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학 기숙사에 파트너와 거주 신청했으나 반려
미국법 따라 동성결혼 경우 가능 여부 물어도 ‘묵묵부답’
대학 인권센터·다양성위원회도 ‘모르쇠’로 일관
미국법 따라 동성결혼 경우 가능 여부 물어도 ‘묵묵부답’
대학 인권센터·다양성위원회도 ‘모르쇠’로 일관
“한국의 최고 명문 학교로서, 글로벌 대학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1년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방문 교수를 지낸 토드 A. 헨리(49)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역사학과 부교수는 답답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2019년 1학기 강의를 앞두고 외국인 교수, 연구원들을 위한 기숙사인 비케이(BK) 생활관 가족동의 숙소를 신청했다. 성소수자인 헨리 교수는 2년6개월 동안 함께해온 파트너와 거주하기를 희망했으나, 학교 당국은 ‘기혼자만 가족동에 거주할 수 있다’는 운영세칙을 내세워 반려했다. 헨리 교수는 본국에서 결혼한다면 기숙사 신청이 가능할지 문의했으나 서울대 기숙사 쪽은 “동성결혼의 경우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만 하고 더 이상 답을 주지 않았다. 이에 헨리 교수는 따로 숙소를 마련해 파트너와 함께 머물다가 지난 1월1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헨리 교수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2013년 동성결혼 금지법이 철폐됐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2015년 동성결혼 금지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미국 전역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됐다.
서울대 기숙사 정책이 성소수자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헨리 교수는 지난해 3월 서울대 다양성위원회와 서울대 인권센터에 이 문제를 질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5월엔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에 ‘가족생활동, 가족을 다시 생각하자’는 글을 써서 “성소수자 커플에게도 주택 제공과 같은 서울대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보장되어야 한다”며 문제 제기를 했지만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인권센터 쪽에 상담을 했더니 ‘우리는 성폭력 피해를 중심으로 다룬다’며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다양성위원회에도 이메일로 문의했으나 ‘우리 위원회의 주요 기능은 연구와 조사’이므로 인권센터와 연락을 취해보라는 답변뿐이었다”고 말했다. “소수자들의 안전 보장을 위해 설립된 기관들이 이런 중요한 이슈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에 실망했다”고 그는 밝혔다.
2003년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연구생으로 공부했던 헨리 교수는 당시에도 학내 성소수자 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최근 한국 성소수자들의 역사와 문화, 인권 문제를 다룬 <퀴어 코리아>(Queer Korea)를 미국 현지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서울대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대 인권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상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상담한 내용과 그 결과는 절대 외부에 알려줄 수 없다”며 입을 닫았고, 비케이 생활관 쪽도 28일 통화에서 “헨리 교수가 제기한 문제는 알고 있으나 현재 동성혼은 한국에서 합법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동성혼 가족의 거주 문제는 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서울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쪽은 총학생회 산하의 ‘학생, 소수자 인권위원회’로 이들은 조만간 학교 기숙사 쪽에 간담회를 제안할 예정이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류민희 변호사는 “최근 대한항공이 해당 국가에서 인정한 동성혼 기혼자들에게 ‘마일리지 가족 합산’ 제도를 적용하기로 한 것에서 보듯 세계적 흐름에 맞춰 서울대도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토드 A. 헨리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역사학과 부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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