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팟캐스트 ‘사부작’을 만드는 연세대 동아리인 ‘프로젝트 지음’ 회원들. ‘사부작’은 지난해 8월부터 거의 매주 탈북자 한 명이 출연해 북한 사회와 남한에서의 생활에 대한 얘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고 있다. 팀장인 김영욱(맨 오른쪽)씨와 팀원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옥상 정원에서 동아리 로고를 만들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씨부터 시계방향으로 박희진, 이정아, 황승엽, 이산하씨. 휴대폰 속 얼굴은 이날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한 멤버 김서현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북한과 탈북민은 요즈음 젊은층에게는 인기 없는 주제다. 그러나 과장이나 가식 없는 ‘진짜 북한 이야기’를 1년 동안 꾸준히 방송해오고 있는 대학생들이 있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없애기 위한 ‘팟캐스트 사부작’을 만드는 연세대 인액터스의 ‘프로젝트 지음’ 팀이다. 김영욱 팀장 등 5명의 회원을 지난달 31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났다.
“얼마 전 국어 시간 수행평가 발표 때 뭔 얘기를 할까 하다가 제 고향(함경북도 길주) 얘기를 했어요. 구글에서 사진을 내려받아서 만든 피피티(PPT)를 보면서 친구들에게 여긴 장마당이고, 여긴 내가 다니던 학교라고 설명했어요. 이건 무엇이겠느냐고 사진 하나에 대해 물었는데 친구들이 수영장 아니냐고 했어요. 맞았어요. 북한에는 학교마다 수영장이 다 있거든요.”
“대~박.”
탈북 고등학생인 ‘길주 완자’(닉네임)가 최근 자신이 다니는 학교(서울 노원구 한 특성화고)에서 있었던 일을 조근조근 설명하자, 진행자 중 한 명인 ‘고양 쌀막걸리’(이정아·경제학과 2년)가 맛깔나게 추임새를 넣었다.
“대박이라기보다 그냥 구덩이 네모나게 파고 시멘트 발라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길주 완자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이유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6·25전쟁 때 북한군이 남침했다가 후퇴하는데 낙동강 다리가 폭격으로 붕괴되는 바람에 수영을 못하는 군인들이 많이 익사했다고 해요. 그 뒤에 북한 정권에서 수영교육을 활발하게 진행했고, 학교마다 수영장을 만들었대요. 그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자, 질문이 쏟아져서 종 칠 때까지 저 혼자 20분간 발표를 했어요. 끝나니까 평소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친구들까지 박수를 치면서 호응해줬어요. 그걸 보면서 제가 앞으로 할 일이 이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자극적이고 슬픈 얘기가 아니더라도 북한에 대해 따뜻하고 인간적인 얘기를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어요.”
길주 완자의 긴 얘기가 끝나자, 고양 쌀막걸리가 차분하게 받았다.
“저희 ‘사부작’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담백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서 청취자분들이 그런 생각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저도 ‘사부작’ 제작과 편집을 하면서 느끼는 게 북한을 뭉뚱그려서 북한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길주나 청진, 무산 이런 식으로 나눠서 한반도의 한 지역으로 인식하는 게 편견을 없애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날 공동 진행을 맡은 ‘부산 돼지국밥’(이산하·철학과 3년)이 맞장구를 쳤다.
고향 음식 이야기로 마음의 문 열어
팟캐스트 ‘사부작’(www.podbbang.com/ch/17702)이 지난 7월23일에 팟빵에 올린 길주 완자에 관한 두번째 얘기(‘북한에서 왔다고? 완자님의 남한 학교생활은?’)에 나오는 대목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나고 자란 길주 완자(‘완자’는 둥그렇게 뭉친 밥을 밀가루 입혀서 튀긴 북한의 길거리 음식)는 14살 때인 2013년 탈북한 뒤 이듬해 한국에 들어왔으며, 현재 고교에 재학 중이다.
‘사이좋게 부칸(북한) 친구와 함께하는 작은 밥상’에서 따온 ‘사부작’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행동한다’는 원래 단어의 뜻처럼 편안한 대화를 지향한다. 마치 친구끼리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듯 북한 사회와 탈북자에 관해 꾸밈없이 얘기한다. 초대 손님이나 진행자 모두 자신의 고향이나 연고지의 음식에서 따온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이를 위해서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 등의 문제로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요. 그래서 이름 대신에 닉네임을 사용하고, 얼굴 없이 음성만 담는 팟캐스트 방송 방식을 택했어요. 보통 초대 손님의 고향 음식 이야기를 먼저 하는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사부작’을 제작하는 ‘프로젝트 지음’의 팀장인 김영욱(광양 불고기·경영학과 4년)씨가 설명했다.
프로젝트 지음은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인액터스’(Enactus: ENtrepreneurs in ACTion to US)에 소속된 연세대 5개 프로젝트팀 중 하나다. 인액터스는 사회적 책임감을 갖춘 차세대 비즈니스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1975년 ‘미국 리더십연구소’(National Leadership Institute)가 설립했다. 공동체(Us)가 부딪치는 문제를 기업가정신(Entrepreneurs)의 실천(Action)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전세계 39개국 2천여 대학 5만7천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30개 대학에 인액터스 프로젝트팀이 있다. 프로젝트 지음은 남한에 살고 있는 3만여명의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활동을 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출범했다.
평범한 경영학도가 만든 팟캐스트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막연한 관심이 있었지만, 중고교 때는 완전히 잊고 있었죠. 그러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탈북자의 70%가 여성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면서 불현듯 이들의 존재를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탈북자들과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이들이 남한 사회에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지음을 시작했어요.”(‘대구 막창’ 박병선·경영학과 4년)
지음의 창립자인 박병선씨를 지난달 31일 오후 별도로 전화 인터뷰했다. 그는 2학기부터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가기 위해 현재는 지음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저는 평범한 대학생이에요. 하지만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탈북민이 차별과 편견을 받는 것을 알고도 지나치면 안 되잖아요. 사람들이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낯선 탓이 가장 크다는 판단에서 낯섦 대신에 친숙함이 자리 잡으면 편견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진솔하게 들려주는 방송을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이미 종편과 공중파 라디오에 탈북자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너무 자극적이거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자신들의 색깔에 따라 (탈북민을)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죠. 그걸 보면서 우리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팟캐스트 방송을 지향했어요.”(박병선)
지난 4월에 방송한 ‘청진 생선떡’ 편을 제작하기 위해 ‘사부작’ 팀원들과 초대 손님(맨 왼쪽 앉은 이·얼굴 공개 동의)이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팟캐스트 녹음을 하고 있다. 청진 생선떡님 뒤에서 오른쪽으로 박병선, 이정아, 김영욱, 박희진씨. 사부작 제공
팟캐스트 ‘사부작’ 제작진이 지난달 7일 그동안의 출연자들과 청취자들을 초청해 서울 홍익대 앞 한 카페에서 홈커밍데이를 열었다. 사부작 제공
프로젝트 지음은 5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8월 팟빵에 팟캐스트 ‘사부작’을 처음 선보였다. 첫번째 초대 손님은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에서 온 ‘온성 두부밥’이었으며, 진행은 ‘수원 왕갈비’(신준기·독문학과 4년)와 ‘천안 호두과자’(홍정연·경영학과 3년)가 맡았다. 지금도 이처럼 두명씩 조를 짜서 번갈아 방송을 진행하고, 나머지 팀원은 섭외와 녹음, 편집 등을 맡는다.
‘온성 두부밥’ 얘기를 시작으로 사부작은 거의 매주 한 명씩 탈북자 초대 손님을 불러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있다. 한 출연자의 얘기를 4번으로 나눠 올리는 ‘4부작’이다. 초대 손님이 나오면 첫날 방송에서는 고향의 음식 이야기로 말문을 트고, 이튿날은 주로 북한에서의 생활 이야기, 셋째날은 탈북 과정, 넷째날은 남한 정착기와 생활 얘기를 나누는 식이다. 지금까지 출연한 탈북자는 모두 41명이다.
이들은 초대 손님이 정해지면 사전 인터뷰로 대략적인 방송 흐름을 미리 구상하지만, 사전 원고를 준비하지는 않는다. 초대 손님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기 얘기를 풀어나가도록 하는 조용한 안내자 역할만 한다.
“올해 초부터 방송을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저도 탈북자들을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태도도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디나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출연자들을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고 포장하면 나중에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이 나타났을 때 ‘좋은 사람이라며?’라고 반박당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가치 중립적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해요.”(‘토론토 깍두기’ 박희진·국문학과 4년)
진행자의 요란한 말솜씨나 과장된 반응이 없어도 ‘사부작’에는 “눈이 ‘빠지고’ 배꼽이 ‘번쩍 뜨이는’ 눈물 콧물 쏙 빼는 이야기”(오프닝 멘트)가 가득하다. 지난 6월에 업로드된 ‘무산 까까오’ 편에서는 4부 마지막에 대학생 초대 손님이 “북한에서 온 우리는 남한의 생활이나 단어를 모르는 게 많으니 안 좋은 시선으로 우리를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남한 주민 여러분의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에게는 너무 소중하답니다. 힘내라, 잘 왔다는 말로 격려해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5월 말에 방송된 청진의 여군장교 출신 김정아(유일한 실명 출연자)씨도 북한에서 양부모와의 갈등 끝에 꽃제비(길거리를 떠도는 아이)로 지내다가 숨진 오빠 얘기 등을 하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지난 7월 첫주에 방송된 ‘구장 남새’ 편은 김명(탈북자 출신 오카리나 연주자로 실명 공개에 동의)씨의 탈북 과정과 남한 생활 정착 얘기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유튜브 진출 꿈꿔
“‘그런다고 세상은 바뀐다’는 인액터스의 홍보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프로젝트 지음에 올 초부터 동참했지만, 저 역시 탈북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어요. 그런데 팟캐스트를 만들면서 보니까 이들도 북한에서 왔다는 것 빼고는 우리랑 다 똑같더라고요.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조금씩 없어질 거라고 봐요.”(이산하)
“저는 고교 때 탈북민 자녀와 함께 여행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지만, 삼반수(재수로 들어간 대학에 적을 두고 다시 입시 공부를 반년 하는 것)를 하느라 저 자신이 피폐해져서 대학 1학년까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적으로 푼다는 학회 모토가 마음에 들어 참석했는데 많이 배우고 있어요. 특히 북한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나눠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어요.”(‘반포 수박’ 황승엽·경영학과 2년)
“방송을 듣고 탈북자를 만나더라도 자연스럽게 대할 것 같다는 반응을 주변에서 많이 해줘요. 제 친구 한 명은 탈북자 출신 남성이 사랑 고백을 하더라도 남자친구로 받아줄 것 같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장 보람돼요.”(이정아) “예전에 북한이나 통일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부작’을 해보니까 지금은 사람들이 아래에서부터 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특히 청년들이 변화의 흐름에 앞장서면 좋겠어요.”(김영욱)
‘사부작’ 팟캐스트는 얼마 전 연세대에서 열린 인액터스의 국가대표 프로젝트 선발전에서 24개 참가팀 가운데 준우승을 차지했다. 방송의 내용이나 사회적 의미 등을 동료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 “엠에스지(MSG) 없는 건강하고 담백한 북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진짜 북한 이야기”(오프닝 멘트)를 추구하는 프로젝트 지음은 이제 더 담대한 꿈을 꾸고 있다. 현재 페이스북(www.facebook.com/pg/sabujak2018)과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sabujak_2018)을 운영하고 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탈북민을 편견 없이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 ‘사부작’을 유튜브에도 올릴 계획이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