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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하하”

등록 2020-03-20 22:24수정 2020-03-23 13:59

[토요판] 김종철의 여기
최초의 성전환 커밍아웃 군인 변희수씨

성전환 수술 뒤 첫 언론 인터뷰
지난해 말 남성→여성으로 전환
군, ‘신체 훼손’이라며 전역 명령
변희수 하사 강제로 내쫓은 직후
군, 군 인사법 시행규칙 개정해서
트랜스젠더의 복무 가능성 열어

기갑부대 모토 ‘기갑 선봉’답게
“강제전역 통보에 분노 컸으나
군 인권 개선 위해 끝까지 싸울 것”

 

“다른 나라 군대는 트랜스젠더 군인이 허용되는데 왜 우리나라 국군만 허용이 안 될까, 나라도 나서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전역 당한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 토요판과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다른 나라 군대는 트랜스젠더 군인이 허용되는데 왜 우리나라 국군만 허용이 안 될까, 나라도 나서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전역 당한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 토요판과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시대착오적인 규정을 이유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결국 거부하기는 했지만, 가장 변화가 느린 조직인 군도 자세히 보면 많이 변해왔다. 여단장과 군단장 등 일선 부대장들은 성별 위화감(젠더 디스포리아)으로 고통받는 군인(하사)의 성전환 수술을 승인하고, 그의 계속 복무를 지지했다.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전투력이 강한 군대로 향한 작은 희망이다. 이에 비해 정치권은 갈 길이 멀다.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사무총장은 며칠 전 비례정당 창당과 관련해 “성소수자 문제 등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들과 연합은 어렵다”고 말해 성소수자에 대한 낡고 편협한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스물세살 변희수씨는 지금 성소수자와 관련한 ‘필요하고도 생산적인 논쟁’을 앞장서 불붙이고 있다. 그는 ‘성별이 바뀐 것 외에는 모든 게 정상인데 트랜스젠더는 왜 복무를 하지 못하느냐’며 한국군과 우리 사회를 향해 묻는다. 최초의 성전환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다가 강제전역 조처를 당하고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던 그를, <한겨레>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만났다.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커밍아웃한 뒤 언론과 한 최초의 인터뷰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어. 괜찮아.”

마지막 방송(21일)만 남겨두고 있는 제이티비시(JTBC) 인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12회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 한 토막이다. ‘단밤’(식당 이름) 주방장인 트랜스젠더 마현이(이주영)가 ‘최강포차’라는 요리 경연 방송의 결승전에 나타나자, 상대 진영의 폭로로 그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방송사 관계자 등이 그를 보고 수군거리고, 마현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촬영장을 뛰쳐나간다. 단밤 대표인 박새로이(박서준)가 마현이를 찾아낸 뒤 “저따위 시선까지 감당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야”라며 대회에 안 나가도 된다면서 이렇게 ‘대회보다 너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다독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도망쳐. 당당히 맞서. 그래야 이기잖아’라고 하기 쉬운 대목에서 이 드라마는 ‘사람들 앞에 안 나서도 돼. 그들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어’라고 말한다. 섣부른 판단과 어설픈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따뜻한 공감과 든든한 편 돼주기로 다가간다. 마현이를 펑펑 울게 만들고, 시청자의 눈시울을 벌겋게 물들인 명장면이다.

변희수(23, 이하 호칭 생략)씨도 마현이처럼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고, 세상의 쓸데없는 관심과 호기심을 꿋꿋하게 물리치고 있을까. 그녀(<한겨레>는 3인칭 대명사를 성별 중립적인 호칭 ‘그’로 통일해서 쓰지만, 변희수의 성전환을 존중하기 위해 한 차례만 ‘그녀’라고 칭한다)를 만나러 가면서 마현이가 떠올랐다.

지난 11일 인터뷰 장소인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 사무실에는 두 명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군인권센터 관계자였지만, 다른 한 명이 주인공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마실 나온 듯 평범하고 수수한 옷차림에다가 꾸밈 하나 없는 얼굴은 군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인사를 나누면서 놀라는 기자에게 그는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모습은 어떠어떠할 것이라는 편견과 통념에 물든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그와 마주 앉았다.

군에서 처음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가 신체 훼손을 이유로 강제전역 조처를 당한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그는 군의 조처가 부당하다며 인사 소청을 신청했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군에서 처음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가 신체 훼손을 이유로 강제전역 조처를 당한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그는 군의 조처가 부당하다며 인사 소청을 신청했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개국은 트랜스젠더 복무 허용

―기자회견(1월22일)을 한 지가 두 달가량 됐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느라 병원에 왔다 갔다 했는데, 얼마 전부터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이제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을 잘 안 뽑아요. 군인연금 대상이 아니어서 빨리 돈을 벌어야 해요.”

―하루하루는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게임하고 쇼핑하고 평범하게 지내요. 저는 집 밖은 잘 안 가는 집순이입니다. 컴퓨터랑 닌텐도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아요. 웹툰도 좋아해요. 하하.”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꿨다(Male To Female Transgender)는 이유 하나로 군에서 갑자기 내쫓긴 변희수는 어떤 측면에서는 강제 해고를 당한 사회인보다 더 막막하다. 잠잘 곳 마련부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가족으로부터 독립했기에 그들의 도움도 없다. 그는 서울의 한 동네에 월세 40만원짜리 원룸을 구한 뒤 영외 숙소에서 쓰던 살림살이를 부랴부랴 가져와 보금자리를 꾸몄다.

―육군 전역심사위원회에서 강제전역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아니요.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복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런 결론이 나오면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조용히 부대로 복귀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죠. 그런데 강제전역 처분이라는 전역심사위원회 결과를 통보하는 전화를 기자회견 직전에 받았어요. 엄청 충격받은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그래서 기자회견문을 읽으면서 세번이나 울먹였군요.

“다시 복무할 수 있을 거라고 우리 부대가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있었죠. 우리 부대에서도 제가 복귀할 줄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역심사위 결과를 통보받고는 분노했죠. 배신감도 강하게 들었고요.”

―분노라면 무엇에 대한 분노였어요?

“배신감에서 비롯된 분노였어요. 분명히 복무시켜준다고 했는데 군이 뒤통수를 쳤으니까요. 최상층 군 수뇌부에 대한 배신감이죠. 군단장까지는 괜찮다며 계속 복무할 수 있다고 분명히 사전에 얘기했어요. 여단장님과 대대장님도 제가 복무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견을 전역심사위에 내셨고요. 그런 분위기로 볼 때 전역심사위를 통과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깨졌던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 군 법무 쪽과 인사 쪽이 의견이 달랐다고 해요. 법무 쪽은 복무를 허용하자는 의견이었고, 인사 쪽은 전역을 시키자는 견해였대요.”

변희수는 지난해 11월 여단장의 직인이 찍힌 ‘사적 국외여행 허가서’를 받고 타이(태국)로 출국했다. ‘의료 목적의 해외여행’이라고 기재된 그 허가서는 일선 부대에서는 그의 성전환 수술을 승인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노가 있더라도 트랜스젠더로서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죠.

“다른 선진국은 되는데 왜 우리만 안 될까 하는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현재 프랑스와 독일,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20개 나라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트랜스젠더 복무 금지 행정지침을 발표했지만, 각 항소법원이 이 지침을 위헌이라고 잇따라 판정하면서 성별 정정이 완료된 트랜스젠더들의 입대와 복무가 이뤄진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 군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2017년에는 육군, 2019년에는 해군에서 성소수자 군인 색출 작업이 벌어졌으며, ‘군형법 제92조의 6’은 이들을 성범죄자와 동일하게 취급한다. 또, 현역 군인 선발 기준인 ‘질병, 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에서도 성소수자를 ‘성 주체성 장애’와 ‘성 선호 장애’라는 병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국제질병분류표(ICD-11)를 개정해 정신질환에서 ‘성 주체성 장애’(disorder)를 삭제하고, 대신 성 건강과 관련한 하위분류에 ‘성별 불일치’(incongruence)로 표기하기로 했다.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한 것이다. 앞서 미국정신의학협회도 2013년에 ‘성 주체성 장애’라는 표현을 ‘성별 위화감’(dysphoria·디스포리아)으로 바꿨다.

지난 1월22일 군인권센터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변희수 하사가 군인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뒤 울면서 경례하고 있다. 하지만 군은 성전환 수술로 인한 신체 훼손을 이유로 들어 그를 1월23일자로 강제전역시켰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월22일 군인권센터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변희수 하사가 군인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뒤 울면서 경례하고 있다. 하지만 군은 성전환 수술로 인한 신체 훼손을 이유로 들어 그를 1월23일자로 강제전역시켰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사회운동에 일부러 빠진 중학생

―기자회견 후에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대에서 격려하는 문자를 많이 보내줬어요. ‘티브이에서 보고 많이 놀랐다. 마음 잘 추슬러라. 고생했다’라거나 ‘누구보다 힘들었겠지만 잘 견뎌내라. 앞으로도 분명 잘될 거니까 다시 만나자’ 등등의 문자를 상관들과 부대원들로부터 받았어요. 군 동기들과 고등학교 친구들도 보내왔고요.”

변희수는 199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평범한 아이였지만, 근처 도서관에 자주 가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일찍부터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생 때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시내에서 청소년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남성)과 본래의 성(여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위화감을 언제부터 느꼈나요?

“엄청 어릴 땐 조금 그런 거 같다고 느끼긴 했지만 심하진 않았고요. 초등학교 2~3학년쯤부터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죠. ‘난 왜 이렇게 태어났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놀 때도 여자 친구들이 더 편하기도 했고요. 자랄수록 그런 괴리감이 심해졌죠.”

―사춘기엔 고민이 더 깊어졌겠네요.

“그때는 오히려 그런 고민과 문제를 피하기 위해 좀 더 터프하고 와일드하게 굴었어요. 그래서 군대도 일찍 가기로 결심했고요.”

성별 위화감을 잊거나 바꾸기 위해 군대를 선택했던 거군요. 애국심도 있었지만요.

“네. 중학생 때 처음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애국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박근혜 정부 때 국군의날 행사에 초청받기도 했고요. 그때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장의 국민초청석에 앉아 있었어요.”

―무슨 일을 했길래 중학생이 그런 행사에 초청을 받았어요?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청와대에서 편지가 왔어요. 아마, 독도 군인에게 편지 보내기와 북한인권법이나 독도 영유권과 관련된 활동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항의하기 위해서 청주 시내의 번화한 거리(성안길)에 나가 욱일승천기를 바닥에 깔아놓고 시민들에게 밟고 가도록 했어요.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는데 나중에 다른 청소년들이 찾아와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국수주의적인 활동이었는데 당시에는 열심히 했어요. 훈방되기는 했지만, 경찰에 붙잡혀 가기도 할 만큼 세게 했어요. 제 속에서 생기는 성정체성 고민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랬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중학생 시절을 ‘뜨겁게’ 보낸 변희수는 고교 진학도 독자적으로 결정했다. 부모나 담임선생님 등 주변에서는 청주의 인문계 고교로 가라고 권했지만, 그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장성군에 있는 부사관 양성 특성화고(삼계고교)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국가에 헌신하는 군인이 되고픈 생각과 남자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때때로 찾아오는 성정체성 혼란을 잊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군 복무를 계속하고 싶어 성전환 수술을 했던 거예요. 수술 후에 우울증이 사라지는 등 모든 게 정상이 됐어요.” 트랜스젠더 하사였던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군 복무를 계속하고 싶어 성전환 수술을 했던 거예요. 수술 후에 우울증이 사라지는 등 모든 게 정상이 됐어요.” 트랜스젠더 하사였던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전환 수술 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골목 집 앞에 놓여 있는 조화 다발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전환 수술 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골목 집 앞에 놓여 있는 조화 다발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어릴 때부터 젠더 불일치 고민에
군 조기 입대 결심 등 회피 시도
시간 갈수록 우울증 심해져 결심

“나처럼 심한 경우는 수술이 해법
지금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와”

“전투력 강한 군 위해서라도
성소수자 차별하면 안 돼”

“다수자도 소수자인 측면 있어
소수자 차별에 눈감으면
자신들도 언젠가 박해받을 것”

―장성에 있는 특성화고는 어떻게 알았어요?

“군대를 좀 더 빨리 가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그런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집에서 말리고 반대했지만, 제가 선택했어요.”

―고교 3년 생활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학교생활은 재미있었어요. 남녀공학이었는데 남녀 구별 없이 다 같이 잘 어울려 놀았어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체력이었어요. 같은 학년 친구들과 같이 먹고 자고 뛰는데 체력이 남들보다 안 됐어요. 온 힘을 다해 노력해서 겨우 친구들의 80% 정도 체력에 이르렀던 거 같아요. 오직 군인이 되겠다는 한 가지 목표만 갖고 노력하다 보니까 정체성의 문제를 느낄 틈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도 친구들은 저에게 좀 위화감을 느꼈다고 해요. 제가 좀 여학생 같다, 이상하다는 식으로 느꼈다고 해요.”

씻을 때마다 우울하고 불안

변희수는 2016년 9월에 입대해 훈련소와 육군부사관학교, 기계화학교를 마치고 2017년 3월 육군 하사관으로 꿈에 그리던 군인이 됐다. 40 대 1이라는 높은 경쟁을 뚫었다. 탱크조종수로서도 변희수는 하사 중에서 유일하게 A등급을 받는 등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참모부서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공군이 주최하는 유시시(UCC)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해 공군참모총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군 생활에 잘 적응해갈수록 그의 마음은 힘들어졌다.

“그(군 적응)에 비례하면서 제 마음 또한 무너져내렸고,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습니다.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로 인한 우울증 증세가 복무를 하는 동안 하루하루 심각해지기 시작했으며, 너무 간절한 꿈이었음에도 이대로라면 더 이상 군 복무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힘들어하는 저를 두고 ‘현역복무 부적합 심의를 받는 것은 어떠냐’는 권유를 할 정도였습니다.”(1월22일 기자회견문)

그는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 경우 현역으로 복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정, 즉 중도 전역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어떡하든 좋아하는 군에 남고 싶었다.

―국군수도병원에는 어떻게 해서 가게 됐던 거예요?

“고된 훈련 때는 마음이 힘들지 않은데, 몸이 힘들지 않은 평소 일과 때에는 갑자기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라는 자괴감이 들곤 했어요. 부대에서 잘 케어해줘서 그나마 그 정도로 버티면서 군 생활을 잘할 수 있었는데, 조금씩 우울해지다가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는 한계상황에 어느 순간 이른 거죠.”

변희수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해 5월 국군수도병원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두 달간 입원 치료를 하며 그는 마음의 병이 왜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았으며, 자신의 본래 성을 찾기로 결심했다. 군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서 가족에게 자신의 상태와 결심을 알렸다. 퇴원 때는 부대 상관들에게도 있는 그대로를 보고했다. 부대 상관들은 수술을 위한 휴가 출국을 허가하는 등 변희수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수술을 미루거나 하지 않고 트랜스 여성으로서 복무를 신청할 생각은 안 해봤어요?

“똑같이 성전환이라는 증상이 있어도 대책은 사람마다 달라요. 저는 제 몸에 대한 디스포리아가 너무 심했어요. 제 몸 자체가 스스로 용납이 안 될 정도였어요. 따라서 저의 치료법은 수술밖에 없는 거예요. 군 복무를 위해서라도 디스포리아부터 해결해야 돼요. 그래서 수술을 받았을 뿐이에요.”

―수술 후 디스포리아는 사라졌나요?

“네. 디스포리아가 거의 사라졌어요.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거 같아요. 그 전에는 날마다 씻을 때마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그랬거든요.”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복귀한 변희수는 여군으로 복무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군은 그에게 의무조사를 실시해 ‘심신장애 3급’(음경 훼손 5급, 고환 적출 5급을 종합한 등급) 판정을 내리고,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군 인사법상 심신장애 1~9급인 군 간부는 전역 대상이다. 이에 변희수는 법원에 낸 성별 정정 허가 신청을 이유로 들어 전역심사 연기를 요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성전환 수술 행위를 신체장애로 판단해 전역심사위에 회부한 것은 차별 행위 개연성 등이 있다”며 인권위 조사 기한 3개월 이후로 심사를 연기할 것을 권고했지만, 군은 1월22일 전역심사위원회를 강행했다.

하지만 군은 변희수가 민간인이 된 날(1월23일) 군 인사법 시행령을 고쳐서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즉, “심신장애의 사유가 되는 질환 또는 장애가 해당 병과에서의 직무수행에 직접적인 제약을 주지 않는 경우”에는 “심신장애 치유 가능성, 병과 특성에 따른 복무 가능성, 군에서의 활용성과 필요성 등에 관한 심의를 거쳐 남은 의무복무 기간 동안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다”는 조항(시행규칙 제53조 4항)을 신설했다.

―군 인사법 시행령 개정이라는 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오래 준비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하는 거잖아요. 새 시행령에 따르면, 희수씨 같은 트랜스젠더 군인도 심사 결과에 따라서는 군 복무를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럼 며칠 더 기다렸다가 개정된 시행령으로 전역심사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굳이 시행령 개정 하루 전에 심사위를 열었다는 것은 쫓아내겠다는 뜻이잖아요.

“제가 직접적으로 군에 반기를 들었으니까 저를 일부러 내친 게 아닌가 싶어요. 익명이기는 했지만, 정식 기자회견이 있기 전에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나왔다는 기사가 떴잖아요. 그것에 대해 군 상층부가 괘씸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강제전역이 부당하다는 인사 소청을 육군본부에 냈는데, 결말은 언제 나요?

“시일이 언제 잡힐지는 알 수 없어요. 소청에서 안 받아들여지면 행정소송을 하려고 해요. 성이 바뀐 것 외에는 신체적으로 결손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복무를 할 수 없다고 판정 내린 것은 정말 부당해요. 팔이 한쪽 날아간 것도 아니잖아요. 전차 조종하는 데 무슨 장애가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돼요. 지금 여군들도 전차 조종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소송에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요.

“그래도 끝까지 싸울 겁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쟁취하고, 차별 없는 군을 만들기 위해서 기갑부대의 모토인 ‘기갑 선봉’답게 선봉에 나가서 싸울 거예요.”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다가 강제전역당한 뒤 군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산책 도중 만난 길고양이를 보고 반가워하고 있다. 그는 “특성화고 시절 후배들을 단 한번 집합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 1학년 한명이 길고양이를 괴롭혀서 훈계하려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다가 강제전역당한 뒤 군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산책 도중 만난 길고양이를 보고 반가워하고 있다. 그는 “특성화고 시절 후배들을 단 한번 집합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 1학년 한명이 길고양이를 괴롭혀서 훈계하려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숙명여대 트랜스젠더와 더불어

군인권센터에서는 그의 행정소송을 도울 자원봉사 변호인단을 모집했다. 지금까지 3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변희수와 군인권센터는 피우진(전 국가보훈처장)의 법적 투쟁을 살펴보고 있다. 피우진은 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2002년 유방암이 생겨 유방 절제술을 받고 완치됐지만, 군은 신체 일부가 없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내리고 강제전역시켰다. 복무에 지장이 없는데도 군 인사법 시행규칙을 이유로 퇴역시킨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며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피우진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2008년 군에 복귀했다.

―행정소송에서도 지면 여군으로 다시 입대를 지원하겠다는 각오도 밝힌 바 있는데요.

“원래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난소가 없으면 입대가 안 되는 규정이 있대요.”

2016년까지는 여군 입대 전 신체검사 항목 중에 임신반응 검사와 더불어 골반 초음파 검사가 있었다. 자궁과 난소 등을 검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육군3사관학교에서는 임신중절 수술 여부 기록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 군은 임신반응 검사만 두고 나머지는 폐지했다. 그러나 변희수는 트랜스젠더를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하고 있는 군의 선발 기준에 따라 입대가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그 벽을 깨고 넘으려면 또다시 소송이 필요하다.

―희수씨가 강제전역 조처를 당한 직후에 숙명여대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죠. 트랜스젠더 여성이 신입생으로 합격했는데 일부 학생들의 반대로 결국 입학을 포기했잖아요.

“그와는 트위터 등을 통해 서로 아는 사이예요. 어제도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어요. 서로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죠. 저는 전역당하고, 그 친구는 입학을 사실상 거부당했고요. 그러나 우리는 좌절하지 않아요. 그 친구는 다시 다른 대학에 도전할 생각이더라고요. 외국 유학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할 일을 찾아서 할 거고요.”

―군과 대학에서 보듯이 아직 우리 사회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많아요. 인식이 개선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때때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당사자들로서는 속상하고 힘들 것 같아요.

“그렇죠. 인식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저 혼자로는 역부족이에요. 2000년대 초반에 하리수씨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처음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그나마 온 게 이 정도죠. 아마 저 혼자의 싸움만으로는 안 될지도 몰라요. 저 다음에 또 누군가가 나와야 인권 신장이 되고, 그래야 저희 같은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군 내부에 트랜스젠더분들이 꽤 있지 않나요. 그분들이 변희수씨가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을 거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중사와 상사 중에도 트랜스젠더가 있어요. 장교 중에도 있고요. 그분들도 앞에 나오셔서 좀 더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선두에서 혼자 싸우느라 힘들지 않나요?

“저는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을 없애버리고 살 수 있습니다. 하하.”

―군의 인권 개선을 위한 최전선의 싸움인데, 군당국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고 그들까지 포용한다면 더 나은, 전투력 있는 군으로 발전할 텐데 안타까워요. 단합이라는 것도 한두 사람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여러 사람이 단합해야 그만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텐데 이렇게 소수자를 배척하면 나중엔 배척된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요. 강한 전투력 있는 대한민국 국군이 만들어지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기자회견을 후회하진 않았어요? 그냥 조용히 있을걸 하고요.

“후회 안 했어요. 제가 원래 좀 낙관적인 편이에요. 하하.”

―하사 의무복무 기간이 4년이잖아요. 그 뒤의 계획은 뭐였어요?

“장기복무를 신청하려고 했어요. 군생활이 처음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만큼 그렇진 않았지만, 할 만했거든요.”

―탱크를 모는 기갑부대를 선택한 것은 의외로 보여요.

“저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전차 조종할 때가 무엇보다 좋았고요. 아 참, 전차 안에 에어컨이 없는 거 빼고는 다 좋았어요. 전차에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에 너무 힘들어요. 에어컨은 전차조종수의 한이에요. 양압장치도 마찬가지고요.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전차에 꼭 에어컨을 달아주라는 겁니다.”

양압장치는 차량 내부의 공기압을 바깥보다 1기압 높여주는 것으로, 이 장치가 있으면 독가스나 방사능 등 화생방 물질이 전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미군 장갑차나 전차에는 양압장치와 에어컨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100여대 남짓한 K2전차에만 설치돼 있을 뿐 나머지 99% 전차에는 없다. 이런 장치가 없는 전차는 여름철에 조종실 안이 섭씨 40도를 웃돌며, 해치를 닫으면 50도를 넘어간다.

강제전역 당한 뒤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변희수(왼쪽)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골목길을 김종철 선임기자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제전역 당한 뒤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변희수(왼쪽)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골목길을 김종철 선임기자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마현이처럼 당당하게

―희수씨의 싸움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남성이 아니라 여성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 어때요?

“이제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아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요. 살아가는 데 자신감도 생기고요.”

다른 트랜스젠더나 성소수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요.

“자기 내면에 솔직해지면 좋겠어요. 쌓아두고 도피하려다가는 큰일 나니까요. 풀 수 있을 때 푸는 것이 좋습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마현이는 ‘최강포차’ 결승전이 시작되기 직전 대회장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다. 마현이 대신 요리 경연을 준비하던 박새로이 등 모든 참가자와 방송 관계자들의 눈이 그에게로 향한다. 마현이는 그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당당하게 선언한다.

“단밤 요리사 마현이,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저는 오늘 우승하겠습니다.”

변희수는 ‘충격과 배신감’에 울먹였던 기자회견 때와 확연히 달랐다. 마현이처럼 단단하면서도 맑고 밝았다. 마현이의 최강포차 우승처럼 변희수의 인권 투쟁도 결국 이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소수자 등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변희수는 이렇게 말했다.

“다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 소수자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노동조합원이라든지, 다른 소수 종교라든지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럴 때 자기가 다수라고 생각하면서 소수자 차별에 눈감으면, 자신들이 소수자로 박해받을 때 결국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녹취 홍혜원

유치원생 때 청주 공군박물관: 공군사관학교에 전시된 전투기를 배경으로 찍었다. 어릴 때부터 군을 좋아했다.
유치원생 때 청주 공군박물관: 공군사관학교에 전시된 전투기를 배경으로 찍었다. 어릴 때부터 군을 좋아했다.

2013년 해병대 캠프에서: 중3 여름방학 때 일주일간 포항에서 열린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
2013년 해병대 캠프에서: 중3 여름방학 때 일주일간 포항에서 열린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

2015년 견학 여행 차 안에서: 고2 때 대전에 있는 계룡대의 육군본부로 견학을 갔다.
2015년 견학 여행 차 안에서: 고2 때 대전에 있는 계룡대의 육군본부로 견학을 갔다.

2019년 9월 기갑부대: 성전환 수술 받으러 출국하기 전 내가 몰던 전차 포신에 기대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9년 9월 기갑부대: 성전환 수술 받으러 출국하기 전 내가 몰던 전차 포신에 기대 기념사진을 찍었다.

2020년 1월22일 군인권센터: 강제전역 통보를 받은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함을 밝혔다. 옆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nbsp;♣H6s김경호&nbsp;선임기자&nbsp;jijae@hani.co.kr
2020년 1월22일 군인권센터: 강제전역 통보를 받은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함을 밝혔다. 옆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H6s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종철: 1989년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뒤 정치부, 사회부 등에서 일하다 현재는 토요판팀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국가나 사회, 민족 등 추상적인 단어보다 그 실질을 이루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지금 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여운이 오래가는 기록’을 지향한다. ‘김종철의 여기’는 4주에 한 번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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