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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삽목 대신 꺾꽂이, 수피 대신 나무껍질 어때요?

등록 2021-06-28 18:26수정 2021-06-28 18:45

연재ㅣ쉬운 우리말 쓰기
동·식물원 속 우리말 ②

수목원은 단순 전시장 아냐
쉬운 표현이 식물 이해 높여
수분, 파종, 내한성 등 어려워
한글 전용 농업 용어 참고해야
지난 9일 김용식 천리포수목원장이 ‘완도호랑가시’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나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립수목원을 세운 미국계 귀화 한국인 고 민병갈 원장이 완도 식물 답사 중 발견해 국제학회에 등록한 것이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 9일 김용식 천리포수목원장이 ‘완도호랑가시’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나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립수목원을 세운 미국계 귀화 한국인 고 민병갈 원장이 완도 식물 답사 중 발견해 국제학회에 등록한 것이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한국을 너무 사랑해 ‘펜실베이니아 민씨’가 된 미국인. 그런 그가 300년 뒤를 생각하며 충남 태안의 모래땅을 일궈 만든 곳.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국제수목학회) 인증을 받은 희귀 식물의 보고. 천리포수목원과 설립자 고 민병갈 원장에 관한 열쇳말이다.

5년 전 우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천리포수목원을 알게 됐다. 인위적인 관리를 최소화하고 식물들이 자연의 섭리대로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수목원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수목원 근처에는 만리포 해변도 있다. 파도가 좋아 한국의 캘리포니아라는 뜻에서 ‘만리포니아’로 불린다. 숲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충남 태안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지역 생태계를 살리는 수목원

지난 9일 오전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김용식 원장(영남대 산림자원 및 조경학과 명예교수)이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한 그루가 훼손되면 열 그루를 심는다는 마음으로 평생 나무만 사랑한 분이 만든 곳이지요. 여기 ‘완도호랑가시’ 좀 보세요. 설립자가 한국에서 처음 발견해 국제학회에 등록한 우리 수목원의 상징입니다.”

김 원장은 산림 전문가로서 수목원의 중요성과 가치에 관해 설명했다. “수목원은 단지 아름다운 꽃을 ‘전시’해두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수목원을 찾는 텃새와 철새가 200종이 넘어요. 잘 만든 수목원 하나가 지역 생태계를 지켜내고 살립니다. 생물 종을 서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천리포수목원은 2006년 9월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됐다. 노랑붓꽃을 포함한 희귀 특산식물 29과 56속 65종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민병갈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식물 전문 도서관도 열었다. 최초의 사립수목원으로서 천리포수목원이 갖는 의미 등을 알고 나니 더욱 흥미가 생겼다. 김보미 담당자와 함께 수목원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민병갈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삽목’은 식물의 가지, 줄기, 잎 따위를 자르거나 꺾어 흙 속에 꽂아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을 말한다. 일본어 투 생활 용어 순화 고시 자료를 보니 ‘삽목’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꺾꽂이’를 쓰라고 돼 있다. 김지윤 기자
‘삽목’은 식물의 가지, 줄기, 잎 따위를 자르거나 꺾어 흙 속에 꽂아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을 말한다. 일본어 투 생활 용어 순화 고시 자료를 보니 ‘삽목’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꺾꽂이’를 쓰라고 돼 있다. 김지윤 기자

숲속에서 서해의 해넘이를 보다

설립자에 관한 설명문을 차근차근 읽어봤다. ‘민병갈 연보(年譜)’(1921~2002)를 통해 미국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미 해군 정보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그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오십 대에 귀화를 결심한 뒤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 3년이 걸렸다’는 대목에서 마음 한편이 찡해졌다.

귀화는 이미 사람들 입에 익은 말이라 그냥 써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한데 일본식 표현이라는 논란도 있었고 ‘귀화를 결심’했다고 쓰기보다 ‘한국 국민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쓰는 편이 더 좋아 보인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귀화’ 대신 ‘국적 옮김’이라는 말을 권한다. ‘연보’는 개인의 연대기를 이른다. 비슷한 말로 ‘해적이’ ‘한살이’가 있다.

넓은 수목원 곳곳에 노을쉼터, 전망대 등이 있어 서해의 아름다운 해넘이(일몰)를 보기에 제격이었다. 큰연못정원, 수국원, 습지원, 왜성침엽수원, 양치식물원 등 바다와 어우러진 초록 숲을 거닐고 있으니 마치 나뭇잎과 파도의 이중주를 듣는 기분이었다.

측백나무과 ‘골드 라이더’ 앞에 섰다. ‘1991년에 네덜란드 Zwijnenburg 농장에서 삽목묘로 도입되었습니다’라는 설명이 어려웠다. ‘삽목’은 식물의 가지, 줄기, 잎 따위를 자르거나 꺾어 흙 속에 꽂아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을 말한다. 일본어 투 생활 용어 순화 고시 자료를 보니 ‘삽목’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꺾꽂이’를 쓰라고 돼 있다. 삽목묘는 ‘꺾꽂이 모’로 쓰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겨울정원’으로 이동했다. ‘겨울정원은 씨앗을 파종하던 곳으로 씨앗밭이라 불린다. 겨울철에 꽃이 피거나 수피와 열매가 아름다운 식물이 볼거리를 제공하여 겨울정원이라 부른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파종’은 ‘씨뿌리기’ ‘씨 뿌림’으로 순화할 수 있다. ‘수피’는 나무의 껍질로 줄기의 코르크 형성층 바깥쪽에 있는 조직을 말한다. 한글 전용 농업 용어 고시 자료를 보니 ‘나무껍질’로 바꿔 쓸 수 있겠다.

온 세상 목련 다 모여 있어

천리포수목원은 목련이 유명하다. 총 840분류군의 목련을 수집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목련류를 보유하고 있다. 국제목련학회 총회 등을 열기도 했다. 목련류에 관한 설명문 앞으로 이동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000재배품종 이상의 목련을 선발 또는 교배 육종하여 정원 식물로 널리 애용하고 있다’라는 말이 보인다. ‘육종’의 순화어는 ‘씨 기르기’다. 생물이 가진 유전적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거나 기존 품종을 개량하는 일이다.

목련속(木蓮屬)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중 하나로 은행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다고 한다. 해마다 찬란한 빛을 머금고 봄을 알리는 목련이 이렇게 오랜 생존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니. 설명문을 끝까지 읽어보니 ‘목련의 수분 매개자가 벌과 나비가 아닌 딱정벌레인 이유는 그 시기에는 벌과 나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수분’은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꽃가루)이 암술머리에 옮겨붙는 것인데 ‘가루받이’로 바꿔보니 뜻이 조금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동백나무에 관한 설명을 보자. ‘우리나라의 동백나무는 지역에 따라 봄과 겨울에 개화하는 특성이 있다. 특히 대청도나 연평도의 동백나무는 내한성이 강하여 새로운 품종 육성에 이용한다’에서 ‘개화하는’은 ‘꽃이 피는’으로, ‘내한성’은 ‘추위를 견디는 성질’로 바꾸어 쓸 수 있겠다.

‘낙우송’ 한 그루가 건넨 위로

천리포수목원의 설명문은 대체로 친절했다. 나무나 꽃이 열매 맺은 모습을 찍어 팻말 안에 담아뒀다. 사진 한 장이 상상력을 더해준다. 학명과 개화 시기 등 학술적인 설명뿐 아니라 해당 식물에 얽힌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 관람객에게 대화거리도 던져주는 듯했다.

운향과 ‘머귀나무’는 옛날부터 귀신을 쫓는 나무라고 하여 가지를 마루 위에 걸어 놓았던 풍습이 있다는 사실이나 ‘마취목’은 잎에 독이 있어 말이나 소가 먹으면 마비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이 그랬다. 전쟁 중 마취목 근처에 묶어둔 기마대의 말이 풀을 먹고 죽어 전쟁에서 패했다는 전설 등을 통해 처음 보는 낯선 식물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땅 밖으로 튀어나온 공기 뿌리(기근)를 가진 ‘낙우송’의 모습. 김지윤 기자
땅 밖으로 튀어나온 공기 뿌리(기근)를 가진 ‘낙우송’의 모습. 김지윤 기자

수목원을 나오기 전 낙우송(落羽松)을 만났다. ‘잎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새의 깃털 같은 소나무’라는 뜻을 가졌다. 습지 옆에 사는 낙우송의 뿌리는 땅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종유석(돌고드름)처럼 뾰족뾰족하게 우뚝 솟아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숨을 쉬기 위해 만든 ‘기근’(공기 뿌리)이다. 흙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뿌리를 내보내기로 결심했을 테다. 기근은 무른 땅에서 나무의 몸을 지탱해주는 역할도 한다.

습지를 좋아해 그곳에 자리 잡은 건지, 그곳에 살 수밖에 없어 공기 뿌리를 내보낸 건지는 알 수 없다. 낙우송은 그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아내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마음에 담고 싶어 사진을 몇장 더 찍었다. 큰 숲에 인사를 전하고 수목원을 나왔다. 천리포의 파도 소리가 따뜻하게 배웅을 해줬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특임교수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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