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공공선연구소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진로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은 입사 면접 노하우를 알려주는 동영상 장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지난 9월25일, 토요일 아침 온라인 화상 강의실 ‘아주 특별한 진로교육―생생한 진로 이야기’에 사람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이날 강의의 주인공은 20대 청년인 이한길씨와 이석주씨.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이한길씨와 중소기업 물류관리팀에서 일하는 이석주씨가 간단하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하자, 이들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왜 뮤지컬 배우가 됐나요?”
“뮤지컬 배우로 살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물류팀에서 일하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일하는 보람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과 소통이 잘 안될 때와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나요?”
“앞으로의 진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진로 강의지만, 이들 강연자도 발달장애인이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발달장애인과 그들의 부모라는 점에서 조금은 특별한 진로 강의였다. 이날 강의는 진로상담 전문기관인 공공선연구소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마련한 진로교육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의 일환이었다.
이날 오후에는 발달장애 문화예술 전문가를 키워내는 단체 ‘라하프’ 대표이자 이한길씨의 어머니이기도 한 김재은씨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성장 단계별로 겪은 어려움과 발달장애 부모들이 함께 라하프를 세우기까지의 감동적인 과정을 들려줬다.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쳐서 무대에 올린 게 아이들과 주변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라하프는, 대한민국 국회대상(뮤지컬 부문)도 받고, 지금은 뮤지컬 배우, 모델, 예술 강사 등을 키워내는 전문단체로 자리잡고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일은 무엇이고, 왜 일이 중요할까? 최정은 공공선연구소 대표(경기대 직업학과 외래교수)는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인간은 누구에게나 일이 중요한데, 특히 발달장애인들에게 언젠가 부모와 가정의 도움이 없어지는 시점이 오게 되는데 그때 자립의 수단이 되는 게 일이기도 하고, 일을 통해 능력과 사고력, 사회성 등의 발달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인지교육이나 학습에 더 방점을 두는 경향이 있어 사실 진로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다. 많은 부모가 ‘공부만 좀 더 잘한다면 친구도 사귈 수 있고 비장애인으로 수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비장애 학생의 부모만큼이나 국·영·수 위주의 학습 따라가기에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자한다.
최정은 대표는 “자녀의 장애를 수용하게 되면 자녀의 자립과 진로를 고민하게 되는데,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면 진로에 대한 생각까지 나아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송명숙 중앙기독초등학교 특수교사는 “당장 학교생활을 따라가는 게 필요하니까 부모들이 인지교육에 집중하는 것도 당연하다”면서도 “장애 자녀의 부모는 아이의 성인 이후의 삶을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직업 탐색과 진로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진로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또 다른 이유는 부모들의 진로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정은 대표는 “부모가 직업에 대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만 여기게 되면, 아이들이 직업 생활에 대한 의의를 갖기 어렵다”며 “부모의 진로 의식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실제로 진로교육을 통해 부모가 자신의 진로를 확장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공공선연구소의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이상까지 부모와 함께 들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취업지원부 장재훈 과장은 “학령기부터 아이의 진로를 같이 고민하는 부모가 있을 경우, 장애 자녀들이 직업을 가지려는 동기도 높고 직업을 결정하고 유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며 “부모님들이 많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9월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12월까지 계속된다. 생애 설계, 진로 탐색, 직업 정보, 취업 역량, 구직 활동, 직업 유지 등의 내용으로 강의가 진행되며, 자녀의 진로는 부모의 생애설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기 때문에 부모의 진로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에도 초점을 맞춘다. 발달장애인이 취업 가능한 다양한 직무 소개와 이력서 작성, 면접 노하우 등 실무적인 정보도 제공하며, 개인상담과 집단상담도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 모든 교육은 무료이며, 누리집(gonggongsun.modoo.at)을 통해 참가 신청을 하면 된다. 공공선연구소 누리집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유튜브 채널에는 ‘이력서 작성’ ‘면접 기법’ ‘부모교육’ 등 발달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진로 동영상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진로교육을 받게 되면 자녀의 자립과 취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좀 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나아가 부모와 자녀의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최정은 대표는 “부모가 자기 자신의 진로를 사랑해야 자녀들도 자신의 진로에 관심을 갖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다”며 “자녀가 진로에 대한 목표를 잘 설정하고 달성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하게 하는 것이 이번 진로교육의 방점”이라고 강조했다.
일상적으로 부모가 진로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바로 아이의 강점과 흥미를 살피는 것이다. 송명숙 특수교사는 “아이가 못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걸 따라가게 하려면 아이도 부모도 스트레스를 받고 관계도 나빠진다”며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서 그것을 진로적으로 연결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은 라하프 대표도 “아이마다 흥미와 강점을 모두 다 다르게 가지고 있다”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해야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