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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세번째 부도, 그제야 삶의 조경을 시작하다

등록 2015-05-26 20:47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앞 생생텃밭에서 김태휘 ㈔도시농업포럼 사무총장이 “감자는 꽃을 따줘야 알이 굵고 많이 달린다”며 감자꽃을 따고 있다. 상추, 열무, 치커리 등 채소 사이로 화려하게 핀 꽃은 한련, 맨드라미, 팬지 등으로 식용이 가능하다. 국회 생생텃밭 모임은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물을 주고 있다. 이날도 국회의원실, 도시농업포럼, 상록자원봉사단 소속 10여명이 모였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앞 생생텃밭에서 김태휘 ㈔도시농업포럼 사무총장이 “감자는 꽃을 따줘야 알이 굵고 많이 달린다”며 감자꽃을 따고 있다. 상추, 열무, 치커리 등 채소 사이로 화려하게 핀 꽃은 한련, 맨드라미, 팬지 등으로 식용이 가능하다. 국회 생생텃밭 모임은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물을 주고 있다. 이날도 국회의원실, 도시농업포럼, 상록자원봉사단 소속 10여명이 모였다.
김태휘 도시농업포럼 사무총장
지난 20일 아침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앞 잔디밭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넓은 잔디밭 가운데에 상추와 열무, 치커리 등이 자라나고 있었다. 국회의원 50명이 지난달 8일 권위의 상징인 잔디밭 396㎡(120평)를 걷어내고 조성한 ‘생생텃밭’이다. 의원 1인당 약 7.9㎡(2평)가량 배정했고, 수요일 아침마다 모여 물을 주기로 했다.

상추 잎을 뜯고 있던 임내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의원들이 함께 생산적인 땀을 흘리며 텃밭을 가꾸다 보면 소통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씨를 뿌린 지 한달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 첫 상추를 거둔다”고 말했다. 생생텃밭을 디자인한 ㈔도시농업포럼 김태휘(53) 사무총장은 “쑥갓, 열무, 치커리 등 채소류뿐만 아니라 한련, 맨드라미, 팬지 등 식용이 가능한 꽃도 사이사이 심어 경관적 측면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잎채소의 초록 물결 사이로 빨간, 노란, 파란 꽃들이 피어난 텃밭은 화려하기까지 했다.

조경업체 무리한 수주에 1차 부도
긍정의 힘으로 버텼지만 최종 부도
월급쟁이로 일하며 빚 갚자 또 발동
하도급 맡았다 부도 여파로 빚더미

피해당한 내가 가해자 되는 구조
다른 삶 찾다 도시농업에 눈떠
텃밭에도 경관적 가치 부여 가능
국회 잔디 걷어내고 생생텃밭 조성

그는 아파트·리조트 등 시설 조경을 25년째 디자인해온 조경 전문가다. 건축가였던 삼촌의 추천으로 성균관대 조경학과를 진학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조경학과라고 소개하면 고래 잡는 포경과 헷갈릴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5년 동안 유학하며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한국에 돌아온 1991년부터 종합용역회사와 건설사를 거치며 짧은 시간에 조경팀장까지 올라섰다. 자연스럽게 자기 사업에 대한 계획을 마음속에 품게 됐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가 터졌다. 연쇄 부도위기에 몰린 건설사들은 인원감축을 단행했다.

“제가 회사를 나가야 할 상황이기도 했지만, 밀려서 나가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사업을 계획보다 조금 일찍 시작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회사에 ‘조경업체를 만들어 독립할 테니 조경 몇 건만 밀어달라’고 부탁을 했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6개월짜리 어음으로 결제받던 시기라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일이 없어 고통받는 시절에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는 “저처럼 설계부터 시공까지 양수겸장 할 수 있는 조경 전문가가 많지 않아 이른 시간에 업계에서 다크호스로 부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2002년 첫번째 부도를 맞았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연매출 100억원을 찍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 강박 때문에 거래해선 안 되는 기업인 줄 알면서도 무리한 수주를 했던 겁니다. 제가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아 부도를 맞은 건데, 결국 따지고 보면 제 탓인 거죠.”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부도를 막고 사업을 다시 추슬렀다. 그는 “초긍정 성향이라 어려움이 있어도 빨리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반대급부로 시련이 오기 전에 대비를 하는 것에는 부족했다. 2009년 두번째 부도를 맞았다. 결국 회사를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저 혼자 피해를 본 것으로 끝이 나질 않더군요. 저도 돈을 줘야 할 곳이 있잖아요. 그걸 못 주게 되니 남한테 피해를 주게 되는 구조인 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회원권까지 팔아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다 못 갚았습니다. 그분들이 집에까지 행패를 부려 가족들도 많이 놀랐죠. 아이들이 어릴 때라….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워 봐야 상대방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다른 조경회사에 들어가 설계 부문을 맡아 일을 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매달 급여를 해결하느라 고통스러웠는데 월급쟁이가 되어 꼬박꼬박 급여를 받는 입장이 되니 숨통이 트였다. 밀린 부채를 조금씩 갚아 나가면서 어려움을 해결하자 또 발동이 걸렸다. 2013년 새로운 조경업체를 창업했다.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의 토목·조경사업을 담당한 업체로부터 조경 부문을 하도급받을 수 있었다. 이번 일만 끝내면 남아 있는 빚도 다 청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난해 초 도급업체가 부도를 냈고, 결국 연쇄부도가 이어졌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또 좌절한 것이다. 오히려 빚만 늘어났다.

“하도급을 받아 대학 후배의 회사와 함께 일을 했는데, 일이 꼬이면서 관계가 나빠졌어요. 돈 때문에 좋은 사람들과 관계가 멀어지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도급업체에 대한 파산결정이 내려져 현재 청산 절차를 밟고 있어요. 어떻게든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 시간까지 버티기가 힘드네요.”

세번째 부도를 맞자 조경 쪽으로는 들여다보기도 싫어졌다. 기분을 전환할 겸 수강한 5060세대를 위한 사회공헌아카데미에서 ㈔도시농업포럼 신동헌 상임대표를 만났다. 몇년 전부터 도시농업을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던 터라 금세 의기투합했다. 단체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무총장도 맡게 됐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느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상황인데도 마음이 편해졌어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정도의 설계 업무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주식회사를 운영하면 여러 비용이 많이 들어가요. 그런데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니 비용은 적게 들고 만족감은 굉장히 커지더라고요. 생활은 힘들지만 마음은 여유로워졌고 희망은 더 커졌습니다. 지금까지 남의 아파트만 조경해왔는데 이제는 제 삶을 제대로 가꾸고 싶습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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