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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붓질 12만번, 3000송이 ‘꽃밥’에 담은 사부모곡

등록 2015-09-15 20:46수정 2015-11-04 11:48

1.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탑골미술관에서 이영철 화가 초대전 ‘어른을 위한 동화’가 개막했다. 2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이영철 화가가 서울노인복지센터의 기관지에 표지화를 여럿 기부했던 인연으로 열렸다. 화가는 120호 대형 작품 한 점도 서울노인복지센터에 기부했다.
1.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탑골미술관에서 이영철 화가 초대전 ‘어른을 위한 동화’가 개막했다. 2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이영철 화가가 서울노인복지센터의 기관지에 표지화를 여럿 기부했던 인연으로 열렸다. 화가는 120호 대형 작품 한 점도 서울노인복지센터에 기부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전 이영철 화가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화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님 연배의 관객들이 박수로 그의 슬픔을 달랬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1층에 있는 탑골미술관에서 이영철(55) 화가 초대전 ‘어른을 위한 동화’가 개막했다. 이번 전시회는 화가가 서울노인복지센터의 기관지에 표지화를 여럿 기부했던 인연으로 열렸다. 화가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매일 어르신 2000여명이 미술·음악·영화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기신다고 들었다. 기관지에서 제 그림을 본 어르신들이 진짜 그림을 보고 싶어한다는 말씀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또 120호 대형 작품 한 점도 서울노인복지센터에 기부했다. 개관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화가의 사인회가 이어졌다. 한 어르신이 부탁하자 화가는 전시회 포스터 뒷면에 서명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그렸다. 행사가 너무 길어질까 우려한 주최 측이 만류하지 않았다면 어떤 부탁도 다 들어줄 기세였다.

예술가의 길 놓고 아버지와 대립
화해 못한 채 30년 전 사고로 이별
늘 응원해준 어머니도 3년 전 별세

슬픔 잊으려 자학하듯 들꽃 그려
2000송이 넘어가자 겨우 평화 찾아
마음의 빈 그릇에 가득 담아 참회

블로그의 그림 보고 혜민스님 연락
<멈추면 비로소…>개정판에 실린 뒤
‘잔업화가’서 유명화가로 극적 반전
“새차·집보다 나눌 수 있어 행복”

화가는 2012년 혜민 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개정판에 그림을 그려 유명해졌다. 그전까지는 스스로 ‘전업화가 아닌 잔업화가’라 부를 정도로 혹독한 무명시절을 보냈다. 경북 김천시 봉산면 신암1리 첩첩산중 오지마을에서 태어난 화가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병이 있었다. 무언가 떠올리면 그 모습이 선명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뱀을 생각하면 눈앞에서 뱀이 꿈틀댔다. 모내기하려고 발을 논에 집어넣는 순간, 거머리들이 발을 향해 달려드는 게 보였다. 아버지의 재촉에도 못 담근다 악을 써 대신 못줄을 잡았다. 늘 겁이 많고 쇠약해 어린 마음에도 앞날이 막막했다. 그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형이 교과서를 가져왔다. 투명한 수채화로 그려진 삽화가 그를 매혹했다. 고등학교까지 내내 미술부 활동을 하며 화가의 꿈을 그려나갔다. 박봉의 철도공무원으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고생길이 훤한 예술가의 길을 완강히 반대했다. 어머니는 나물을 뜯어 팔아 아버지 몰래 화첩을 사다 주며 둘째 아들을 응원했다.

2. 이영철 화가가 자신의 작품 <사랑 꽃밥>에 담긴 의미를 서울노인복지센터 회원에게 설명하고 있다. 3년 전 어머니를 보낸 슬픔과 30년 쌓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꽃밥에 담았다.
2. 이영철 화가가 자신의 작품 <사랑 꽃밥>에 담긴 의미를 서울노인복지센터 회원에게 설명하고 있다. 3년 전 어머니를 보낸 슬픔과 30년 쌓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꽃밥에 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화가가 되려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다. 술을 한잔 걸친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집을 뛰쳐나왔다. 한달을 친구 집에서 지낸 뒤 집으로 돌아가면서 설움과 분노, 자괴감이 되살아났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문을 열자 저녁 식사를 하던 가족들이 놀라 쳐다봤다. 숨 막히는 긴장감을 깬 건 어머니였다. 재빨리 아랫목 이불을 들춰 밥공기 하나를 밥상에 얹었다.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며 매일 묻어두었던 것이다. 화가는 밥을 꾸역꾸역 퍼먹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실감했다. 언젠가 채워 갚아야 할 빈 그릇이 마음속에 생겼다.

그러나 무서웠지만 좋아했던 아버지와의 균열은 쉽게 메울 수 없었다. 화해는 자신의 자리를 찾은 뒤에야 가능하다고 믿었다. 만학으로 미술대학 시험을 치르던 날 아버지가 급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죄송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후회는 너무나 깊었다. 불편하게 흘려보낸 아쉬움과 갈등의 파편이 한꺼번에 가슴에 박히는 고통은 끔찍했다.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려도 깊이 박힌 아픔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2년 봄날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발인하는 날이 하필이면 어버이날이었다.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을 파묘해 어머니와 함께 모셨다. 살아서 화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그제야 안을 수 있었다. 49재를 다니던 오월, 산과 들에 아까시꽃과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슬픔을 잊으려 꽃을 그렸다. 1000송이쯤 그리면 낫겠지. 슬픔이 밀려오면 울었고 지치면 다시 꽃을 그렸다. 1000송이 넘게 그려도 몸만 아플 뿐이었다. 자학하는 심정으로 계속 그렸다. 2000송이가 넘어가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꽃 한 송이를 그리기 위해 붓질을 12~13번 했다. 아크릴은 색이 가라앉기 때문에 그 작업을 4번 이상 반복해야 색이 밝아졌다. 12만번의 손질을 거쳐 들꽃 3000송이가 피어났다. 철없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비웠던 그 밥공기에다 들꽃을 가득 담아 부모님께 올렸다. 어머니를 보낸 슬픔과 30년 쌓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꽃밥에 실어 보냈다.

들꽃 그림을 화가의 블로그에 올리자 개정판을 준비하던 혜민 스님이 보고 연락을 해왔다. 책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화가도 따라 바빠졌다. 어머니가 늘 기도하던 그대로 그림으로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게 되었다. 주위에선 ‘이제 차도 바꿔야지’, ‘집도 옮겨야지’ 이야기하지만 화가는 행복한 마음을 나누느라 더 바쁘다.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나눔활동과 공익사업에 쓰고 재능기부도 아끼지 않는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그림을 그려, 조금이라도 알려, 한 점이라도 팔아 살림에 보태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림 그리는 게 즐겁지가 않았다. 동료가 자신보다 잘되면 질투가 나고, 속이 상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게 행복하다. 마음공부 하듯 꽃잎을 하나하나 그리다 보면 잡념과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무엇보다 행복한 그림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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