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3일 천안공고 학생들이 보안경과 보안면, 안전화, 작업복 등 안전장비를 착용한 뒤 밀링 실습을 하고 있다. 충남교육청 제공
“처음에는 건강검진받는 게 좀 어색하더라고요. 아직 어리잖아요. 그런데 제 친구는 이번 직업계고 특수건강검진으로 남들보다 심장이 좀 작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습할 때 나오는 분진이나 연기 등에 더욱 주의해야겠다는 경각심이 들었죠. 다들 안전·보호 장비를 더 신경 써서 챙기게 됐어요.”
신지우(천안공고 전자기계과 2학년) 학생의 말이다.
충남교육청이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안전한 실습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건강진단 및 실습실 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서다. 이를 위해 이달 초 도내 20개 직업계고 학생과 교사 3천여명을 대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고 실습실 작업 환경을 조사·측정했다. 신지우 학생과 친구들도 이번에 처음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
직업계고 특수건강진단 및 실습실 작업 환경 개선 사업은 강원·경남·울산·대구교육청 등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교육 현장 전반에서 학생들에게 안전한 실습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월3일 병원 의료진이 조리·미용 특성화고인 천안병천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계고 특수건강진단 검사를 하고 있다. 충남교육청 제공
보호 장비 귀찮아하던 아이들도…
6월 초 병원 의료진이 관내 직업계고를 방문해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파악했다. 혈액검사를 비롯한 다양한 검진 과정에서 발견된 일반 질환은 학생에게 알려 의료기관의 치료를 받도록 조치한다. 직업계고 실습실 작업 환경 측정도 함께 진행했다. 실습실에서 접할 가능성이 큰 유해인자를 분석하고 관리하며 학생들의 건강을 더욱 살피겠다는 의미다.
신지우 학생은 “요즘 뉴스에서 마음 아픈 사고들을 보며 안전에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방법을 잘 몰랐다”며 “사비로 마련해야 했던 보호 장비 등을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챙겨주면서 직업계고를 선택한 후배들의 자긍심도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실습복이나 안전화 등은 학생들이 사서 써야 했는데 지난해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직업계고 전자기계과 선반·밀링 실습의 경우 철을 깎는 일이다 보니 안전 장비는 필수다. 보안경, 보안면 등 장비가 없을 경우 뜨겁게 가열된 철의 파편들이 학생들 얼굴에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혹 뜨거운 철 조각이 피부에 박혀 살을 익혀버릴 때도 있었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데 이번 실습실 개선 사업과 건강검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서 작업 환경 안전에 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 학교 정두영 교사는 “전자·기계 분야를 다루는 공업고등학교의 경우 목공, 선반·밀링 실습 시 발생하는 소음과 분진을 중점적으로 조사했다”며 “용접할 때 나오는 용접 퓸(fume, 용접 시 발생하는 미세 입자)과 망간, 산화철, 크롬을 비롯해 납땜과 도장 실습할 때 주의해야 하는 납, 구리, 주석, 톨루엔, 크실렌과 아세톤 등의 성분을 학교 실습실에서 충분히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 실시하는 사업이라 교사 입장에서는 현장에서 챙길 것이 참 많았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유해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실습 지도를 할 수 있어 보람이 큽니다.”
천안공고의 경우 화학공업과, 전자기계과 등 6개 과에서 위험 요소가 있는 실습실과 관련 내용을 모두 점검했다. 약품을 사용하는 제조화학 실습, 페인트를 사용하는 도장 수업을 비롯해 납땜 실습 등을 하는 학생들은 혈액검사도 진행했다.
직업계고 실습실 작업 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 설치된 국소배기장치 앞에서 예산전자공고 학생들이 납땜 실습을 하고 있다. 충남교육청 제공
정 교사는 “예전에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안전 장비 착용하는 것을 귀찮아했다. 자비를 들여 사야 하는 경우도 있어 경각심이 조금 낮았을 수 있다”며 “한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안전모, 안전대, 안전화, 보안경, 보안면, 절연용 장갑, 방열복 등 꼭 필요했던 장비들이 고루 갖춰지니 ‘내가 공부할 때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인식들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여기에 건강검진까지 더해지니 학생들이 실습과 자기 진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겁니다. 학생들도 이젠 안전하지 않으면 안 합니다.”
그동안 실습실 전체 배기장치는 있었지만 납 연기를 그 자리에서 바로 빨아들이는 국소배기장치는 없었는데 이번에 설치가 됐다. ‘금속 연기를 가까이에서 마시면 안 좋을 것이다’라는 느낌만 있었는데 실습실에 설비를 갖추니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김용정 과장(충남교육청 미래인재과)은 “6월 말에 건강검진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 신속하게 조치하고, 학생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교육 환경을 전환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안전수칙에 관한 감수성을 더욱 높이자는 겁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실습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안전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뜻이지요. 9월 중에 2차 실습실 작업 환경 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조리·미용 특성화고인 천안 병천고 실습실 점검 사진. 충남교육청 제공
노무사 등 전문가가 실습 환경 점검
건강검진과 실습실 환경 개선뿐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취직하는 직업계고 학생들에게는 노동권을 비롯한 ‘스스로 안전할 권리’에 관한 교육이 상당히 중요하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은 건강권, 노동권과 모두 연결돼 있다. 18~19살부터 산업 현장에 나가 실습을 하고 곧바로 취업하기 때문에 근로계약서 쓰는 법, 노동자로서의 내 권리에 관해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학생들이 실습 나갈 선도 기업을 정할 때는 교육청에서 노무사와 외부 전문가들을 파견해 현장을 면밀히 검토한다. 실습 기간과 시간, 위험 요소, 안전 매뉴얼 준수 여부 등을 모두 파악한 뒤 전문가들이 승인한 업체에만 실습을 나갈 수 있다.
손은중 교사(충남교육청 파견)는 “엄격하게 관리한다. 노동법뿐 아니라 청소년 관련 법규를 모두 지키는지 확인하는 ‘크로스체크’ 과정을 거친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아이들을 안전하게 교육한 뒤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안전교육 가이드라인이나 교육 등을 꼼꼼하게 챙긴다”고 말했다.
직업계고에서 안전교육은 의무적으로 하게 돼 있다. 아무리 잘 가르쳐도 학생들이 다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정두영 교사는 “실습 전 학생들은 한국기술교육대에서 1학점짜리 안전교육을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수강한 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포털 ‘하이파이브’에 기록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직업계고 실습실에 부착돼 있는 산업 안전 보건 표지. 충남교육청 제공
“네 안전이 가장 중요해” 메시지가 주는 힘
실습에 나가는 학생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지 않도록 ‘일하는 청소년’을 위한 인권교육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강원교육청의 경우 학생들이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올해 11월 말까지 ‘찾아가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한다.
‘찾아가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은 노동의 가치와 역사, 청소년 아르바이트 관련 노동법, 근로계약서 작성 방법, 사례로 이해하는 갈등 해결 방법 등 실제 노동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을 ‘강원노동인권교육 연구회 씨앗’ 소속 강사들이 개발한 공통 교안으로 진행한다.
김흥식 과장(강원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은 “노동인권교육은 중학교 14교, 고등학교 23교, 특수학교 1교 총 240학급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학급 단위로 1회 2시간 정도 운영한다”며 “지난해 중·고교에 9889부를 배포한 ‘일하는 청소년 노동권리 수첩’ 보급 사업도 올해 지속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노동은 이제 일상화됐습니다. 단기 직종에서 일하는 학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이 생명권과 노동권을 보장받고 스스로를 지키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동인권교육을 활성화할 예정입니다. 오는 7월에는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 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2022 노동인권교육 운영 계획’에 반영할 계획이고요.”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활용한 노동권 수업도 직업계고 일선에서 활발히 진행해오고 있다. 허진만 교사(삼일상고)는 학생들에게 ‘노동과 경제’ 단원을 가르치며 고용주와 직원으로 역할극 해보기, 18살 미만 연소근로자용 표준 근로계약서 직접 써보기, 협상 후 작성해보는 근로계약서 등 다양한 주제로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 관해 가르친다. 허 교사는 “학생들이 최저 시급은 알고 있지만 근로계약서가 있다는 것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등을 의외로 잘 모르고 사회에 나가는 경우가 있다”며 “실습에 나가기 전 안전교육은 물론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제대로 가르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건강권과 노동권, 학습권의 연결고리에 관해 정두영 교사는 “이번 개선 사업을 통해 직업계고 실습 환경 전반에 관한 데이터가 마련됐다. 교육청과 학교가 나서 위험 요소를 관리하고 학생들 건강 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니 아이들의 자존감도 높아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업 시간에 이뤄지는 여러 교육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공적인 영역에서 건네는 메시지, 즉 ‘네 안전과 건강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단다’라는 말이 더 의미 있게 다가간다는 이야기다. 학생들이 스스로를 중요한 사회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도록 어른들이 작은 발판을 마련해줘야 하는 이유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