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가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열린 ‘직업계고 학생 채용약정 및 장학금 전달식’ 행사장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전교조 제공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잠수 작업을 하다가 숨진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홍정운군(18) 사고 뒤 두달 반만에 교육부가 ‘땜질식’ 현장실습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업무 분장이 어렵고 안전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는 영세업체까지 ‘참여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실습생을 폭넓게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홍군의 사망을 부른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없었다. 대신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 현장실습생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궤변’에 가까운 방안을 내놓았고, 현장에서는 기업들이 제도를 악용하리라는 우려가 나왔다.
23일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안전·권익 확보를 위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보면 교육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현재 70%인 기업의 인건비(훈련수당) 부담 비율을 40%로 줄이기로 했다. 줄어든 기업분 30%는 교육청이 부담하고 국고 부담 비율(30%)은 유지하기로 했다. 정병익 교육부 평생교육국장은 이날 “정부와 교육청의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신호를 기업에 분명히 주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렇게 줄어든 기업의 비용부담분을 현장실습생의 안전확보 등에 적극 활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구체적인 유도책은 내놓지 못했다.
교육부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현장실습 기업의 책무성이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크다. 홍정운군 유족 법률 지원을 하고 있는 전경진 노무사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장실습 제도 자체가 ‘학습’이라는 미명 아래 실질적인 노무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최저임금법의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 채 훈련수당만을 지급받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활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며 “기업 부담을 조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장실습생들로 하여금 정당한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도 이날 입장을 내고 “현재도 최저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거나 지급할 의사가 없는 기업들이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문제가 있는데 기업 부담을 더 낮춘다면 제대로 된 실습을 운영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의 참여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현장실습 업체를 선도기업과 참여기업으로 이원화한 구조도 유지하기로 해 참여기업에 대한 관리 사각지대 우려도 여전하다. 홍군이 일한 요트업체는 이른바 참여기업으로 노무사의 사전 현장실사 없이 학교 심의만으로도 선정이 가능했다. 이에 교육부는 앞으로 선도기업뿐 아니라 참여기업까지 현장실습 전에 노무사가 반드시 참여한 가운데 현장실사를 거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특히 유해·위험업종(건설, 기계, 화공, 전기 등)의 경우 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협회 등도 실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참여기업 선정은 교육청이 아닌 학교 심의만 거치면 되고 기업규모 등도 여전히 제한이 없다. 전경진 노무사는 “참여기업 현장실습을 허용하는 한 사전 현장실사를 강화한다고 해서 (홍군과) 똑같은 사고가 미연에 방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도입 장벽을 더 높이거나 본질적으로는 참여기업 참여는 금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이번 방안에서 현장실습생의 지위를 재차 ‘학생’으로 못박으면서 노동자성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는 비판도 크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은 이날 “기업 부담을 줄인다고 기업이 학생을 ‘교육해야하는 존재’로 본다는 것은 근거가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실습생의 권익보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성 인정”이라며 “현장실습생에게 노동법을 전면 적용하지 않으면 최저임금은 물론 실업급여·퇴직금 산정, 부당해고·임금체불 문제 발생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방안에서 현장실습 업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 책임이 강화되고 학교의 노동교육이 강화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유진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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