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마당ㅣ나도 쓴다
신은 인간에게 날개를 주지 않았다. 날개 없이 위로 나아가려면, 어딘가를 밟아야만 한다.
밟고 싶지가 않다. 밟히는 것은 더욱 두렵다. 그래서 나는 멈춰 있다. 상상해본 이야기가 있다. 모두에게 잊힌 찰나를 떠올린 한 소녀가 그 순간 오로지 어둠만 있는 곳에 떨어진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곳, 시작과 끝의 존재마저도 어둠이 앗아갔다. 걷고 있으면, 파편과 같은 기억 조각이 다가온다.
할 수 있는 건 꿈속에서 자신이 살았던 삶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어느새 그리워하게 된 삶이라는 것도 잊고 또 싸우고 미워하고 아파한다. 깨어나면 후회에 차 다시 잠들어보려 하지만, 기억은 날카로운 파편이라 억지로 닿으려 하다가 상처만 입는다.
꿈을 꾸고 깨어나길 반복하다 만나게 될 하얀 괴물은 소녀에게 물을 것이다. 외로운 걸음을 끝내고 다음 우주를 위한 에너지의 일부로 돌아가겠냐고. 애써 삶에 남은 미련을 포장해 대답하다 소녀는 자신이 어둠 속에서 혼자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애초에 그 모든 걸음과 삶을 끝낼 선택권 따위는 제게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운명은 인도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무개가 본성으로 부여한 삶의 이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목적은 인위적이다. 소녀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꿈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과는 중력 때문에 떨어진다고 했다. 그럼 중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 근원의 근원은? 겨우 내가 하는 무모한 가정이지만, 대답의 끝이 우주의 시작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학문이 찾는 것들의 근원이 그곳에서 모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한 그 점. 이 무지가 해석의 폭을 넓히고, 여러 분야의 설명과 답을 허락해 세상이 팽창했을지도 모른다. 점에서 축들이 뻗어 나와 공간을 형성했고, 그 안에 내가 있다.
그 축의 일부가 된 물리학이 수로 쓴 시를 빌려 감히 나에게 답해본다. 네가 오를 때, 사실 네가 아닌 바닥이 널 위로 밀어주고 있다는 사실만 알면 되는 거야. 네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올려다보는 입장이 될 때에도, 덜 아파하는 법을 배우면 돼. 두려워 멈춰 있는 순간에도 결국 어딘가를 밟고 있어야 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나아가자. 내 걸음의 의미는 목적을 향한 비상이 아니라 삶의 지속이다. 내게 허락된 것도, 내가 허락할 것도 오로지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이다.
생각 끝에 나는 눈을 감고 영화 <소울>을 보고 올려다본 자동차극장 위의 밤하늘을 상상한다. 별들은 저 너머 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덮어놓은 밤의 보자기에 구멍을 뚫고, 그 틈으로 빛을 흘려보내며 태어났다. 그저 올려다보는 존재인 나는 걸음마다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아니 그걸 잊고 사는지도 모를 열여덟살의 우리가 그 모든 경쟁 속에서도 여전히 삶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다고 말해본다.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하얀 괴물에게 바치는 반성문일까. 사실 나는 여전히 내 모든 걸음이 두렵다.
김규린(대전여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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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린 학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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