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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문 대통령, ‘국민연금 혼선’ 복지부 질타하며 직접 진화

등록 2018-08-14 04:59수정 2018-08-14 16:02

문재인 대통령 “국민 동의없는 일방 개편 없다”
“노후소득 보장 확대가 기본원칙”
보건복지부 질책하며 직접 여론 잠재우기 나서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3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3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13일 오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머리발언에서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 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개편은 결코 없다”고 못박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연금 제도 개편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 셈이지만, 이날 발언을 통해 당·정·청 사이의 균열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두 차례나 ‘노후소득 보장 확대’를 강조했다. ‘국민연금 소진 시기 3년 앞당겨진다’ ‘국민연금 받는 나이 65살에서 68살로 높인다’ 등 최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국민연금 정책자문안 세부내용에 쏠린 시선을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기본 원칙 쪽으로 다시 끌어당겨오겠다는 속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정부의 국정과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 동안의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은 현재 45%(40년 가입 기준)로,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50%까지 올려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심각해질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이를 위해선 국민연금 보험료와 연금 지급 시기 등 전반적인 연금 제도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 첫발 떼기 전부터
보험료·수급시기 등 싸고 여론 들끓어
복지부 “정부안 아니다” 진화 나섰지만
국민들 분노 불끄기엔 역부족
야당 ‘정치 쟁점화’도 논란 부추겨
전문가 “정부, 사회적 논의 나서야”

그런데 국민연금 개혁의 첫발을 떼는 논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혼선이 빚어졌다.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실시해 발표한다. 연금 전문가와 이해당사자 대표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국민연금 제도 발전 방안도 논의한다. 오는 17일 공청회를 통해 4차 재정계산위원회 정책자문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정부 정책 방향대로라면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카드를 먼저 내민 뒤에,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가입자가 매달 내는 보험료율을 높여 ‘더 내고 더 받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 지난 10일부터 일부 언론을 통해 정책자문안 세부내용이 하나둘 보도되기 시작했다. 정책을 패키지가 아니라 조각조각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살에서 68살로 높인다고 하자 ‘죽을 때까지 국민연금만 내라는 말이냐’며 분노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사흘 새 1천건이 넘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이에 복지부는 12일 박능후 장관 이름으로 입장문을 내어 “정책자문안일 뿐 정부안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연금 논란을 두고 복지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자문안이 언론 보도로 공개되고, 공개된 뒤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적극 대응하지 않아 되레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최근 언론 보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복지부를 향해서도 “정부 각 부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적극 소통하면서 국민이 알아야 할 국정 정보를 정확하게 홍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자세로 업무에 임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추미애 대표도 정책자문안이 사전유출되어 논란이 커졌다며 복지부를 질책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과연 청와대와 여당, 정부는 국민연금 논란이 이처럼 커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국민연금이 얼마나 파괴력 있는 정치적 이슈인지는 2003~2007년 노무현 정부 때의 학습효과를 통해 확인된 바다.

2006년 4월 장봉군 화백이 그린 한겨레그림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연금개혁을 빗댔다. .
2006년 4월 장봉군 화백이 그린 한겨레그림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연금개혁을 빗댔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뒤 반년 만에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2003년 1차 재정계산 결과, 당시의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60%를 유지할 경우 2047년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는 추계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2008년부터 50%로 인하하되 보험료율을 2030년 15.9%로 조정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비판 여론 등으로 인해 국회에서 논의가 3년여 공전됐다. 2007년 4월, 여야는 보험료율을 9%로 유지하면서 소득대체율을 2028년 40%까지 낮추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때 개정된 국민연금법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그 뒤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나 국회는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딱히 풀어내지 못했다.

17일로 예정된 공청회에서 논의될 사안도 일찌감치 논란이 예고되어 있었다. 특히 이번 4차 재정계산 결과 2060년으로 예정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기가 3년가량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2028년까지 40%로 축소되는 소득대체율 조정을 놓고서 가장 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13일 “마치 정부가 (노후소득 보장에 대한) 대책 없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높인다거나,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춘다는 등의 방침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알려진 연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만 했을 뿐, ‘노후소득 보장 확대’에 필요한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을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13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공석이고, 연 6% 넘던 기금운용수익률도 1% 이하로 떨어지는 등 문재인 정부의 무능함이 드러났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17일 공청회에서 제안된 정책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안이 결정된 뒤에 10월 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최종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오랜 진통이 예상된다. 여야 간 정치적 입장 차이가 극명한데다, 국민 여론에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최종안이 결정될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17일 공개될 정책자문안에는 사회적 논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은 담겨 있지 않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의 역할 조정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후소득보장위원회’(가칭)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담겨 있긴 하지만, 이는 최저임금위원회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논의 또는 합의기구는 아니다. 복지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사회보장위원회 또는 국회에서 별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연금 관련 논의를 이어나가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안을 복수안으로 국회에 전달하거나, 정부안을 내놓지 않고 국회에서 입법 발의안을 내는 등의 우회로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책자문에 간여한 한 전문가는 “복잡하고 민감한 국민연금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면 정부가 ‘정부안 아니다’ ‘결정된 게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박현정 성연철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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