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특성화고에서 9급 공무원 시험에 대비한 물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한국 대학생의 60%를 차지하는 지방대생은 교육 기회와 과정, 결과 등 모든 영역에서 구조적이고 다차원적인 불공정에 처해 있습니다. ‘승리자’로 판명된 서울 주요 대학과 재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와 자원을 집중해주고, ‘패배자’로 판명된 지방대와 지방대생에게는 턱없이 적은 몫을 나눠주는 구조를 타파해야 합니다.” (곽영신 세명대 저널리즘 연구소 연구원)
최근 교육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 대상에서 사실상 빼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되면서 역설적으로 학력과 학벌 차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다시 점화하고 있다. 강득구,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 의원안과 별개로 이달 안에 각각 ‘교육 영역에서의 출신학교 차별금지법’과 ‘고용 영역에서의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강 의원과 이 의원은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6일 ‘공정한 선발과 채용을 위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곽 연구원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 등 ‘다른 출발점’은 고스란히 사회경제적 약자와 중하위권 학생에 대한 ‘교육 기회의 불공정’이 된다”며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가 자녀의 대학 진학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여러 통계들로 입증된 바 있다. 지난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3개 대학의 국가장학금 신청자 가운데 고소득층 자녀 비율은 평균 56.6%로 4년제 대학 평균 39.5%보다 17.1%포인트 높았다. 반면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 계층 자녀 비율은 5.3%로, 4년제 대학 평균 6.7%보다 낮았다. 2000년대 이후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은 의사·변호사·교사 등 전문직이 25~30%를 차지하는 반면, 농축수산업 종사자는 1~3%, 비숙련 노동자는 1~2%에 그쳤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방대생은 입학하는 순간 ‘정부 재정지원 격차’라는 또 다른 불공정에 노출되기도 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가 2007~2018년까지 12년 동안 전국 4년제 일반대 재정지원사업 수혜 실적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3개 대학에 전체 사업비의 17.9%가 집중 지원됐다. 3개 대학의 학생 수(분교 포함)는 전체 대학의 5% 정도에 불과하다. 곽 연구원은 “명문대에 유리한 기준을 활용한 획일적 평가와 승자독식 방식의 정부 재정지원 배분은 명백한 교육 자원의 역진적 배분이며 지방대생에 대한 ‘교육 과정의 불공정’이 된다”고 주장했다. 채용 과정에서의 학력·학벌 차별은 더욱 노골적이다. 헌법과 고용정책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학력과 출신학교로 인한 고용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벌칙 조항 등이 미비한 상태다. 공공기관·지방 공기업에는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됐다지만 민간기업이 적용받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학력을 ‘수집이 금지된 개인정보’에 포함하지 않았다. 한국리서치가 2019년 만 19살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대학 및 교육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대졸자와 고졸자 간의 차별(82%),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대 졸업자 간의 차별(82%), 명문대와 비명문대 졸업자 간의 차별(81%)이 심하다고 답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영석 경상대 교수(일반사회교육학)는 출신학교와 개인의 직무 능력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는 학력이 곧 능력이라는 강인한 이데올로기가 형성돼 있지만 과학적·경험적 근거는 없다”며 “별다른 합리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채 막연한 사회적 통념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출신학교 차별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능력 사회로 나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적폐”라고 지적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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