ‘치맛바람’을 일으키거나, ‘뒷담화’를 늘어놓거나.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은 이 두 가지로 표출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자녀 교육열이 오히려 학부모들로 하여금 학교 앞에서 스스로 몸을 낮추게 해, 건강한 학교 참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자식 맡겨 놓은 죄인’이 아니라 당당한 교육 주체로서 학교 운영에 참여할 때 비로소 학교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다. 경기 고양 화수중학교는 학부모 참여에서 희망적인 변화의 씨앗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화수중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의 지난 1년 활동을 통해 ‘내 아이’만을 위한 이기적인 학교 참여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학교 참여가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본다. “학부모회 활동을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흔히들 학부모회 하면 돈을 먼저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우리 학교는 달라요. 단지 돈으로 때우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대끼면서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정말 보람 있었어요.” 화수중 학부모 김난원(42)씨는 지난 1년 동안 학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학부모의 건강한 학교 참여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른 학부모 중에도 학기 초에 비해 학부모회 활동의 긍정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 학교 학부모들의 이런 의식 변화의 밑바탕에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자리잡고 있다. 화수중 학운위의 가장 큰 특징은 학부모회와 하나가 돼 움직인다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경우, 학년별 학부모회에서 먼저 의견을 수렴한 뒤, 그 결과를 학운위 회의 때 반영하는 구조다. 학부모회와 학운위가 따로 노는 여느 학교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 학교는 학운위와 학부모회의 일원화를 위해 지난해 학기 초에 학운위 학부모위원 선출 방식을 바꿨다. 학부모들이 각 학년별로 학부모회 대표 2명씩을 뽑으면 학년별 대표가 학운위 학부모위원을 함께 맡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학급 학부모회-학년 학부모회-학운위’로 이어지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췄다. 학부모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학년별 정기 학부모회의를 열어 크고 작은 학교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급하게 논의할 일이 있을 때는 반 대표들만 모여 회의를 열기도 한다. 학운위 회의에 의제와 관련된 학부모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참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다. 학운위와 학부모들의 첫 만남인 학부모 총회 때에는 한 해의 사업계획을 미리 설명하고 앞으로 정기적인 학년회의를 통해 그때 그때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회 대표이면서 동시에 학운위 위원으로서, 학부모회의 의견을 수렴해 학운위에 반영하고, 학운위 논의 결과를 다시 학부모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학부모위원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손품과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학운위원장인 학부모 김수경(41)씨는 “좀더 많은 학부모의 참여와 의사소통에 역점을 두고 학부모 활동을 해왔다”며 “그러다 보니 일은 많이 늘었지만 학교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변화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4월 초 2학년 수학여행 예정지였던 강원도 낙산사 일대에 큰 산불이 났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학교 쪽은 수학여행 일정을 취소한 뒤, 다른 여행지 물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2학년 임시 학부모 회의에서 뜻밖의 결정의 나왔다. 토론 끝에 “화재로 인한 피해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산 교육이고, 큰 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예정대로 수학여행을 가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결국 2학년 학급 학부모 대표들이 참관한 가운데 열린 학운위에서 표결을 거쳐 낙산사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회수중 학운위는 지난 1년 동안 학부모와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치러냈다. 4월에는 학부모위원들이 중심이 돼, 3학년 담당 교사와 행정실장, 3학년 학부모들이 함께 참교육학부모회와 전교조가 주최한 졸업앨범전시회에 참여했다. 전년도 각 학교의 졸업 앨범 값과 질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회에 다녀온 뒤 앨범업자와 간담회를 열어, 앨범 값은 한 개당 6000원씩 깎고 지면은 늘려 계약했다. 특히 학생들이 자기 반의 개성을 살려 표현할 수 있는 지면도 확보했다. 김 위원장은 “학생들이 앨범 제작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처음 실시된 직영 급식에 대한 학부모들의 이해와 참여를 높이기 위해 외부 강사를 초청해 학부모 급식교육도 실시했다. 급식 모니터 활동의 필요성과 방법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 뒤 학운위 산하에 급식소위원회를 꾸려 매일 아침 학부모 급식 검수위원들이 돌아가며 급식에 쓰일 식자재의 양과 질을 엄마의 눈으로 꼼꼼히 살피고 있다. 급식소위 학부모들이 직접 식자재 납품업체를 방문해 사업장이 청결한지, 급식공급업체가 지켜야 할 사항을 제대로 지키는지 등을 점검한다. 5월에는 ‘급식 후원의 날’ 행사를 열어 급식 검수위원이 아닌 일반 학부모들도 급식을 직접 먹어 보고 모니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행사장에서 저소득층 학생 급식비 지원을 위한 자발적인 모금 활동도 벌여, 모은 돈을 ‘급식비 지원’이라는 명목을 지정해 학교발전기금으로 접수했다. 학부모 이순정(43)씨는 “많은 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학부모 회비를 일괄 징수한 뒤 학부모회 간부와 학운위 학부모위원 몇몇이 알아서 지출하는 게 관례”라며 “그러나 우리 학교는 학운위가 학부모회와 충분히 토론해 사업을 기획하고, 그때마다 공식 공문을 통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걷고 적은 액수라도 결산 보고를 하는 등 매우 투명하게 운영이 이뤄진다”고 자랑했다. “우리 학부모들이 스스로 학교 담을 높인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밖에서 불평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야지요. 학운위는 학부모가 건강하게 학교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김 위원장이 새 학기를 앞두고 학부모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민주적 의사결정 참여 이끌어
급식·졸업앨범·수학여행 등 척척 ‘치맛바람’을 일으키거나, ‘뒷담화’를 늘어놓거나.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은 이 두 가지로 표출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자녀 교육열이 오히려 학부모들로 하여금 학교 앞에서 스스로 몸을 낮추게 해, 건강한 학교 참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자식 맡겨 놓은 죄인’이 아니라 당당한 교육 주체로서 학교 운영에 참여할 때 비로소 학교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다. 경기 고양 화수중학교는 학부모 참여에서 희망적인 변화의 씨앗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화수중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의 지난 1년 활동을 통해 ‘내 아이’만을 위한 이기적인 학교 참여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학교 참여가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본다. “학부모회 활동을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흔히들 학부모회 하면 돈을 먼저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우리 학교는 달라요. 단지 돈으로 때우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대끼면서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정말 보람 있었어요.” 화수중 학부모 김난원(42)씨는 지난 1년 동안 학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학부모의 건강한 학교 참여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른 학부모 중에도 학기 초에 비해 학부모회 활동의 긍정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 학교 학부모들의 이런 의식 변화의 밑바탕에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자리잡고 있다. 화수중 학운위의 가장 큰 특징은 학부모회와 하나가 돼 움직인다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경우, 학년별 학부모회에서 먼저 의견을 수렴한 뒤, 그 결과를 학운위 회의 때 반영하는 구조다. 학부모회와 학운위가 따로 노는 여느 학교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 학교는 학운위와 학부모회의 일원화를 위해 지난해 학기 초에 학운위 학부모위원 선출 방식을 바꿨다. 학부모들이 각 학년별로 학부모회 대표 2명씩을 뽑으면 학년별 대표가 학운위 학부모위원을 함께 맡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학급 학부모회-학년 학부모회-학운위’로 이어지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췄다. 학부모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학년별 정기 학부모회의를 열어 크고 작은 학교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급하게 논의할 일이 있을 때는 반 대표들만 모여 회의를 열기도 한다. 학운위 회의에 의제와 관련된 학부모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참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다. 학운위와 학부모들의 첫 만남인 학부모 총회 때에는 한 해의 사업계획을 미리 설명하고 앞으로 정기적인 학년회의를 통해 그때 그때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회 대표이면서 동시에 학운위 위원으로서, 학부모회의 의견을 수렴해 학운위에 반영하고, 학운위 논의 결과를 다시 학부모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학부모위원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손품과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학운위원장인 학부모 김수경(41)씨는 “좀더 많은 학부모의 참여와 의사소통에 역점을 두고 학부모 활동을 해왔다”며 “그러다 보니 일은 많이 늘었지만 학교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변화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4월 초 2학년 수학여행 예정지였던 강원도 낙산사 일대에 큰 산불이 났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학교 쪽은 수학여행 일정을 취소한 뒤, 다른 여행지 물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2학년 임시 학부모 회의에서 뜻밖의 결정의 나왔다. 토론 끝에 “화재로 인한 피해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산 교육이고, 큰 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예정대로 수학여행을 가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결국 2학년 학급 학부모 대표들이 참관한 가운데 열린 학운위에서 표결을 거쳐 낙산사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회수중 학운위는 지난 1년 동안 학부모와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치러냈다. 4월에는 학부모위원들이 중심이 돼, 3학년 담당 교사와 행정실장, 3학년 학부모들이 함께 참교육학부모회와 전교조가 주최한 졸업앨범전시회에 참여했다. 전년도 각 학교의 졸업 앨범 값과 질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회에 다녀온 뒤 앨범업자와 간담회를 열어, 앨범 값은 한 개당 6000원씩 깎고 지면은 늘려 계약했다. 특히 학생들이 자기 반의 개성을 살려 표현할 수 있는 지면도 확보했다. 김 위원장은 “학생들이 앨범 제작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처음 실시된 직영 급식에 대한 학부모들의 이해와 참여를 높이기 위해 외부 강사를 초청해 학부모 급식교육도 실시했다. 급식 모니터 활동의 필요성과 방법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 뒤 학운위 산하에 급식소위원회를 꾸려 매일 아침 학부모 급식 검수위원들이 돌아가며 급식에 쓰일 식자재의 양과 질을 엄마의 눈으로 꼼꼼히 살피고 있다. 급식소위 학부모들이 직접 식자재 납품업체를 방문해 사업장이 청결한지, 급식공급업체가 지켜야 할 사항을 제대로 지키는지 등을 점검한다. 5월에는 ‘급식 후원의 날’ 행사를 열어 급식 검수위원이 아닌 일반 학부모들도 급식을 직접 먹어 보고 모니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행사장에서 저소득층 학생 급식비 지원을 위한 자발적인 모금 활동도 벌여, 모은 돈을 ‘급식비 지원’이라는 명목을 지정해 학교발전기금으로 접수했다. 학부모 이순정(43)씨는 “많은 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학부모 회비를 일괄 징수한 뒤 학부모회 간부와 학운위 학부모위원 몇몇이 알아서 지출하는 게 관례”라며 “그러나 우리 학교는 학운위가 학부모회와 충분히 토론해 사업을 기획하고, 그때마다 공식 공문을 통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걷고 적은 액수라도 결산 보고를 하는 등 매우 투명하게 운영이 이뤄진다”고 자랑했다. “우리 학부모들이 스스로 학교 담을 높인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밖에서 불평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야지요. 학운위는 학부모가 건강하게 학교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김 위원장이 새 학기를 앞두고 학부모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당부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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