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수 교수 |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청소년을 위한 행동경제학 에세이> 저자
학생들이 책임 있는 시민이 되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돈 관리 능력과 그에 관한 지식을 지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흠이 없는 금융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이 2014년에 학교 금융교육을 의무화하면서 제시한 이유다.
돈과 경제에 대한 지식, 돈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올바른 돈 관리 습관은 평생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고 ‘금융 웰니스(wellness)’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웰니스란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와 정신은 물론 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뜻한다.
언제까지 경제·금융 교육을 미룰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며 알아서 돈에 관해 배우라는 말은, 바닷물로 뛰어든 다음에 수영을 배우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보다 위험한 일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많이 있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다수 연구를 보면, 금융 역량 수준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저축을 많이 하며 재산 축적도 많아 노후 대비를 잘하고 있다. 경제·금융 역량 수준이 높은 투자자들이 분산 투자를 더 잘 실천하며 투자 수수료를 적게 내고 있다. 금융 역량이 부족하면 눈 뜨고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다.
개인의 경제·금융 역량이 인생에서 필수인데도 우리나라 경제·금융 교육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돈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 자연적으로 돈에 대해 배우게 된다며 나중으로 미룬다. 우선은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이 더 급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여러 허점이 숨어 있다.
우선, 모든 습관이 그렇듯이 돈 관련 습관도 어려서 형성된다. 굳어진 습관은 사회생활을 한다고 고쳐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경제·금융 교육을 받아 바람직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에서 배우면 너무 늦다. 청소년들도 엄연한 금융 소비자로서 돈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자주 하고 있다. 상당한 돈을 가지고 쓴다. 심지어 돈을 빌리기도 한다.
경제·금융 역량이 미흡한 청소년들을 노리는 검은손도 있다. 게임 아이템이나 아이돌 굿즈를 사려고 돈이 급히 필요한 청소년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리입금’(댈입)이 있다. 몇만원을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짧게 빌려주고, 대가로 ‘수고비’를 받는다. 돈을 갚아야 할 날짜가 지나면 ‘지각비’를 추가한다. 수고비는 이자이며, 지각비는 연체 이자이다. 대리입금의 이자를 금리로 환산하면 연 1000%가 넘는다. 연 20%로 묶여 있는 법정 최고 금리를 보란 듯이 비웃는다. 지금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속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이런데도 경제·금융 교육을 미룰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며 알아서 돈에 관해 배우라는 말은, 바닷물로 뛰어든 다음 수영을 배우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보다 위험한 일은 없다. 사회 경험을 통해 경제·금융 역량을 습득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뒷북이라는 데 있다. 적극적인 경제·금융 교육 노력으로 학교를 졸업하기 전 충분한 역량을 지녀야 한다.
만약 개인의 경제·금융 역량 수준이 높았더라면 안전하면서도 고수익을 보장하는 파생상품이라는 홍보에 현혹되는 투자자도, 큰돈을 한곳에 넣은 뒤 손실로 낭패 보는 투자자도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여러 금융 사태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지금이 바로 경제·금융 교육을 시작할 때다. 금융 웰니스는 공짜로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