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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본 ‘제주 4·3’…“우리 마을과 닮아”

등록 2019-04-07 09:25수정 2019-04-07 09:29

한겨레21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제주·광주 방문 동행기…
4·3평화상 특별상 받고 희생자 표석 앞에서 눈물 흘려
1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의 두 응우옌티탄이 제주4·3평화상 특별상을 받았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1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의 두 응우옌티탄이 제주4·3평화상 특별상을 받았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베트남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제주와 광주가 존재했다. 1968년 2월 열흘 간격으로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파병 온 군인들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은 1948년의 제주이자 1980년의 광주였다. 만 7살 때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고 왼쪽 옆구리에 총을 맞고 살아남은 응우옌티탄(58·이하 퐁니 탄)은 <한겨레21>에 말했다. “제주4·3과 광주5·18이 민간인 학살의 비극이라는 점에서 베트남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주의 들판과 마을은 우리 마을과 닮았습니다. 그곳에서 쓰러져 있던 사람들도 닮았습니다. 모두 여자, 어린이, 노인이었습니다.”

퐁니 탄과 하미 마을의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여성 응우옌티탄(61·이하 하미 탄)은 1년 전 이맘때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학살을 증언했다. 3월31일 두 응우옌티탄은 더 많은 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아 한국에 왔다. 제주4·3과 광주5·18로 비슷한 아픔을 겪은 수많은 응우옌티탄을 만났다. 두 응우옌티탄은 온몸으로 겪고 목격한 그날의 학살 현장을 전했다.

두 응우옌티탄은 꽝남성, 꽝응아이성 내 17개 마을에 사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제1256호 표지이야기 ‘나는 진실을 원합니다’ 참조)를 들고 청와대로 향했다. <한겨레21>은 제주에서 광주를 거쳐 서울까지 3월31일부터 4월4일까지 닷새간 두 응우옌티탄과 동행했다. 그리고 두 응우옌티탄이 제주와 광주에서 수많은 응우옌티탄들과 나눈 말을 기사로 옮겼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와 응우옌하프엉 한베친선IT대학 교양학부 외국어학과 교수가 통역했다.

3월31일 붉은 동백꽃 배지를 달다

오전 11시50분께 제주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두 응우옌티탄이 들어왔다. 퐁니 탄은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하미 탄은 두 번째 방한이다. 퐁니 탄은 빈딘성 따이빈사(옛 이름 빈안사) 안빈 마을 피해자 응우옌떤런과 2015년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을 맞아 열린 ‘이재갑 사진전-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에 맞춰 전쟁 피해자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이어 하미 탄과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시민평화법정 원고로, 올해 제주 4·3평화재단이 주는 제3회 제주4·3평화상 특별상 수상자로 한국에 왔다.

두 응우옌티탄은 지난해 시민평화법정 원고로 나와 소송에서 이겼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든 민간 법정이어서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하지만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의 피해자가 한국까지 날아와 피해를 증언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을 비롯한 시민평화법정 재판부는 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 성격을 띠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사실 인정을 바탕으로 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필요하며, 이는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처”라며 유족의 청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후 퐁니 탄은 계속 기다렸다. “실제 법정에 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민평화법정에서 이겨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어떤 진상 조사나 법적 책임 문제도 논의되지 않았다. “속상했지만 계속 기다려보자는 심정”이었다. 퐁니 탄에게 제주4·3평화상 특별상 수상 소식은 “갑작스러운 기쁜 소식”이었다. 동시에 “시민평화법정과 관련된 후속 조처였다며 얼마나 기뻤을까 싶었다.”

하미 탄은 “그래서 청원서에 응우옌티탄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이제는 우리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퐁니 탄은 마음을 다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다. 하미 마을 사람들은 하미 탄에게 당부했다. “우리는 갈 수 없으니, 우리를 대표해 청원서를 전달해달라. 한국에서, 시민평화법정에서, 우리 마을이 겪은 참극을 증언한 하미 탄이 우리를 대표해달라.”

두 응우옌티탄은 3월31일 새벽 1시께 베트남 다낭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에서 제주국제공항으로 왔다. 12시간에 이르는 여정에 긴장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두 응우옌티탄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청소년 대학생 청년 네트워크 제주평화나비’ 5명이 입국장 앞까지 마중 나왔다. ‘여러분과 함께할 겁니다’라고 베트남어로 적힌 손팻말을 들고서. 이들은 지난 1월 두 응우옌티탄을 만났던 학생이다. 3개월 만이었다. 퐁니 탄은 “아이들”의 얼굴을 거듭 쓰다듬었다. “헤어지면서 언젠가 또 보자”고 했던 한국 친구들과의 재회였다.

오후 6시께 다음날 있을 제주4·3평화상 시상식을 앞두고 환영 만찬이 열렸다. 제주4·3평화상위원장을 맡은 강우일 주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일본의 미온적인 과거사 청산을 비판합니다. 일본의 책임자들이 과거 일본이 아시아 곳곳에서 저지른 폭력과 악행을 사실대로 기억하지 않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절 베트남에서 벌어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다면 같은 비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라며 수상 이유를 전했다.

이번 평화상 수상자는 소설 <순이 삼촌>을 쓴 현기영(78) 작가였다. 30여 년간 망각과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기에 북촌리 대학살을 다룬 <순이 삼촌>을 발표한 현기영 작가의 삶을 듣자 퐁니 탄은 “건강은 괜찮냐”며 걱정부터 했다. 현기영 작가는 제주4·3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1979년 군 정보기관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퐁니 탄도 “배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를 부여안고 엄마를 찾아헤매던 기억”이 긴 시간 자신을 질기게 괴롭혔다. 만찬에서 두 응우옌티탄은 도자기로 만든 제주4·3 70주년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제주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졌다는 의미를 담은 동백꽃 모양의 배지였다.

1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의 두 응우옌티탄이 제주4·3평화상 특별상을 받았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1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의 두 응우옌티탄이 제주4·3평화상 특별상을 받았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4월1일 시상식에서 입은 아오자이

이튿날인 4월1일 두 응우옌티탄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와 공증인 사무실을 찾았다. 퐁니 탄은 올해 하반기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공증인의 인증을 받았다. 임 변호사는 “국가가 이 문제를 부인하고 회피하는 상황에서 국가에 책임을 묻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가배상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 대한 개별적인 권리 구제여서 한계는 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만 9천 명에 이른다. 승소는 국가에서 책임을 인정했다는 상징적 의미도 클 거다”라고 했다.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없애고 긴 시간 진실을 부정하는 국가범죄의 특성상 구체적인 증거나 목격자를 찾기가 어렵다. 고령이 된 피해자들의 증언이 사실상 유일한 증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해병 소속 본(J. Vaughn) 상병이 찍은 사진들이 공개된 퐁니·퐁넛 마을은 비교적 많은 ‘증거’가 있는 ‘이례적’ 사건이었다.

“퐁니·퐁넛 마을같이 구체적인 증거가 하미 마을에는 없었다”고 한 하미 탄은 당장 소송을 낼 수 없었다. 다만 언젠가 대한민국에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미리 공증을 받았다. 하미 탄은 “슬프다”고 했다. 하미 마을의 피해자는 최근 10명이 더해져 모두 145명으로 늘었다. 그런데도 하미 탄은 미리 공증을 받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날 오후 두 응우옌티탄은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로 갈아입었다. 제주4·3평화상 시상식에서 격식을 갖추려고 일부러 챙겨온 옷이었다. 하미 탄은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상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명예회복입니다.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베트남의 많은 피해자와 함께 받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진실을 찾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더 많은 한국 친구들이 저희와 동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퐁니 탄이 이어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과거를 닫고 미래로 향해 가자는 입장입니다. 저와 같은 생존자의 얘기는 과거로 닫을 수 있어도 이 학살로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과 상처는 결코 닫을 수 없을 겁니다. 저희는 이번에 피해자들의 청원서를 갖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청와대에 진상 조사와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청원서를 전달합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 세대가 과거를 극복하고 더 좋은 사회에서 더불어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4월2일 네가 나고, 내가 너다

셋쨋날인 4월2일 오전, 하미 탄은 구수정 이사의 품에서 흐느꼈다. 4·3평화공원에 만들어진 행방불명희생자 표석 앞이었다. 3913개 표석은 주검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의 영령이라도 기리기 위한 묘비였다. 하미 탄은 만 10살 때 한국군에게 공격당해 왼쪽 귀와 다리, 허리를 다치고 어머니, 남동생, 작은어머니, 사촌동생 둘을 한꺼번에 잃었다. 하미 탄도 “어머니와 남동생의 주검을 끝내 찾지 못했다”며 “주검도 없는 무덤들은 어쩌냐”고 제주와 하미 마을의 똑 닮은 슬픔 앞에서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이날 행방불명희생자 묘비 옆에는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동백나무에는 두 응우옌티탄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명패가 걸렸다. 두 응우옌티탄은 흙 한 삽을 떠서 동백나무 밑동에 흩뿌렸다. 하미 탄은 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놓인 방명록에 “4·3 제주에서 쓰러져간 영령들에 대한 슬픔을 함께 나눕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4·3 희생자들이 우리 같은 민간인이어서, 억울한 죽음이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영령들의 영원한 인식을 기원합니다”라고 남겼다.

2일 두 응우옌티탄은 4·3평화공원에서 억울하게 스러진 3만여 명의 영령을 추모했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2일 두 응우옌티탄은 4·3평화공원에서 억울하게 스러진 3만여 명의 영령을 추모했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2일 두 응우옌티탄은 4·3평화공원에서 제주4·3사건 행방불명희생자 묘비 옆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2일 두 응우옌티탄은 4·3평화공원에서 제주4·3사건 행방불명희생자 묘비 옆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조윤영 <한겨레21>기자

4월3일 베트남 앞을 막은 참전 군인들

제주의 4월3일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지방 공휴일이었다. 두 응우옌티탄은 어두운 색깔의 정장을 갖춰입고 나왔다.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가는 길이었다. 추념식을 지켜보던 하미 탄은 거듭 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추모하러 왔는지, 추념식에 참석한 한국의 국무총리는 희생자들에게 뭐라고 사과했는지 물었다. 하미 탄은 추념식 막바지에 단상에 올라온 한 손녀가 왜 흐느끼는지 물었다. 제주4·3 희생자 김영옥 할머니의 정향신 손녀는 71년 전 할머니가 겪은 피해를 손녀의 입으로 전했다.

“할머니 머리에는 주먹만 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10살 때까지 신발 한번 못 신은 고아였습니다. 할머니가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 ‘할머니는 바다를 좋아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방폭포에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이 던져져 없어졌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생선도 안 드십니다. 가족이 물고기에 다 뜯겼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배를 주리던 어린 시절에도 멸치 한 조각도 드시지 않았답니다.”

제주에서 피어난 동백꽃 두 송이는 곧장 광주로 향했다. 오후 3시 ‘고경태 기록전, 한마을 이야기-퐁니·퐁넛’ 개막 행사가 열리는 광주 서구의 5·18기념문화센터로 가려던 차였다. 구수정 이사가 다급해졌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가 행사장에 들이닥쳤다는 것이었다. 제주에서도 조짐은 있었다.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두 응우옌티탄의 방한 소식을 듣고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단체 쪽에서 항의하듯 전화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줘야 한다’며 어렵게 설득했다”고 했다.

실제 행사장에 가보니 30여 명이 모여 있었다. 확성기를 든 한 사람이 소리쳤다. 함께 있던 사람들도 말을 보탰다. “사진들을 빨리 내려라.”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전쟁터였다.” “피와 땀으로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들에게 (‘학살 좌표’라고 적힌 설명문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나도 베트남에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 “베트남전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록전이 진짜인 줄 안다.”

오후 3시가 되기 전, 참전 군인들은 빠져나갔다. 두 응우옌티탄은 5·18기념문화센터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타고 와 행사장으로 곧장 향했다. 퐁니 탄은 2015년에도 참전 군인들을 마주쳤다. ‘이재갑 사진전’ 개막 행사장 건너편에도 참전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조계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행사는 전날 취소됐다. 퐁니 탄은 그때를 기억했다.

“한국에 처음 오기 전 ‘참전 군인들을 마주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리 어떤 얘기를 나눌지도 고민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나한테 사과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왔더니 그들은 군복까지 입고 제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8살이면 학살에 대해 뭘 아느냐’ ‘거짓말’이라고 했답니다. 그들의 무서운 표정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제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인데도 왜 거짓말이라고 했을까요. 마을에는 여성, 어린이, 노인뿐이었는데 왜 우리를 죽였을까요.”

퐁니 탄의 소원 가운데 하나는 “퐁니·퐁넛 마을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퐁니 탄은 하미 탄에게 마을 사람들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한명 한명의 사연을 전했다. 사진 속 레딘’?은 퐁니 탄에게 전달한 청원서에서 호소했다. “나는 한국 정부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의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전쟁범죄를 인정하길 바랍니다.” 사진들 사이에는 윗도리를 들쳐 배에 남은 흉터를 보여주던 퐁니 탄, 자신의 사진들도 걸려 있었다.

4일 두 응우옌티탄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베트남 17개 마을에 사는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박승화 <한겨레21>기자
4일 두 응우옌티탄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베트남 17개 마을에 사는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박승화 <한겨레21>기자

4월4일 청와대에 낸 103개 청원서

서울로 가는 길. 17개 마을의 103명의 목소리, 그리고 미처 담기지 못한 수많은 목소리에 응답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서를 내러 가는 길이었다. 아침 내내 “103명의 청원서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던 퐁니 탄은 퐁니·퐁넛 학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이자 목격자로 이날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다시 섰다. “저희가 듣고 싶은 말은 ‘사실 인정’입니다. 저는 2015년에도, 2018년에도, 지금도 온몸의 진실을 짜내 증언합니다. 한국 정부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사과해주길 바랍니다.”

하미 탄은 청와대에 103명의 청원서를 제출한 뒤 마을로 돌아가면 위령비를 먼저 찾을 계획이다. “135명의 영령 앞에 제주4·3평화상 특별상 상패를 바치고 향을 피울 생각”이다. 두 번째 한국 방문을 앞두고도 찾은 위령비였다. 그때 하미 탄은 빌었다. “한국에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절 지켜주세요. 우리가 아는 마을의 진실을 밝히고 오겠습니다.” 올해 하미 탄은 61살이다. 마을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60살을 넘긴 사람이 많다. 하미 탄은 재촉했다. “우리의 시간도 많지 않다. 우리의 절박한 요구에 한국 정부가 빠르게 답할수록 좋다.”

두 응우옌티탄은 4일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베트남 17개 마을에 사는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박승화 <한겨레21>기자
두 응우옌티탄은 4일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베트남 17개 마을에 사는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박승화 <한겨레21>기자

제주·광주=글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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