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 ① 중국인 유학생 ‘코로나 한 달’
중국 혐오란 낯선 공포
한국행 비행기표 끊은 뒤 불안
“중국인 신분 드러내는 게 걱정…
‘중국은 곧 전염병’ 인식 있어서요”
입국 뒤 자가격리 16일
증상 없었지만 주인 염려 커 칩거
“라면 등 간편식 주로 먹었지만
쓰레기 못 버려 고약한 냄새와 동거”
중국 혐오란 낯선 공포
한국행 비행기표 끊은 뒤 불안
“중국인 신분 드러내는 게 걱정…
‘중국은 곧 전염병’ 인식 있어서요”
입국 뒤 자가격리 16일
증상 없었지만 주인 염려 커 칩거
“라면 등 간편식 주로 먹었지만
쓰레기 못 버려 고약한 냄새와 동거”
코로나보다 무서운 ‘혐오 시선’ 코로나19 확산 뒤 한 달 보름 남짓한 동안, 장린을 비롯한 중국인 유학생들은 삶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1월23일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올라와 나흘 만에 45만명을 넘어서더니, 최종 76만1833명의 동의를 받았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코로나19 이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한국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중국 특성상 늦어도 개강 한 달 전에는 한국에 들어와 거처 마련, 수강 신청, 등록금 납부, 비자 연장 등을 준비해야 하는 탓이다. 특히 한국이 낯선 신입 중국 유학생들에게 ‘중국 포비아’는 더 큰 공포였다. 장린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모인 위챗방에서 신입생들은 ‘한국에서 중국 유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지’ 등이 담긴 고민을 올리곤 했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이들의 근심도 깊다. 춘절을 맞아 고향인 우한을 찾은 핑핑(가명·26)은 지난달 4일 정부가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 지역의 외국인 입국을 제한하면서 중국에 발이 묶였다. 오는 8월 졸업 시험을 봐야 하는 핑핑에게 ‘한국 입국 금지’는 ‘졸업 무제한 연기’를 뜻한다. 논문 심사나 졸업 시험을 봐야 하는 석·박사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은 대안이 될 수 없다. 핑핑은 “졸업 시험만 보면 석사 과정을 마치는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거나 혐오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대학에 등록한 중국인 유학생 7만983명 중 절반 수준인 3만3613명이 핑핑처럼 3월 전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오는 8월 석사 졸업을 앞둔 장린에게도 한국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러나 한국 입국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월1일치 한국행 비행기를 끊어놓은 장린은 이내 불안해졌다. 1월 하순 한국에서 미지의 질병인 코로나19는 ‘우한 폐렴’으로 명명됐고, 각종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등에는 “우한 폐렴이 걱정이다. 중국동포 도우미를 그만 오게 해야겠다”는 취지의 글들이 잇따랐다. “교수님 저 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 불안한 마음에 장린은 ‘중국인 포비아’와 관련된 기사들을 첨부해 지도교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너희를 환영하고 너희는 공부할 수 있어.” 지도교수는 따뜻한 답장을 보내주었지만 장린의 걱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 가서 중국말을 하고 중국인이라는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 걱정됐어요. ‘중국은 곧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있으니까….” 가족도 장린의 한국행을 만류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은 뒤 한국에 들어가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다음 입국’이 언제인지를 기약하긴 어려웠다. 한국행을 취소한다면 장린이 계획해온 삶의 여정도 줄줄이 취소될 판이었다. 결국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그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중국 황산에서 한국으로 오는 마지막 직항 항공편이었다. _________
중국인 신분 노출될까 두려워…숨어 지낸 16일 지난달 18일 서울에서 장린을 만났을 때 그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2월1일 입국 뒤 16일 동안 스스로 한 자가격리를 마치고 집 밖에 나온 지 이틀째였다. “안녕하세요.” 익숙한 한국말로 인사한 장린은 미간부터 턱을 완전히 감싼 하얀 마스크에 민트색 후드티를 바짝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그의 눈빛과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불안하고 초조한 심정을 대신 말해줬다. 코로나19 증상이 전혀 없던 장린이 자가격리를 선택한 건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편한 시선 탓이 컸다.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이나 길거리, 식당 등에서 마주칠 한국인의 입장을 생각하면 자신이 칩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저는 증상이 없지만 옆집에 집주인 노부부가 굉장히 걱정하셨거든요. 증상은 없는지, 괜찮은지 물어보셔서 제가 밖으로 나가면 놀라실까 봐 스스로 자가격리하기로 했어요.” 16일은 예상보다 더디게 흘렀다. 고비는 8일째 찾아왔다. 반복되는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면 한집에 함께 살았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친구들이라도 있었다면 답답한 격리 기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장린은 그들을 다시 볼 수 없다. 코로나19로 장린의 중국인 룸메이트 두명은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어학당에 다녔던 한명은 한 학기를 남기고 한국 유학을 포기했고, 장린의 학교 학부생이었던 다른 한명은 휴학을 신청했다. 도와줄 가족과 친구가 없는 외국인이 자가격리 상태로 16일을 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밥은 허기를 달래는 데에만 맞췄다. 중국 라면과 도시락 등 조리가 간편하면서도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음식을 택했다. 배달음식과 가공식품에서 나어는 쓰레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잠깐 쓰레기라도 버리러 나갈까 싶다가도 장린을 불안한 듯 바라보던 옆집 노부부를 떠올리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16일 동안 그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75ℓ 봉투 2개 분량이었다. 집 안엔 버리지 못한 쓰레기의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_________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학생들 자가격리 이후에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린은 2월 부동산 임대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한국에 오지 못한 중국인 유학생의 집에 대신 들어가 살 수 있게 됐지만 문제는 이사였다. 돌아오지 못한 두 룸메이트의 짐까지 모두 혼자 정리해야 했다. 멀쩡한 물건들 반은 버리고 반은 다른 유학생들에게 넘긴 뒤에야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삿짐을 채 풀지도 못한 지난달 26일, 장린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찾아 비자 연장을 신청했다. 3월 하순 비자 종료를 앞둔 터였다. 연장 사유 등 기본적인 질문에 답한 뒤 출입국·외국인청을 나온 장린의 마음은 복잡했다. 졸업을 위해선 비자가 연장돼야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개강과 졸업 모두 여전히 불투명하다. 중국인을 바이러스처럼 바라보는 시선까지 감수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사이 상황도 바뀌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7천명(9일 기준)을 넘어서면서 ‘중국 포비아’가 ‘한국 포비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한국은 위험하니까 나가지 말고 집에 라면 같은 것을 사놓아야 한다” “중국에 들어와라. 지금 중국은 좀 안정적이다.” 가족은 날마다 장린을 걱정하는 말을 위챗으로 보내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국 국민 40%가 감염될 수 있다”는 어느 전문가의 전망은 졸업을 하고 귀국하겠다는 장린의 의지마저 흔들고 있다. “요즘 학교 근처에 방역복 대신 비옷을 입고 캐리어를 끌고 마스크를 낀 중국 학생들을 자주 봐요. 한국보다 중국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다들 돌아가는 거죠. 저도 아직 학비를 내지 않고 고민 중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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