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에 관한 설명 팻말에서는 ‘포란’(抱卵)이 어려웠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에서는 포란 대신 순화한 용어 ‘알 품기’만 쓰라고 돼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 3일 부산시 해운대구 석대동에 자리한 해운대수목원을 찾았다. 올해 5월 말 문을 연 이곳은 62만8275㎡(19만평)의 면적으로 부산시민공원보다 1.4배 정도 크다.
옛 석대쓰레기매립장 위에 만들어진 해운대수목원은 1993년 쓰레기 매립을 중단한 뒤 약 30년 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실내정원 등을 추가로 지은 뒤 2025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공사 중인 곳도 있고 아직은 나무에 관한 설명 팻말이 거의 없지만, 나처럼 부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해운대수목원 개장 소식이 반갑게만 느껴진다.
현재 개방된 ‘치유의 숲’에는 19만그루의 나무와 작은 동물원이 함께 있어 아이들과 나들이 삼아 가기에도 좋을 듯하다. 내가 찾은 이날도 유치원에서 손에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참 많았다. 어린이들이 울긋불긋 물든 나무 아래에서, 안전한 공공 공간을 누리며 마음껏 뛰노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해운대수목원은 숲 해설 프로그램, 유아·초등학생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숲 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통합예약시스템 누리집(reserve.busan.go.kr)을 방문해보자.
지난 3일 부산시 해운대구 석대동에 자리한 해운대수목원을 찾았다. 수목원 입구 모습.
■ ‘유모차’보다는 ‘유아차’
종합안내도를 훑어본 뒤 입구에 들어서자 ‘사람, 나무, 숲이 좋은 해운대수목원’이라는 표지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황금느티나무, 넓은잎참가시나무 등을 지나 매화나무 앞으로 갔다.
‘수종명: 매화나무’라는 말에서 ‘수종’이 어려웠다. 수종은 나무의 종류나 종자를 뜻한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면 수종 대신 ‘나무 종류’를 쓰라고 돼 있다. 이제 막 글자를 익혀 읽기에 재미를 느낀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인 만큼 조금 더 쉬운 말로 설명 팻말을 걸어두면 어떨까?
너른 언덕에는 흑염소들이 있었다. 언덕 입구 쪽에는 ‘유모차, 휠체어 진입금지(계단이 있어요)’라는 팻말이 아쉽게 느껴졌다. 주로 아이와 함께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수목원에 ‘진입금지’라는 부정적 표현보다는 다른 이용 방식을 안내해주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모차(乳母車)라는 단어 또한 유아차(乳兒車)라고 바꾸어 부르는 게 대세다. 부모 등 보호자의 공동육아, 평등육아의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주 사용자인 유아가 중심이 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흑염소와 면양이 있는 곳에 “먹이를 주지 마세요. 동물 친구들은 정해진 식단이 있어요”라는 설명 팻말이 있었다. 식단은 ‘일정한 기간 동안 먹을 음식의 종류와 순서를 짜 놓은 계획표’를 말한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에서는 식단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차림’ ‘차림표’를 쓰라고 돼 있다.
흑염소 우리 옆에 “먹이를 주지 마세요. 동물 친구들은 정해진 식단이 있어요”라는 설명이 있었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를 보면 식단은 ‘차림’ ‘차림표’라고 순화할 수 있다.
■ 분포는 ‘퍼짐’, 사육은 ‘치기’
면양에 대한 설명을 보자. “기원전 약 6000~8000년 전 가축화되어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야생의 양은 대부분 고원 지대에서 무리지어 서식합니다”라고 돼 있다. ‘가축화되다’(家畜化되다)라는 말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들짐승이 집짐승으로 길들여지다”라는 뜻이다.
분포는 동식물의 지리적인 생육 범위를 말하는데 한글 전용 농업 용어 고시 자료에 따르면 분포는 ‘널림’ ‘퍼짐’으로 순화할 수 있겠다. 서식(棲息)은 생물 따위가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을 말한다.
“1000종이 넘는 품종이 있으며 대부분 양털이나 젖 등을 얻기 위해 사육되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에서 사육(飼育)은 ‘기를 사’ ‘기를 육’ 자를 써서 어린 가축이나 짐승이 자라도록 먹이어 기른다는 뜻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 따르면 사육과 ‘기르기’ ‘치기’를 함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치다’는 우리말 동사로 “가축이나 가금 따위를 기르다” “식물이 가지나 뿌리를 밖으로 돋아 나오게 하다”라는 뜻이다.
“면양은 반추동물이기 때문에 위가 4개이고 윗니가 없으며 수시로 되새김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라는 설명에서 반추동물(反芻動物)이 어려웠다. ‘돌이킬 반’ ‘꼴 추’를 쓰는데, 꼴은 우리말로 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풀을 말한다. 반추동물은 한마디로 소화 과정에서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은 뒤 다시 먹는 특성을 가진 동물을 말한다. 기린, 사슴, 소, 양, 낙타 따위가 있다. 한글 전용 농업 용어 고시 자료에서는 반추동물을 ‘되새김 동물’로 순화했다.
■ 사전에도 잘 안 나와
당나귀도 있었다. 야생 당나귀는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전 세계적으로 10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원래는 나귀였는데 당나라에서 넘어온 나귀들이 몸집이 크고 힘이 세서 많이 길렀다고 한다. 당나라에서 들여온 나귀를 구분해 당나귀라고 부르던 것이 굳어져 일반화됐다. 어리숙한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는 눈치가 빠르고 지능도 높은 편이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장소와 경로를 기억할 수 있어 운반·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됐다고 한다.
“당나귀와 말이 이종 교배하여 나온 동물로는 노새, 버새가 있습니다”라는 설명에서 이종 교배는 ‘서로 다른 종(種)의 생물의 암수를 인위적으로 수정(受精)하거나 수분(受粉)하는 일’을 뜻한다.
타조 우리로 이동했다. 한자 ‘낙타 타’ ‘새 조’를 써서 ‘낙타를 닮은 새’라는 이름 뜻을 가지고 있다. 시력이 25.0인 타조는 동물 중에서 눈이 가장 좋다. 타조의 알은 약 1600g으로 새의 알 중에 가장 크며, 이는 달걀 한판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수컷이 구덩이를 파면 암컷이 4~10개의 알을 낳습니다. 그 후 낮에는 암컷, 밤에는 수컷이 번갈아 가며 포란, 양육합니다”라는 설명 팻말에서는 ‘포란’이 어려웠다. ‘안을 포’ ‘알 란’을 쓰는 포란(抱卵)은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암컷 새가 알을 품어 따뜻하게 하는 일을 말한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에는 포란 대신 순화한 용어 ‘알 품기’만 쓰라고 돼 있다.
“타조는 날지 못하는 평흉류이며 날개보다 다리가 발달되었습니다”라는 설명을 보자. 평흉류(平胸類)는 사전을 봐도 잘 나오지 않는다. 평흉류는 ‘가슴뼈인 흉골(胸骨)이 평평하고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한다. 날개가 있지만 더 이상 날지 않는 새’라고 풀어 쓸 수 있겠다. 평흉류에는 타조와 에뮤 등이 있다.
수목은 ‘나무’, 식재일자는 ‘심은 날짜’라고 쓰면 수목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더 쉬울 듯하다.
■ ‘식재일자’는 ‘심은 날짜’로
수양매실나무 앞으로 가봤다. 나무에 걸려 있는 설명을 보니 ‘수목명’ ‘식재일자’라는 말이 있다. 수목은 살아 있는 나무를 뜻하는데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서는 수목 대신 ‘나무’를 쓰라고 돼 있다. 수목명의 경우 ‘나무 이름’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더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식재일자에서 식재(植栽)는 ‘심을 식’ ‘심을 재’ 자를 써 초목을 심어 재배한다는 뜻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는 식재 대신 ‘(나무) 가꾸기’ ‘(나무) 심기’만 쓰라고 돼 있다. 식재일자는 ‘(나무) 심은 날짜’라고 쓰면 어떨까?
수목원 곳곳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안내문’이 있었다. “수목원 내 취식 행위를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에서 취식은 음식을 취하여 먹는다는 뜻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 따르면 취식 대신 순화한 용어 ‘먹기’만 쓰라고 돼 있다.
“야영, 취사 등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에서 취사(炊事)는 끼니로 먹을 음식 따위를 만드는 일을 말한다. ‘불 땔 취’ ‘일 사’라고 한자 뜻을 살펴보니 쉽게 이해가 된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는 취사 대신 순화한 용어 ‘밥짓기’ ‘부엌일’을 쓰라고 돼 있다.
산딸나무, 동백나무 등을 지나 입구 쪽으로 다시 오니 “화단에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설명 팻말이 보였다. 화단은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 따라 ‘꽃밭’으로 써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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