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우리 아이 고전 읽기
<면도날>은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재미’를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았던 서머싯 몸의 3대 장편 소설 중 하나다.
<면도날>은 한번 잡으면 졸음이 쏟아지거나 급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손에서 놓기 힘든 몰입감을 자랑하며, 특히 인생을 관조하는 철학이나 시대적 배경을 상징하는 인물 설정이 압권이다. 주인공 래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조종사로 활약하다가 제대한다. 래리는 죽음이라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쾌락과 세속적인 출세에 탐닉하는 것을 비판하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농노들과 함께 살려고 했던 톨스토이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부와 명예를 거부하고 책을 읽으며 지혜를 탐구하는 인생을 걷기로 한다. 반면 아름다운 그의 약혼자 이사벨은 래리를 사랑하지만, 다른 부유한 남자와 결혼을 한다. <면도날>은 미국 경제가 너무 좋아서 ‘광란의 시대’라 부르는 1920년대부터 대공황의 시대인 1930년대를 관통한다.
이사벨은 ‘광란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가능한 한 많은 부를 축적해서 사치와 파티를 즐기며 살았던 시대상을 상징한다. 반면 래리는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묵묵하게 걷고 인생의 행복이란 정신적인 삶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래리와 이사벨의 시대에서 1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청소년들도 래리와 이사벨이 했던 같은 고민을 해야 하는 운명이다. 자신의 적성과 인생관을 좇을 것인지 부와 명예가 기다리는 길을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정신적인 삶을 갈구한 래리의 길을 걷는다고 해서 돈과 무관한 인생을 살 수는 없다. 래리가 비록 책과 지혜의 길을 걷기로 하지만 그에게는 직업을 가지지 않고 공부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기본 소득이 있었다. 문제는 ‘사치품’을 목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는 수준의 소득에 만족하고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길을 갈 것인지의 선택이다.
돈과 명예가 따르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이사벨만 해도 부자와 결혼했지만, 대공황의 시대가 되면서 남편이 파산하지 않았는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일이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더 빨리 더 많이 변화한다. 오늘의 유망한 직업이 내일의 사라진 직업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남편이 파산하고 자식 두명을 건사해야 했던 이사벨은 그때서야 래리가 자신에게 청혼하면서 제안했던 수입으로 자식 두명을 양육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가족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기보다는 본인이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보다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쪽이 인생의 행복에 더 가깝다.
박균호 교사 |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 저자
W. 서머싯 몸.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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