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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동성애 군인의 항변 “난 범죄자가 아니다”

등록 2017-05-22 19:32수정 2017-05-25 15:04

[밥&법] 군 동성애자 색출 수사 논란

동성애자 군인들이 집중 수사를 받고 있다. 군은 동성애자 색출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수사 내용을 살펴보면 군은 동성애자 색출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4일 한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예정돼 있다.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만으로 형사처벌하게 돼 있는 군형법 92조의6은 위헌 심판대에 올라 있지만 일선에서 재판은 계속된다. 수사를 받고 있는 동성애자 군인을 만났다.

육군 중앙수사단(이하 중수단)의 동성애자 군인 수사가 논란을 빚고 있다. 19대 대통령선거 티브이토론 때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육군의 이번 수사는 항문성교를 금지하는 군형법 92조의6에 기반하고 있지만 단순 성교행위를 넘어 동성애자 군인 자체를 색출해 벌주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인천지방법원의 이연진 판사는 지난 2월 군형법 92조의6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다시 한번 군형법 92조의6이 우리 헌법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게 됐다. 지난 13일 <한겨레>는 중수단의 수사를 받고 있는 동성애자 군인 김대현(가명·20대) 중위를 인터뷰했다. 언론 취재에 처음으로 응한 그는 “군이 나를 성범죄자라고 한다”며 울먹였다.

군인권센터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연 촛불집회에 참석한 성소수자 등 시민들이 성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에 항의하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군인권센터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연 촛불집회에 참석한 성소수자 등 시민들이 성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에 항의하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랑했는데, 성범죄자라니

김 중위는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다 알고 왔어요. 본인 게이(동성애자) 맞지요?” 자신을 갑자기 찾아온 군 수사관의 조롱하는 듯한 말투는 그대로 칼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수사관의 모욕적인 질문은 김 중위의 자존심을 해체했다. “○○○과 항문성교 하셨죠? 그때 남자 역할 했어요, 여자 역할 했어요?” 김 중위는 공개된 장소에서 발가벗겨진 채 희롱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달 13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임태훈 소장)는 “육군참모총장 지시로 중수단이 2~3월 육군에서 복무 중인 동성애자 군인 40~50명을 수사하고 있다. 동성애자 군인 색출용 수사”라고 밝혔다. 그러자 육군본부는 “‘육군참모총장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및 처벌 지시’는 사실이 아니다. 현역 군인이 에스엔에스(SNS)에 동성 군인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인지하고 법적 절차를 준수해 수사 중”이라고 반박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문제의 동영상과 관련돼 입건된 군인은 두명에 불과했다. 군 검찰의 기소 대상에 올라 있는 수십명의 동성애자 군인들은 문제의 동영상과 관련이 없었다. 중수단은 부대 밖에서 합의에 의해 이뤄진 과거의 성관계까지 문제 삼아 군인들을 형사입건했다. 김 중위는 “(수사관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동성애 수사 때문에 왔다’고 했다. 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게이인 거 다 알고 왔다’고 했다. 얼굴이 붉어졌고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몇달 전 일을 이야기하던 김 중위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았다.

그가 직업군인의 길을 걷게 된 건 2010년 벌어진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때문이다. 김 중위는 “집안에 애국심 하나로 평생을 사는 직업군인 어른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분을 닮고 싶어 군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투철한 애국심으로 가득했던 김 중위의 앞날은 올해 들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2년 전 제가 잠깐 만났다 헤어진 군인이 있었어요. 그가 먼저 중수단의 수사를 받았나 봐요. 저와 사귄 적 있다고 밝혔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은 같은 부대 사람도 아니고 외부에서 우연한 경로로 만나 잠깐 사귀었던 것뿐이에요. 근데 그게 추행죄라는 거예요. 제가 성범죄자라니….”

수사관은 김 중위의 진술서에 ‘추행죄’라고 쓰게 했다. 김 중위는 “동성 군인과 사귄 것이지, 군인을 추행한 게 아니다”라고 맞섰지만 수사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자존감을 고문하는 질문들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쏟아졌다. “항문성교는 몇번 했나요? 구강성교는 했나요? 사정은 어디에 했지요? 하면서 좋았어요? 난 여자랑만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마침 면회실을 들락거리던 일반 사병들이 이 질문을 들었다.

수사는 군형법에 기반한 것이다. 군형법 92조의6은 “(군인·군무원·사관생도 등을 대상으로)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형법은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하지 않고 항문성교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까지 항문성교를 한 이성애자가 입건된 적은 없다. 이 조항이 ‘동성애자 처벌법’이라 비난받는 이유다.

수사관은 압수수색 영장 없이 김 중위의 휴대폰을 가져가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했다고 한다. 수사관은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짧은 머리의 남성 사진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군인 여부를 확인했다. 김 중위는 ‘나에 대한 수사도 이런 식으로 시작된 것이구나’ 직감했다. 김 중위는 국방부가 발표한 ‘성관계 동영상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육군은 ‘동성애자 색출’ 중

육군은 ‘수사’라는 수단을 활용해 대대적으로 ‘동성애자 군인 색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중수단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군인권센터에 제보한 십수명의 군인들은 김 중위와 마찬가지로 국방부가 애초 발표한 ‘성관계 동영상 사건’과는 자신들이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순전히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들은 군 수사관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동성애자임을 확인한 뒤 군인과의 항문성교 여부를 추궁했고 자신들을 입건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징역 2년형을 구형받고 24일 선고를 앞두고 있는 ㄱ대위 수사자료를 보면, 군은 ㄱ대위를 과거 사적 공간에서 동성의 연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기소했다.

ㄱ대위의 변호를 맡은 강석민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입건된 동성애자 군인 30~40명 중 실제 군이 발표한 성관계 동영상 사건과 연루된 이는 두명뿐이다. 동성애자 색출 수사가 아니라는 군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이번 수사는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의 지시와 관리하에 진행된 것으로 의심을 살 만하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군형법상 추행죄 처리 기준 검토’라는 문건이 그 근거다. 육군 법무실 고등검찰부가 지난 3월23일 일선에 발송한 문서다. 문서에는 ‘군검찰 지침: 성행(위) 또는 경위 등 죄질 불량의 경우 구속 고려’, ‘통일된 사건처리가 되도록 조치’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중수단은 동성애자를 색출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에 잠입해 유인수사를 하기도 했다. 군인권센터가 확보한 자료를 보면, 중수단 관계자는 지난 2월15일 한 동성애자 군인에게 “오늘 뭐 하세요? 포병이세요? 군인이랑은 ㅂㄱ(번개 데이트) 안 하나요?” 등으로 말을 걸어 얼굴사진을 받아낸 뒤 이를 활용해 해당 군인을 입건했다.

한 수사관과 아무개 중사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수사관은 중사에게 “너 인권위에 연락해 법률자문 구한 적 있니? 확인해보면 나오겠지. 믿어도 되겠지? 자꾸 못 믿게 되잖아”라고 추궁하며 입단속을 시켰고, ㄱ대위를 수사한 수사관은 그가 변호사를 선임하려 하자 “부대에 성적 지향이 알려질 수 있다”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과거 군형법 92조의5(현 92조의6)를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군형법 92조의6의 위헌법률심판을 다시 제청한 인천지법 이연진 판사는 “군형법이 항문성교 및 그밖의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합의에 의한 군인 간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유엔 인권특별조사관의 방문조사를 추진하고 유엔 인권이사회에도 참석해 이번 사건을 국제사회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김 중위는 “성소수자도 전쟁이 나면 다른 군인처럼 나가서 싸워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데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구분이 없다. 나는 군인이고 싶고, 성정체성을 억지로 바꾸고 싶지 않다.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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