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쉬운 우리말 쓰기
동·식물원 속 우리말 ④
형성층은 ‘성장 세포층’
연작은 ‘이어짓기’가 쉬워
척박지는 ‘메마른 땅’
토심은 ‘흙 깊이’로 바꿔볼까
동·식물원 속 우리말 ④
형성층은 ‘성장 세포층’
연작은 ‘이어짓기’가 쉬워
척박지는 ‘메마른 땅’
토심은 ‘흙 깊이’로 바꿔볼까
지난달 25일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강릉솔향수목원을 찾았다. 시립 강릉솔향수목원은 2013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솔 내음 그득한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등산을 온 듯 자연의 너른 품을 뽐내는 수목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울창한 소나무 숲은 이곳의 자랑이다.
24만평의 땅에 염료식물원, 약용식물원, 하늘정원, 천년숨결 치유의 길, 삼림욕장, 유아숲체험장 등 23곳의 전시원을 마련했으며 1127종 22만그루의 나무와 꽃으로 조성돼 시민들의 자연 쉼터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다.
■ ‘범례’보다는 ‘일러두기’
입구 쪽에서 숲해설사가 안내도를 보며 수목원 코스를 설명하고 있었다. 안내도에 적힌 ‘범례’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첫머리에 그 책의 내용이나 쓰는 방법 따위에 관한 참고 사항을 설명한 글’이 범례의 사전적 의미다. 행정용어 순화 편람을 보면 범례 대신 ‘일러두기’를 쓰라고 돼 있다.
대충 그려둔 안내도가 아니라 숲속광장, 숲생태관찰로, 난대식물원, 하늘정원, 수목원 전망대, 강릉시내 전망대, 복두꺼비 바위 등 코스별로 번호를 매겨 ‘하늘정원길 왕복 2㎞: 40분’ ‘전체 관람길 왕복 3㎞: 60~80분’ 등 친절하게 표시해둔 점이 좋았다.
■ ‘월동하다’는 ‘겨울을 나다’로
뙤약볕이 제법 따가운 한여름 날씨였다.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섯살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찾아온 가족이 보였다.
무늬중국쥐똥나무, 벌개미취에 대한 설명문을 본 이혜원(34)씨는 ‘월동한다’와 ‘약용한다’를 쉬운 말로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월동 준비, 약용 식품 등 어른들은 자주 쓰는 말이지만 수목원에서 아이와 함께 설명 팻말을 볼 때에는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월동한다’는 ‘겨울을 난다’, ‘약용한다’는 ‘약으로 쓴다’로 바꾸면 의미가 쉽게 다가온다.
솔향수목원에는 곤충에 관한 설명이 잘돼 있었다. 곤충이란 동물 중에서 절지동물에 속하며 흔히 벌레라고 불린다. 지구상에는 약 120만여종의 동물이 살고 있는데, 이 중 몸과 다리 등이 마디로 이루어진 절지동물에 속하는 것이 90만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집게벌레라고도 하는 ‘넓적사슴벌레(암컷)’ 등에 대한 설명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적혀 있어 어린이들의 생태교육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 ‘심재’ ‘변재’는 어떻게 바꿔볼까
숲길을 걷다가 ‘나무의 구조’를 설명해둔 그림을 보게 됐다. 과학 교과서에 나온 자료처럼 상세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림으로 심재(心材), 변재(邊材), 형성층(形成層), 수피(樹皮) 등을 보기 쉽게 설명해두었지만 어려운 용어 탓에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심재는 나무를 지탱하는 부분으로 나무줄기의 중심부에 있는 단단한 부분을 말한다. 생활용어 수정보완 고시 자료를 보니 심재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속재목’을 쓰라고 돼 있다. 변재는 뿌리가 빨아올린 물을 잎으로 운반하는 통나무의 겉 부분을 말하는데 ‘겉재목’으로 바꾸면 좋을 듯하다.
나무가 생장하는 부분인 ‘형성층’은 쌍떡잎식물이나 겉씨식물, 일부 외떡잎식물과 양치식물의 줄기나 뿌리의 물관부와 체관부 사이에 있는 분열조직을 말한다. 생활용어 수정보완 고시 자료에서는 되도록 ‘부름켜’를 쓰라고 돼 있지만, 이 또한 어려운 고유어다.
본래 순화어 운동은 한자어나 외래어를 무조건 고유어로 수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꿔 쓰자는 것이다. ‘부름켜’는 금방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좋은 순화어라고 하기 어렵다. ‘형성층(성장 세포층)’과 같이 주석을 다는 방식이나 새로운 순화어를 찾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듯하다. 수피(樹皮)는 수목원 설명 팻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수피 대신 ‘나무껍질’을 쓰면 좋겠다.
■ 무궁화는 ‘떨기나무’에 속해
솔향수목원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수목원에서 교목, 관목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평소 나무에 별 관심이 없다면 성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용어다.
교목(喬木)은 ‘높을 교’자를 써서 8m 이상으로 크게 자라는 나무를 이른다. 행정용어 순화 편람 등을 보면 교목 대신 ‘키큰나무’ ‘큰키나무’를 쓰라고 돼 있다. 키큰나무는 가로수로 심어 공기를 정화하고 주변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관목(灌木)은 ‘물 댈 관’자를 쓴다. 키가 작고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으며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를 뜻한다. 무궁화, 진달래, 앵두나무 따위가 있다. 생활용어 수정보완 고시 자료를 보니 관목은 ‘떨기나무’라고 쓸 수 있겠다. 떨기는 ‘식물의 한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더부룩하게 된 무더기’를 의미한다. 산림청에서는 ‘키작은나무’라고도 한다.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한참을 걷다가 참당귀를 봤다. ‘연작을 싫어하여 한번 수확하면 2~3년 동안 다른 작물을 심는 게 좋다’라는 설명에서 연작이라는 말이 어려웠다. 연작(連作)은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해마다 심어 가꾸는 일’을 이르는데 행정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연작 대신 순화한 용어 ‘이어짓기’를 쓰라고 돼 있다.
■ ‘본수’는 ‘그루 수’로…
수목원을 찾은 한 시민이 암석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본수 8506본. 대표 수종: 비자나무, 공작단풍 등’의 설명을 본 뒤 ‘본수’가 어렵다고 말했다. 본수(本數)는 식물체나 줄기 또는 뿌리의 개체 수를 말한다. 행정용어 순화 편람에서 본수 대신 될 수 있으면 ‘그루 수’, ‘뿌리 수’를 쓰라고 돼 있다.
암석원에 관한 설명 팻말을 보자. ‘건조 척박지에서 생육 가능한 다육식물과 얕은 토심과 강한 햇빛, 건조에 견디는 힘이 매우 강한 식물로 식재하여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고 돼 있다. 척박지(瘠薄地)는 기름지지 못하고 몹시 메마른 땅을 말한다. 행정용어 순화 편람에서 ‘척박지’ 대신 ‘메마른 땅’을 쓰라고 돼 있다. 토심(土深)은 ‘흙 깊이’로 바꿔 쓰길 권한다.
■ 속성수는 ‘빨리자람나무’
수목원 숲길을 크게 둘러본 뒤 입구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다양한 나무를 만났다. 사철나무는 ‘내건성, 내음력, 내공해성이 강하다’고 돼 있고, 아우레아 나나는 ‘4월에 꽃이 피고 내한성과 내공해성이 강하며’라는 설명이 있었다.
내건성(耐乾性)은 ‘가물을 타지 않고 견디어 내는 성질’, 내음력은 내음성(耐陰性)을 말하는데 ‘음지에서도 광합성을 하여 독립 영양을 마련할 수 있는 식물의 성질’, 내공해성은 ‘나무나 농작물 따위가 공해를 입지 않고 잘 견디는 성질’을 뜻한다.
계곡과 너른 숲이 어우러진 이곳을 겨울에도 한번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복하게 눈 쌓인 소나무 숲길은 한여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줄 듯하다. 주차장으로 향하기 전 소나무과 스트로브잣나무에 관한 설명을 보니 ‘5월에 개화하여 다음 해 9월에 결실하는 속성수’라는 말이 나온다. 속성수(速成樹)는 ‘보통 나무에 비하여 빨리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다. 생활용어 수정보완 고시 자료를 보니 ‘빨리자람나무’로 바꿀 수 있겠다. 빨리자람나무에는 이탈리아포플러, 리기다소나무 따위가 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특임교수 김형주
독자 참여 이벤트 인터넷 주소(URL): https://forms.gle/A3NSwK1zjjpLBJff6
공동기획: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
지난달 25일 강릉솔향수목원 입구에서 숲해설가가 수목원 안내도를 보고 있다. 안내도에 적힌 ‘범례’보다는 ‘일러두기’를 쓰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나무의 구조’에 관한 설명 팻말. 심재와 변재라는 어려운 말보다는 ‘속재목’ ‘겉재목’이라고 쉽게 바꿔보면 어떨까.
참당귀에 관한 설명에서 ‘연작’을 ‘이어짓기’라고 바꾸면 뜻이 더 쉽게 다가온다.
강릉솔향수목원 ‘천년숨결 치유의 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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