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인 지난 8일 서울시 용산구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에서 해방어린이집 아이들이 장구를 연주하고 있다.
박복만씨 부부 요양원 1년 살아보니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서울시 용산구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에 한 무리의 어린이가 들어왔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던 노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해방어린이집 아이들은 선생님의 신호에 맞춰 장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파동에 조용하던 요양원이 들썩거렸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에 맞춰 율동까지 선보인 아이들은 노인에게 다가가 카네이션이 달린 카드를 내밀었다.
남편 박복만(87)씨와 나란히 앉아 있던 김재덕(79)씨는 자신에게 카드를 준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김씨는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라고 썼는데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안아줬다”며 “요양원에 있으면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실습생과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와서 심심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김현주 간호부장은 “실습생이 오면 직원들은 챙겨야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귀찮은 면도 있지만, 어르신들이 ‘친손주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셔서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며 “친손주들이 요양원에 오면 어르신께 인사만 하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떠나가자 흥이 남아 있던 김재덕씨는 옆에 앉은 할머니 한 분과 ‘울려고 내가 왔던가’로 시작하는 노래 <선창>을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남편이 1년 전에 입소한 뒤로 거의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며 “직원분들이 가족처럼 잘해주셔서 내 집처럼 편안하다”고 말했다.
박씨 10여년전 파킨슨병 진단받아
3년 전부터 병세 악화돼 대소변 장애 세 딸 모두 병구완 도왔지만 한계
아내 고집으로 요양원들 직접 답사
말만 ‘노인천국’ 직원교육 등 허술 구립요양원 대기 1년만에 입소
직원 3개조 24시간 근무, 일정 알차
“직접 보고 좋은 곳에 모시는 게 효도” 남편 박씨가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건 10여년 전이다. 약간의 집착증을 빼면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다 3년 전부터 병세가 갑작스럽게 나빠졌다. “남편이 소변을 자신도 모르게 지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혀야 했어요. 어떤 날은 이불 여섯 채를 바꿔줬다니까요. 그런데 제가 몇 년 전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고관절 수술을 받아 지팡이를 짚고 다녀요. 남편까지 제대로 걷지를 못하게 되니까 생활이 너무 힘든 거예요.”(김재덕씨) 부산에 살던 막내딸이 집으로 들어와 병구완을 도왔다. 나머지 두 딸 모두 집 근처에 모여 살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딸들이 아빠 알몸 보는 걸 힘들어했어요. 남편이 대소변을 못 가리는데, 목욕부터 옷 갈아입히는 것까지 내가 할 수밖에 없잖아요. 밤에도 수시로 그러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화장실에 가보니 벽에 대변을 칠해 놓고는 바닥에 누워 있더라고요. 집에는 아무도 없고 다리가 성치 못한 나 혼자 감당할 엄두가 안 났어요.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웃에 도움을 청해 겨우 수습했습니다. 살아있을 때까지는 내가 돌봐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양기관에 모시자고 얘기했죠.” 딸들은 반대하고 나섰지만 김씨는 “내가 죽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죽으면 다행인데, 혹여나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할 거냐”며 밀어붙였다. 요양원을 알아보니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 등 몇몇 요양기관은 정원이 다 차서 대기신청만 가능했다. 요양원의 특성상 언제 자리가 날지 기약할 수도 없었다. 당장 입소가 가능한 요양기관에 직접 가보니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많았어요. 시설도 시설이지만 직원 교육이라든지 근무 시스템이 엉성해 보였어요. 라디오에서 ‘노인천국’이라고 광고하던 요양원도 가봤는데 천국은 무슨 천국…. 함께 갔던 큰딸이 ‘이런 곳에 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고 하고, 어찌해서라도 내가 끝까지 모셔야겠다 싶어 그냥 집에 왔어요.”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집에서 악전고투를 계속하던 중 1년 만에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에서 자리가 하나 났다고 연락이 왔다. 1년 전에 실망이 컸던지라 큰 기대 없이 방문했다. 그런데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 직원들의 표정부터 다른 요양원과 달랐다.
“친절하고 표정이 다들 밝아서 직원 교육이 잘되어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여기는 직원들이 3개조로 돌아가요. 24시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거죠. 딸들도 와보고는 ‘여기는 정말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4인실은 다 만원이고, 특실만 하나 남아 있더라고요. 월 비용이 4인실(60만원대)의 두 배가 넘는 150만원 전후라 고민하다 남편이 살면 얼마나 더 살까 싶어 과감하게 결정했는데, 지내보니 잘 들어온 것 같아요. 운동시켜주는 물리치료사도 있고, 환자의 상태에 맞게 일정을 짜줘서 그대로 생활하면 됩니다.”
벽에 붙어 있는 5월 일정표를 보니 미술치료, 다도교실, 작업치료, 서예교실, 웃음치료, 시 치유, 국악교실, 맷돌체조, 요리교실, 발마사지, 이·미용, 생활체조, 노래교실, 사회적응훈련 등으로 가득했다. 이제 요양원은 김씨 가족의 생활 중심이다. 다리가 불편해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딸들은 아침저녁으로 운전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 들어온 뒤로 가족 모두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여기 오면 많이 웃게 되고 노래도 자주 불러요. 답답하지 않습니다. 휠체어로 나갈 수 있는 야외정원도 있고, 날씨만 좋으면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도 나가죠. 집에 모시는 건 젊은 사람들한테 너무 큰 부담입니다. 아프다고 해서 금세 돌아가시는 것도 아니고, 긴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도 있잖아요. 좋은 요양원이라면 어서 모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비용도 따져보니 집에 있을 때도 여기만큼 들었더라고요. 단, 좋은 요양원이어야 합니다. 직접 가서 봐야 노인천국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3년 전부터 병세 악화돼 대소변 장애 세 딸 모두 병구완 도왔지만 한계
아내 고집으로 요양원들 직접 답사
말만 ‘노인천국’ 직원교육 등 허술 구립요양원 대기 1년만에 입소
직원 3개조 24시간 근무, 일정 알차
“직접 보고 좋은 곳에 모시는 게 효도” 남편 박씨가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건 10여년 전이다. 약간의 집착증을 빼면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다 3년 전부터 병세가 갑작스럽게 나빠졌다. “남편이 소변을 자신도 모르게 지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혀야 했어요. 어떤 날은 이불 여섯 채를 바꿔줬다니까요. 그런데 제가 몇 년 전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고관절 수술을 받아 지팡이를 짚고 다녀요. 남편까지 제대로 걷지를 못하게 되니까 생활이 너무 힘든 거예요.”(김재덕씨) 부산에 살던 막내딸이 집으로 들어와 병구완을 도왔다. 나머지 두 딸 모두 집 근처에 모여 살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딸들이 아빠 알몸 보는 걸 힘들어했어요. 남편이 대소변을 못 가리는데, 목욕부터 옷 갈아입히는 것까지 내가 할 수밖에 없잖아요. 밤에도 수시로 그러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화장실에 가보니 벽에 대변을 칠해 놓고는 바닥에 누워 있더라고요. 집에는 아무도 없고 다리가 성치 못한 나 혼자 감당할 엄두가 안 났어요.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웃에 도움을 청해 겨우 수습했습니다. 살아있을 때까지는 내가 돌봐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양기관에 모시자고 얘기했죠.” 딸들은 반대하고 나섰지만 김씨는 “내가 죽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죽으면 다행인데, 혹여나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할 거냐”며 밀어붙였다. 요양원을 알아보니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 등 몇몇 요양기관은 정원이 다 차서 대기신청만 가능했다. 요양원의 특성상 언제 자리가 날지 기약할 수도 없었다. 당장 입소가 가능한 요양기관에 직접 가보니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많았어요. 시설도 시설이지만 직원 교육이라든지 근무 시스템이 엉성해 보였어요. 라디오에서 ‘노인천국’이라고 광고하던 요양원도 가봤는데 천국은 무슨 천국…. 함께 갔던 큰딸이 ‘이런 곳에 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고 하고, 어찌해서라도 내가 끝까지 모셔야겠다 싶어 그냥 집에 왔어요.”
박복만(왼쪽)·김재덕 부부가 어린이에게 받은 카네이션 카드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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