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혐오가 확산됐다. 최근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 여성이 군대에서 강제 전역되고, 여대에 입학하려 하자 안팎에서 혐오 여론이 쏟아졌다. 정신장애인들은 때마다 편견과 혐오의 장에 소환된다. 우리는 과연 혐오의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한겨레>는 그 시작점으로 2007년 이후 13년째 국회를 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입법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소수자 당사자 이야기와 데이터 분석, 전문가 조언, 사회역학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석학 대담을 기획 시리즈로 펼친다.
위기는 외부의 공적을 필요로 한다. 불안과 공포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아울러 외부의 공적은 내부의 결속을 강화한다. 공적은 늘 약한 고리 어딘가에 존재한다. ‘정상’보다 ‘열등’하고 ‘미개’한 곳에 책임을 물을 때 위기의 원인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책임 추궁에 정당성이 생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포가 한국 사회를 뒤흔든 2020년 겨울에도 이 명제는 고스란히 반복됐다.
코로나19가 처음 한국에 소개된 건 올해 1월2일이다. 이틀 전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우한시의 발표를 인용해 코로나19에 대해 보도하자, 한국 언론은 앞다퉈 “중국 우한의 한 해산물시장에서 바이러스성 폐렴이 집단 발병해 희귀 전염병이 발병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여론은 1월20일 국내에서 첫번째 확진환자가 발생하면서 다시 불붙었다. 잇따라 확진자가 늘어나고, 23일 중국 정부가 우한 봉쇄령을 내리면서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같은 날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모두 76만1833명의 동의를 받았다. 설 연휴 전후 중국동포 밀집 지역인 서울 대림동에 대한 혐오 여론이 일기 시작했고, 23일 한 커뮤니티에 ‘우한 폐렴이 걱정인데 ‘조선족’ 도우미 아주머니 그만 오시라고 할까요’라는 글이 올라왔으며, 28일에는 서울에 ‘중국인 출입금지’를 내건 식당이 등장했다.
다음소프트가 운영하는 빅데이터 분석 누리집 ‘소셜메트릭스 트렌드’ 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보도되기 전인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네이버에 올라온 모든 기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블로그에 ‘혐오’와 함께 언급된 연관어는 주로 ‘여성’, ‘자기혐오’, ‘혐오발언’, ‘장애인’ 등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1월 마지막 주(1월26일~2월1일)에는 ‘여성’, ‘사람’에 이어 ‘중국’이 3위에 올랐고, ‘코로나’가 처음 5위에 등장했다. 이어서 2월 셋째 주(16~22일)부터는 ‘중국인’이 2위, ‘중국인 혐오’가 10위, ‘중국인 입국’이 12위에 올랐고, 2월 넷째 주(23~29일)에는 ‘신천지’가 3위에 올랐다. 국내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이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이 쏟아진 시점도 이때다.
중국인을 비하하는 의미의 ‘짱깨’라는 혐오표현의 사용 빈도도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다섯째 주(12월29일~1월4일)에 ‘짱깨’라는 혐오표현이 쓰인 횟수는 모두 710회였다. 하지만 1월 마지막 주는 1만1029회로, 한달 만에 15.5배 급증했다. 인터넷에서 중국을 검색했을 때 함께 언급된 ‘감성어’(감정표현과 관련된 단어)도 부정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12월18일부터 올해 1월18일까지 한달 동안 ‘중국’과 함께 언급된 주요 감성어는 ‘고맙다’, ‘좋은’, ‘도움’ 등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달(2월26일까지)은 ‘감염되다’, ‘혐오’, ‘공포’로 바뀌었다. 중국에 대한 전체 감성어 가운데 부정적인 표현의 비중은 30%에서 72%로 급증했다. 소셜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사이람’의 배수진 과장은 “과거에도 그런 반응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사드 갈등’ 이후부터 중국이 깡패국가처럼 굴면서 한국에 피해를 안긴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홍콩의 민주주의 요구 시위 탄압 때도 비슷한 여론이 형성됐다”며 “특히 누리꾼들이 코로나19에 대해 가장 처음 접한 정보가 식용 야생동물을 파는 우한 시장에서의 전염병 발병이어서 ‘중국인은 비위생적’이라는 편견에 더해 ‘역시 중국인은 미개하다’는 혐오 반응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도 “한국인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혐오하지 않는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열등한 것에 대한 혐오”라며 “중국이 지금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대국이지만, 중국인 개개인은 한국보다 못하고 미개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자체 조사에서도 똑같은 흐름이 포착됐다. <한겨레>는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선’(Python)을 이용해 지난 1월18일부터 2월26일까지 40일 동안 트위터에서 ‘코로나’ 또는 ‘우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트위트 69만9254개를 수집했다. 분석 결과, 1월25일 트위터에서 ‘우한’, ‘코로나’, ‘짱깨’라는 표현이 함께 언급된 트위트는 378번이었다. 특히 ‘짱깨’라는 혐오표현은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온 1월23일 32회였다가, 청원 참여자가 20만명을 돌파한 사흘 뒤 1013회로 31.6배 급증했다. 해당 단어가 ‘짱깨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와 같이 긍정적인 맥락에서 쓰인 트위트는 집계에서 제외했다.
트위터 분석에서 ‘중국’, ‘대구’, ‘신천지’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100개를 살폈을 때도 차별과 배제를 연상시키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중국’과 함께 언급된 단어는 ‘우한 폐렴’(7위, 9277회), ‘금지’(12위, 6241회), ‘봉쇄’(29위, 2068회), ‘혐오’(38위, 1700회) 등이 있었다. ‘대구’와 함께 언급된 단어에는 31번째 환자를 가리키는 ‘31번’(13위, 2670회)이 비교적 높은 순위에 올랐다. ‘봉쇄’(18위, 1969회), ‘폐쇄’(34위, 1166회), ‘대구 코로나’(40위, 1057회), ‘차단’(65회, 607회), ‘대구 폐렴’(78위, 553회)도 주요하게 언급됐다.
위기는 어떻게 혐오를 불러오는 걸까. 이 지점에서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의 분석이 흥미롭다. 전 교수는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이것이 트리거(방아쇠)가 되어 잠재돼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건드린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라며 “질병이나 재해가 닥치면 본인들이 느끼는 인지적 혼란과 감정적 불만, 도덕적인 동요 세 가지를 풀 대상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중세의 마녀와 같은 속죄양을 찾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특히 이번 코로나19는 발원지가 초기에 중국 우한이라고 명확히 드러났다. 그래서 속죄양이 중국인으로 설정돼 혐오를 통해 불안이나 공포 같은 심정적 문제의 해결책을 찾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속죄양 기제는 대구에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잠시 대구로 번지는 듯했다. 대구에서 31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난달 18일, 트위터에선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대구코로나’와 ‘#대구폐렴’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공유됐다. 이날 이 2개의 해시태그가 등장한 트위트는 43개였는데, 정부가 감염병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높인 23일에는 닷새 만에 2446개로 폭증했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오기 하루 전인 1월19일 ‘우한폐렴’과 ‘#우한코로나’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트위트가 15개였다가 20일 432개, 21일 4011개로 폭증하고, 28일에는 5765개로 최고치를 찍은 것과 같은 흐름이다.
이후 31번째 확진자가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대중의 분노는 신천지로 옮겨갔다. ‘#신천지코로나’가 우한과 대구 관련 해시태그보다 더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다. ‘#신천지코로나’ 해시태그는 앞서 추가 확진자 20명 중 14명이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19일 트위터상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트위터상 ‘신천지’와 함께 언급된 단어는 욕설과 비속어가 2062회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따라 대중의 부정적인 반응이 중국에서 대구, 신천지로 점점 옮겨간 흐름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누구나 혐오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는 “전염병은 그야말로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전세계적으로 퍼져가는 현상인데 특정 지역이나 성별, 인종과 같은 정체성 지표를 두고 부정적인 표현을 붙이는 건 혐오와 차별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한국어문학)도 “실제 생활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처럼 (이런 해시태그는) 모두가 그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다 보면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구획해서 봉쇄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오연서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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