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신용등급관리위원, 통계청, 국세청, 급식도우미, 한국전력,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여러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통계청’ 직업을 가진 학생은 학급 안에서 다양한 통계를 내고 장부에 기록한다. 옥효진 교사 제공
“나 이번에 ‘국세청’ 일을 하게 됐어. 세금에 대해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난 ‘통계청’에서 일할 건데 월급이 310미소래. 신용등급을 계속 잘 관리할 거야.”
“근데 얘들아, 공지사항 봤어? 국가(우리 반)에 세금이 부족해서 다음달부터 소득세를 5% 더 인상한대. 지금 우리 반 경제 위기로 실직한 친구들도 생겼다는데….”
등교하면 세금 내는 아이들이 있다. 옥효진 교사(부산 송수초)의 반 아이들은 학급화폐 ‘미소’를 사용하고 1인 1직업을 갖고 있다. 구직 활동을 통해 맡은 일을 한 뒤 월급을 받고 ‘은행원’에게 저축한다. 자신의 신용등급을 관리하면서 1분단, 2분단 등 원하는 자리를 선택하며 주택 청약도 경험한다.
옥 교사는 ‘세금 내는 아이들’이라는 주제의 학급경영법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교실에서 이게 가능하다고?”라는 질문에 옥 교사는 답한다. “모든 학생이 1년간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냅니다. 제 몸무게가 변화하는 추이를 살피며 ‘주식 투자’도 경험하고요. 국무회의를 열어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감사’도 합니다.”
돈으로 움직이는 교실 이야기 ‘세금 내는 아이들’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옥 교사의 반 아이들이 관리하는 신용등급은 학급화폐의 예금 이자율에 영향을 준다. 은행원을 맡은 학생이 관리하는 예금 상품 표에는 신용등급(1~10등급)은 물론 1등급은 이자율 20%, 5등급은 8% 등이 적혀 있다.
아이들은 중도 해지의 아쉬움을 맛보기도 하고 적금 만기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숙제와 통신문 제출, 악기와 체육 등 인증제를 통해 올릴 수 있는 신용등급은 취업할 때 자격 기준이 된다.
신용평가위원을 직업으로 가진 학생이 하는 일은 통계청을 맡은 친구에게 ‘통계 기록표’ 등 자료를 받아 신용 포인트를 기록하는 것이다. 동그라미 하나는 신용 포인트 +1, 엑스 하나는 -1이다. 예를 들어 3월10일에 일기(×), 수학 숙제(○), 3월11일에 현장체험 참여 신청서 제출(×) 등 학급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과 숙제 제출 여부, 문서 관리 등의 항목이 통계청에 집계돼 신용 포인트와 등급이 나오는 방식이다. 교실이 하나의 경제 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되는 셈이다.
‘학급 국가’의 대통령인 교사가 세금을 횡령하면 아이들은 ‘국정농단’이라고 받아친다. 교사가 세금(학급 공금)으로 과자를 사 먹으면 아이들은 감사 역할을 맡고 국무회의를 열어 시민들이 낸 세금을 왜 함부로 쓰면 안 되는지 생각하고 관련 뉴스도 만들어본다.
아이들은 국무회의에서 “세금은 나라(학급)를 위해 쓰는 것이다” “횡령하면 대통령을 탄핵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옥 교사는 “단순히 세금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낸 공적인 세금이 나라 곳곳에 잘 쓰이는지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우리 반 세금을 어떻게 쓸까?” 아이들이 학급화폐로 걷은 세금을 알차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고 있다. 옥효진 교사 제공
학급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가상의 화폐 ‘미소’를 이용해 아이들은 구직 활동을 위한 자격증을 따고 월급도 받는다. 매월 받은 급여로 저축, 투자 활동, 부동산(학급 자리) 구매를 한다. 직업은 자신의 적성과 월급, 갖고 있는 자격증, 신용등급을 고려해 정하고 우체부, 한국전력, 감사원, 통계청, 인테리어 디자이너, 낙농협회(우유 급식), 급식 도우미, 쓰레기 수거 업체 등에 지원한다.
월급 명세서에는 다양한 세금 항목이 적혀 있다. ‘소득세(-15%), 자리 임대료, 건강보험료, 전기요금’ 등 각종 공제 항목 끝에 ‘실수령액’이 있다. 부모 세대라면 스무살 이후에나 처음 만났던 ‘실수령액’이라는 글자를, 이 학생들은 초등 5~6학년 때 알게 된다.
자신이 땀 흘려 번 돈의 소중함과 국가에 내는 세금의 의미, 전기와 건강보험 등 나라에서 전체적으로 잘 관리해야 하는 공적 기금의 중요성, 이렇게 걷어간 세금이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 등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원-달러 환율, 오늘의 주가, 세금과 우리 반 법 등이 붙어 있는 교실 게시판 모습. 옥효진 교사 제공
교실 안에 증권사도 있다. ‘쌤(선생님) 몸무게’ 주가로 투자 수익률을 올리는 증권사가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원-달러 환율과 쌤 몸무게를 고려해 주식을 사고팔면서 건강한 투자란 무엇인지 체득하게 된다.
선생님의 몸무게를 주가로 삼는 방식인데 ‘쌤 내일 뷔페 갈 예정’ ‘주말에 야구 모임 참석’ 등의 정보를 알려주면 아이들이 이를 활용해 투자한다. 옥 교사는 날마다 자신의 몸무게와 환율을 학급 게시판에 붙여둔다.
옥 교사는 증권사의 경우 학급화폐 활동이 자리 잡은 4~5월에 도입하길 권했다. 아이들이 학급화폐에 익숙해져야 하고, 투자보다는 저축 습관을 먼저 기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기 초에는 1년 동안 아이들 자신이 어떤 직업을 통해 어떻게 돈을 모으고 관리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자본 마련을 위한 시간’을 주는 의미가 있다.
저축하면서 투자를 병행하면 반 안에서는 ‘탕진잼’(돈을 낭비하는 재미)에 빠져 파산하는 학생과 ‘워런 버핏도 울고 갈 투자의 귀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교실 속 여러 상황을 잘 살피며 경제 관리 능력을 보여준 학생의 경우, 직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미리 취득하고, 월급을 받으면 60%는 바로 저축했다. 남는 돈을 주식에 투자해 30% 이상의 수익도 올렸다.
반대로 파산한 학생의 경우 월급을 저축하지 않고 복도에서 뛰다가 걸려 벌금에 많은 돈을 썼다. 점심시간에 디제이(DJ)에게 노래를 신청하는 데 거의 모든 돈을 다 써버려 결국 학급화폐 활동을 포기하기도 했다. 옥 교사는 “학급화폐 활동을 해보면 성공하는 학생도 있고 실패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경제활동 전반에 관한 상황을 초등 교과과정과 연계해 살아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1분단, 2분단 등 부동산 분양에 관한 내용을 본 뒤 추첨함에 청약통장을 넣고 있다. 옥효진 교사 제공
옥 교사의 반에는 경제 위기도 찾아온다. 학기 초에는 아이들 모두가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 6월쯤부터는 직업 수와 해당 직업에 필요한 인원수를 줄여버린다.
아이들이 직업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월급이 꾸준히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돈을 계획적으로 쓰지 않는 시점이 오기 때문이다. 학생 수는 30명인데 일자리 공고가 15개만 올라오면 아이들은 “아, 돈을 미리 좀 모아둘걸” “지금 가진 돈으로 (직업 없이) 한달을 버텨야 한다니…”라고 말하며 돈 관리와 계획적인 경제활동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다.
옥 교사는 “학급에서 경제 위기 상황을 마련해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면 월급을 계획적으로 사용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를 겪은 뒤에는 다음달에 취직하기 위해 학급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합니다. 취직에는 자격증이 필요한데 자격증은 각종 인증제(악기, 줄넘기, 독서 등)와 단원평가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어요. 매달 한번씩 직업을 새로 뽑는데, 다음달에 필요한 직업과 월급, 자격 요건 등을 미리 학급 게시판에 공지합니다. 미리 계획할 수 있도록요.”
학생들이 ‘은행원’에게 가서 자신의 월급을 저축하는 모습.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저마다 직업을 선택해 맡은 일을 한 뒤 학급화폐로 월급을 받는다. 옥효진 교사 제공
학급화폐 ‘미소’를 사용하다 보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도 일어난다. 돈이 쌓이니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문제도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 직업을 줄이거나 실업률을 높이고 월급을 낮추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물가조절이 쉽지만은 않다. 이렇듯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경제활동을 6학년 사회과 과정과 연계해 가르친다. ‘나랑은 관계없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던 경제와 금융이 아이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코로나19 이후로는 학급화폐 활동을 온라인으로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못하니 ‘교실 국가’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이때 국채를 발행해 재난지원금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의결권을 행사하며 국회 본회의(학급회의)를 통해 재난지원금을 얼마나 지원할지, 언제 지급할지, 누구에게 지급할지 등을 토론으로 결정했다. 자연스럽게 정치와 경제·민주시민 교육으로 이어졌다.
한 학생의 통장. 월급, 예금 만기, 중도 해지, 투자, 달러 환율 등 다양한 내용이 적혀 있다. 옥효진 교사 제공
반 학생들이 모두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옥 교사의 학급화폐 활동은 자연스레 진로·직업교육으로도 연결된다. 아이들의 창직 활동을 돕기 위해 교실 한쪽에는 ‘새로운 직업 제안서’가 마련돼 있다. 직업에 관한 ‘열린 사고’를 키워주고 싶어서다. 장래 희망을 적어내는 칸에 ‘공무원, 의사, 가수’ 등 하나의 직업만 적어냈던 3040 부모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교육법이다.
직업을 여러개 동시에 가질 수도 있다는 점, 원래 있던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운 일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 경제 위기로 직업이 없어져도 ‘무직’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업을 만들어봐야지’라는 식으로 창직 활동을 격려해주며 도전 의식도 키워준다. 새로운 직업 제안서를 통해 학급에는 보드게임 관리인, 디제이(DJ) 등이 생겼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소독 기계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방역요원’ 학생은 창직 제안서를 쓴 뒤 새로운 직업을 갖고 다시 학급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옥효진 교사가 직업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것에 대해 수업하고 있다. 옥효진 교사 제공
1년 동안의 시간을 들여 이렇듯 경제교육을 하는 이유에 대해 옥 교사는 “나 자신이 ‘돈을 벌어도 관리는 못 하는 어른’이 된 것에 대해 고민해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옥 교사는 고교 시절 수능 사회탐구 경제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지만 그때 배운 개념을 사회에서 곧바로 적용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 점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못 미치는 등 우리나라 성인의 전반적인 금융 이해력이 낮은 데에는 공교육 현장에서 경제·금융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다는 이야기다.
옥 교사는 학교 경제교육에 대해 “금융과 경제 문제는 어른이 되면 피할 수가 없다. 저도 예·적금 차이를 구분 못 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 느꼈죠. ‘공교육에서 삶에 필요한 경제교육이 전혀 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요. 통장을 어떻게 만드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많이 아쉽습니다. 한 아이의 인생 전반을 책임지는 의무교육기관인 학교가 ‘우리 아이들 삶에 필요한 상식’을 가르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세금 내는 아이들’을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나 같은 시행착오를 최대한 덜 겪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죠.”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