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쉬운 우리말 쓰기
동·식물원 속 우리말 ③
‘전시’ 아닌 ‘친환경 거주’ 목표로
자연 서식을 중시하는 동물원
‘마운딩’ ‘식재’ ‘입식’ 등 어려워…
어린이 눈높이 맞춘 쉬운 말 필요해
동·식물원 속 우리말 ③
‘전시’ 아닌 ‘친환경 거주’ 목표로
자연 서식을 중시하는 동물원
‘마운딩’ ‘식재’ ‘입식’ 등 어려워…
어린이 눈높이 맞춘 쉬운 말 필요해
지난달 16일 전북 전주동물원에서 어린이들이 ‘청공작’을 보고 있다.
생명 존중 교육의 장으로 ‘동물원은 동물들에게 정말 행복한 공간일까?’라는 생각이 든 뒤부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요즘 일 때문에 다시 찾고 있다. 나이절 로스펠스가 쓴 <동물원의 탄생>을 보면 동물원의 시작은 그리 탐탁지 않다. 고대에는 개인의 권력을 과시하는 ‘동물 수집’ 용도였다. 이후에는 식민지에 살고 있는 동물과 사람에 대한 제국주의의 착취를 상징했다. ‘관람하는 인간’과 ‘관람당해야 하는 동물’이라는 구도 속에서 여전히 많은 동물이 불행한 것도 사실이다. 한데 이제는 많은 동물원이 ‘전시’가 아닌 ‘친환경 거주’에 방점을 찍고, 오락보다는 생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명 존중 교육의 장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주동물원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마주하는 초록빛의 쾌적한 길을 쭉 걷다가 ‘청공작’ 앞에 섰다.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들에게 설명문을 읽어주고 있었다. “청공작은 인도, 말레이시아의 습지가 많은 곳에서 살고 씨앗, 곤충, 도마뱀을 먹는대요.” 옆으로 이동하니 ‘큰 물새장’이 나왔다. _______
차폐, 성토…이렇게 써볼까 ‘큰 물새장의 변화’ 설명 팻말을 보니 ‘육추실’ ‘캐나다 기러기 등 15종 71마리 입식’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 살 아이와 함께 온 김현우(34)씨는 “육추실은 뜻을 전혀 모르겠다. 입식은 유추해보니 어렴풋이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육추실(育雛室)은 ‘병아리를 기르는 방’으로, 입식(入植)은 ‘사들여 키움’으로 바꾸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큰 물새장 시설 환경 개선 공사에 관한 설명 중에는 ‘생태 식재’가 어려웠다. 식재(植栽)는 ‘초목을 심어 재배함’이라는 뜻인데 행정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식재 대신 ‘가꾸기’ ‘(나무)심기’를 쓰라고 돼 있다. ‘물새들 습성에 맞는 내부 환경 개선 설명’에서는 ‘철망 차폐 식재’ ‘마운딩’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차폐(遮蔽)는 ‘가려 막고 덮음’이라는 의미인데 행정분야 전문용어 표준화 고시 자료를 보면 ‘차폐’ 대신 ‘가림’을 쓰라고 돼 있다. 마운딩(mounding)은 작물학 용어로 성토(盛土), 즉 흙을 쌓는다는 뜻이다. 행정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흙돋움’ ‘흙쌓기’로 순화할 수 있겠다. _______
‘일광욕’은 ‘볕바라기’ 어때요 아이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 시베리아 호랑이는 단연 인기 만점이었다. 유리로 된 통창 너머로 보이는 호랑이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태어나 처음 ‘어흥’을 본 네다섯 살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여긴 내 땅이야’라는 설명문을 통해 호랑이가 영역을 표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동물이라는 점, 호랑이의 줄무늬는 왼쪽과 오른쪽의 모양이 달라 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을 흥미롭게 설명해뒀다. 이번에는 수리부엉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들은 야생에서 다쳐 날 수 없어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구조되었어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우리들은 전주동물원 사육사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라는 설명 팻말을 통해 동물원의 긍정적인 역할을 알려준 것이 좋았다.
큰뿔소 설명 팻말.
‘경계책’은 ‘경계 울타리’로 쉽게 늑대가 있는 곳으로 가봤다. ‘사회적 동물로서 한 쌍의 성체와 그 자식으로 구성된 핵가족의 부계 사회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야행성이지만 낮에도 활동을 한다’라는 설명이 있다. 동물원을 자주 찾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보면 ‘성체’며 ‘핵가족’은 물론이고 ‘야행성’도 어려운 말이다. 동물원과 식물원의 안내문을 쉽게 작성하도록 지침을 만들거나 일반 안내문과 쉬운 안내문을 함께 제공하면 좋겠다. 늑대는 한반도에서 200만년 동안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하며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해 먹이사슬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훌륭한 포식자로 살아왔다. 우리 숲에서 사라진 이유는 ‘해수구제 사업’ 때문이다.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는 해수(害獸)를 사냥하는 사업으로 한반도 내의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의 크고 작은 포식동물이 멸종에 이르는 원인이 됐다. 일제강점기 동안 포획된 늑대가 2625마리라고 한다. 행정용어 순화 편람에서는 구제(驅除) 대신 될 수 있으면 ‘없애기’를 쓰라고 돼 있다. 관람객과 동물 사이에 놓인 울타리 곳곳에 ‘조류인플루엔자(AI),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경계책을 만지지 마세요'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어른이라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어려울 듯하다. ‘경계책’에서 책(柵)은 ‘울타리 책’자다. 말뚝으로 만든 우리나 울타리, 물결에 둑이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둑 앞에 말뚝을 듬성듬성 박고 대쪽으로 얽어 놓는 장치를 이르는 말이다. ‘경계 울타리’로 바꿔보면 모든 관람객에게 그 뜻이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서은아 독자 참여 이벤트 인터넷 주소(URL): https://forms.gle/A3NSwK1zjjpLBJff6 공동기획: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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