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선택’ 앞 걸어봤는데…“상담중” 자동안내만
“잠시 후 다시 걸어주세요” 뚝 끊겨
밤·새벽 수차례 해봐도 연결 안돼
상담원·예산 부족 탓 제구실 못해
“잠시 후 다시 걸어주세요” 뚝 끊겨
밤·새벽 수차례 해봐도 연결 안돼
상담원·예산 부족 탓 제구실 못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믿음직한 친구처럼 ‘생명의 전화’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30초 뒤) 모든 전화가 상담중입니다. 상담이 끝나는 대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뒤 자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이준성(가명·53)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9월20일 자정께 술을 마신 뒤 감정을 추스르려고 생명의전화(1588-9191) 버튼을 눌렀지만 ‘상담중’이라는 기계음만 들어야 했다. 30초마다 같은 문장이 여섯 차례 반복되더니 “힘들게 전화를 하셨는데 먼저 걸려온 상담이 길어져 바로 연결이 안 되어 죄송합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안내음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결국 이씨는 새벽 3시까지 한 통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들 살기가 힘들어 상담전화가 새벽에 몰리는 것인지, 아니면 상담원이 적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 심각한 사람이 전화를 했었다면 문제가 될 거 같다”고 했다.
자살 예방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상담전화 상당수가 상담원 부족 등을 이유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실제 <한겨레> 기자들이 지난달 21일(새벽 1시30분~아침 7시30분)과 30일(오후 5시30분~이튿날 아침 7시20분) 한두 시간 간격으로 6~8차례 생명의전화에 상담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상담원과 연결되지 않았다.
다른 상담전화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회에서 운영하는 ‘생명사다리 상담센터’(080-788-0479)는 퇴근시간인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 사이에 걸려온 상담전화는 자동으로 생명의전화로 돌아가게 해놓았다. 이 시간 일곱 번의 상담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 역시 일곱 번 시도 중 두 차례만 상담원과 통화할 수 있었다.
지난해 스스로 세상과 이별을 선택한 사람은 1만3836명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통화 연결이 어려운 이유는 상담원이 부족해서다. 서울생명의전화에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전화상담에 ‘성공’한 건수는 한 해 2만1000~2만2000건 정도다. 자살충동·가족관계·정신건강 등의 문제로 하루 평균 60~65건을 상담한다. 상담원 4명씩 하루 5교대로 근무한다. 한 번에 최대 4명씩 상담이 가능한 셈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 상담전화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상반기 이곳에 소속된 전문 상담인력 460명이 모두 8만561건을 상담했다.
박수안 서울생명의전화 사회복지사는 1일 “전국 19개 지부로 구성된 한국생명의전화의 경우 지부 사정이 서울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동시에 근무하는 상담원이 70~80명인데, 인구가 많은 서울이나 경기 지역에서 연결이 되지 않으면 다른 지역으로 자동 연결하지만 그래도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담원과 회선을 늘리려고 해도 운영비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상담받지 못한 채 끊어지는 전화가 얼마나 되는지는 집계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상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은 “정신건강 상담전화의 경우 낮에는 209개 기초단위에서 상담 연결이 되지만 야간에는 15개 광역단위로만 연결되기 때문에 야간상담이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인력과 예산의 문제”라고 했다.
최우리 권승록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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