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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약초’ 안전하고 간편하게 마시도록…농민들의 도전

등록 2015-09-29 20:28수정 2015-11-04 10:50

구기자의 노지 무농약 재배에 처음 성공한 이풀약초협동조합 명영석(왼쪽) 조합원이 지난 9일 충남 청양군 운곡면의 구기자 농장에서 노봉래 이사장과 함께 약초를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2그램의 휴식, 2그램의 배려’와 ‘리프’(LiiF) 제품을 들고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은 지난해 4월 유한킴벌리의 ‘시니어 비즈니스 지원사업’에 선정돼 개발비를 지원받았다.
구기자의 노지 무농약 재배에 처음 성공한 이풀약초협동조합 명영석(왼쪽) 조합원이 지난 9일 충남 청양군 운곡면의 구기자 농장에서 노봉래 이사장과 함께 약초를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2그램의 휴식, 2그램의 배려’와 ‘리프’(LiiF) 제품을 들고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은 지난해 4월 유한킴벌리의 ‘시니어 비즈니스 지원사업’에 선정돼 개발비를 지원받았다.
시니어 비즈 지원사업 선정 ‘이풀’

“어이구, 말도 마. 올해는 가물고 더워서 예년 절반도 안 돼. 덕분에 한여름에 푹 쉬었어. 하루 수십만원 품값이 안 들어가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지난 9일 충남 청양군 운곡면의 한 구기자 농장. 이풀약초협동조합 노봉래(53) 이사장이 작황을 묻자 명영석(60) 조합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밭에는 꽃이 조금씩 피고 있었다.

“구기자는 한해에 꽃이 두번 펴서 수확도 두번 할 수 있어. 6월에 꽃이 펴서 7, 8월에 한번 수확하고, 8월 중순부터 꽃이 펴서 10월부터 연말까지 또 한번 수확하지. 그런 작물은 구기자밖에 없어. 그런데 여름 농사는 망쳤고 가을을 기대하고 있는데 모르지. 농사는 가늠을 못하니까.”(명 조합원)

가뭄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새떼가 난리다. “참새 100, 200마리씩 와서 열매를 빨고 가고, 까치·비둘기·꿩·물오리가 와서 다 따먹어. 미처 못 따고 남기면 어떻게 아는지 거기만 쓸어가. 올해 허수아비를 24개나 심었는데 허수아비는 허수아비일 뿐이더라고.”

구기자가 청양의 특산물이지만 작황에 따라 가격변동이 심해 포기하는 농가도 많다. 그러나 명 조합원은 가격과 상관없이 30년 넘게 끌고 왔다.

중국산 시장 점령, 혼입문제도 심각
무농약·GAP재배 국산 인정 못받는
약초시장 혁신 위해 협동조합 설립

유한킴벌리의 시니어 지원사업 선정
개발비 지원받아 간편한 티백 출시
우엉차처럼 로스팅한 리프까지 개발

각종 인허가, 소량생산 난관 많지만
조합원들 전폭적 지지로 헤쳐나가

“구기자 농사가 쉽지 않아. 올라오는 순을 매일 솎아줘야 해. 게다가 키가 작아서 기계를 쓸 수 없어. 사람이 쪼그려 앉아 열매를 일일이 따야 해. 노인 일자리 창출은 청양에서 내가 제일 많이 할걸?”(명 조합원)

그는 8년 전 구기자의 노지 무농약 재배에 처음 성공했다. 그 전까지는 탄저병 때문에 하우스에서만 무농약 재배만 가능했다. 하우스는 대신 진딧물이 많아 무농약 재배를 꺼리는 농민들이 많다. 그는 농업기술원에서 탄저병에 강한 품종 ‘청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노지 무농약 재배에 도전했다. 돌연변이까지 각오하고 나선 일인데 아직 별문제는 없다.

“구기자는 농약을 많이 친다는 인식을 바꿔보고 싶었어. 그리고 파는 나부터 떳떳하잖아.”(명 조합원)

노 이사장과는 4년 전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사업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 한국생약협회 사무총장이었던 노 이사장은 인증사업을 맡아 전국의 약초 농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청양의 구기자연구회 회장이었던 명 조합원이 안내를 맡았다.

“농민을 만나 안전한 약초를 재배해야 한다고 설득하는데, 정작 시장에서는 안전한 재배법이 인정을 못 받는 겁니다. 한국 약초시장은 한의원, 한약방에 공급하는 중간 도매상 중심이라 중국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게다가 원산지와 유통경로가 투명하지 못해 국산과 수입산이 섞이는 혼입 문제도 심각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인증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약초시장을 혁신할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노 이사장)

그러나 한국생약협회에는 생산자, 유통업자 등 다양한 회원이 있어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려웠다. 비영리단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농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약초도 원물 그대로 파는 게 아니라 2차 가공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명 조합원은 흔쾌히 참여했다. 생산자 조합원 10명 등 15명의 조합원이 5000만원을 출자해 2년 전 이풀약초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이풀이 처음 내놓은 상품은 약초를 소량 포장해 가정에서 달여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귀, 구기자, 맥문동 등 16가지 제품을 백화점 등에 납품하고 있다.

“약초는 여러 작물을 묶어 판매해야 파괴력이 생긴다고 판단했습니다. 첫 상품은 조합원의 다양한 작물에다 포장지만 씌우는 일이라 쉬운 편이었어요. 그런데 소비자들이 집에서 달여 먹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좀더 간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티백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어요.”(노 이사장)

마침 지난해 4월 유한킴벌리의 ‘시니어 비즈니스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유한킴벌리는 2012년부터 시니어가 사용할 용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소기업에 개발비를 최대 7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개발비를 지원받은 이풀은 두번째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가공제품이라 각종 인허가사항이 복잡했다. 포장의 표기사항도 식품위생법과 약사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몇번이나 수정해야 했다. 제품명도 처음에는 ‘배려 한첩, 휴식 한첩’으로 지었으나 과대광고라는 지적에 ‘2그램의 휴식, 2그램의 배려’로 바꿔 출시했다.

“그런데 티백 제품에 대해 저렴하다는 인상을 갖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마침 우엉차가 유행하면서 약초도 로스팅(볶는 작업)해서 차로 마실 수 있는 제품인 ‘리프’(LiiF)를 개발하기로 했어요. 한번 고생을 했으니 이번엔 쉬울 줄 알았는데 난관이 더 많았어요. 용기를 위탁 생산해야 했는데 물량이 소량이다 보니 선택의 여지도 많지 않고 비용도 장난 아니더라고요. 경쟁 제품보다 약간이라도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해보니 원가에도 못 미치더군요.”(노 이사장)

그나마 조합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힘이 된다. 명 조합원에게 새로운 제품을 보여주자 “좋네. 이사장이 알아서 잘 만들었겠지”라는 평이 끝이다. 처음에는 생각하는 깊이와 관여의 정도가 서로 달라 힘들기도 했지만 분기마다 지역에서 모임을 가지며 이야기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자신이 키운 작물이 상품으로 가시화되자 아이디어도 직접 내놓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일로 바빠서 총회에는 한번도 참석을 못했어. 그런데 얼마 전 부여에서 모임을 하고 다들 우리 집으로 오셨어. 다른 조합원들? 내 마음하고 똑같겠지. 그런 믿음 없으면 협동조합에 들어갈 이유가 없잖아.”(명 조합원)

청양/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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