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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잘리는 건 머리가 아닌 인권”…끝나지 않는 ‘학생두발수난기’

등록 2022-02-02 09:03수정 2022-02-02 09:53

2000년대 이후 두발·복장 규제 철폐 요구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일부 변화 있다지만
‘학칙은 학교장 재량’탓 구시대적 학칙 여전
2005년 5월14일 오후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촛불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청소년 두발규제 폐지와 학생인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5월14일 오후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촛불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청소년 두발규제 폐지와 학생인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5월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학생 70여명이 모였습니다. 두발 규제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서였는데요, 한 고등학생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마지막 바리깡(전기이발기)’이라고 쓰인 상자에 넣는 퍼포먼스로 항의의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교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한 여학생은 “학생회장 선거에서 두발자유화를 공약으로 삼았더니 교장선생님이 따로 불러 공약을 새로 만들라고 했다”며 “처음엔 반발했지만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고 이런 현실이 매우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머리카락을 잘랐던 고등학생이 30대 중반이 될 정도로 긴 시간입니다. 2022년의 학교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시·도별로 지역적 분위기나 학생인권조례 제정 여부 등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힘든데요, 올해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10주년을 맞이한 서울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학생인권교육센터가 2019년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학교가) 두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취지의 답변이 중학생은 57.3%, 고등학생은 52%로 조사됐습니다. 두발 길이의 경우 대부분 자유화됐지만 파마를 허용하는 학교는 68.2%, 염색을 허용하는 학교는 58.3%였습니다.

조례의 내용에 견주면 아쉬운 수준입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12조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고 학교장과 교직원은 학생 의사에 반해 용모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례에 처벌 조항이 없는 등 강제성이 없고 결정적으로 초·중등교육법상 학칙 제·개정 권한이 학교장에 있다보니 학생인권조례가 오롯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11월 서울 중·고교 31곳 학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학칙 개정을 권고받기도 했습니다. 인권위는 이들에게 “헌법 제10조에서 보호하는 개성을 발현할 권리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같은 학생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두발과 복장 등 용모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학칙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인권위에 따르면 10여개 항목 이상을 제한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주요 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발 관련
▶염색·파마 제한
▶머리카락 길이가 어깨를 넘으면 묶어야 함
▶똥머리, 투블럭, 스포츠형 등의 머리모양을 금함 등

복장 관련
▶외투를 착용하려면 지정된 교복을 모두 착용해야 함
▶학교와 관련없는 외투나 사복의 착용을 금지함
▶교복 위 담요 사용을 제한함
▶체육복을 착용한 상태로 등·학교를 금지하거나, 교내에서 체육시간 외 체육복 착용을 금지함
▶액세서리 착용을 제한함(염주·묵주 등 종교적 장신구 착용도 금지)
▶신발과 양말의 색상·모양 등을 제한함
▶치마길이를 제한함 등

이런 학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똑같은 모습을 강요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학생 구성원 일체가 획일적인 모양을 하여야만 ‘단정한 용모’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야만 교육질서가 이뤄진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며 “학생들은 염색, 파마, 두발의 길이를 자유롭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면서도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단정함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기본권 행사의 주체”라고 못박았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대전, 대구 등지에서도 유사한 내용으로 인권위 권고를 받은 학교들이 있습니다만, 이 학교들은 인권위 권고를 1년 이상 묵살한 채 학칙 개정에 미적대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칙에 ‘지역적 분위기’도 반영된다고 입을 모읍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6곳(경기, 서울, 전북, 광주, 충남, 제주)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와 부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학생인권 침해 사례 75건을 제보받았는데요, 부산의 한 공립 직업계고에서는 머리카락 염색·파마는 물론 똥머리, 집게핀·고데기 사용까지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공립 중학교는 머리카락이 귀 밑 30㎝가 넘는지를 자로 재서 검사한다고 합니다. 손톱 길이를 검사하는 학교, 가방은 검정색 백팩만 허용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학교별 복장 규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타킹 색깔은 검은색만 가능. 외투는 동복 위에 입어야 함. 롱패딩 길이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지양함. 액세서리 착용 금지. 명찰 착용 강제(부산 ㄱ 사립 중학교)
▶교복에 속옷이 비치면 안됨. 영하까지 내려가는 날씨에도 교복치마를 입게 함. 춥다고 하면 (바지 대신) 스타킹이나 레깅스를 신으라고 답변함(부산 ㄴ 공립 중학교)
받쳐입는 면티 색깔은 어두운 색만 가능. 신발은 운동화만 가능. 비가 와서 슬리퍼를 신으면 집으로 돌려보내고 무단 지각처리(부산 ㄷ 사립 인문계 고등학교)

지난 26일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10주년 기념식 및 인권포럼’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난다’ 활동가는 “한국 사회에서 두발 자유, 체벌 금지 등 학생인권 의제가 공론화된 지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학생인권에 대한 사회적 이해 부족, 학생·청소년이라는 비시민적 지위로 인한 소수성, 일부 지역에서만 적용되는 조례 형식의 법제도적 한계 등으로 학생인권의 현실은 아직 열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학생두발수난기’의 결말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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