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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독거노인은 집에만 있으란 법 있나요?

등록 2015-05-12 20:27수정 2015-05-12 20:30

지난해 11월8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2회 용인시·시민일보배 전국댄스스포츠대회에서 강신영(오른쪽)씨가 짝과 함께 연기를 펼치고 있다.  강신영씨 제공
지난해 11월8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2회 용인시·시민일보배 전국댄스스포츠대회에서 강신영(오른쪽)씨가 짝과 함께 연기를 펼치고 있다. 강신영씨 제공
댄스스포츠 전도사 강신영씨
35살에 장갑수출업체 공장장 승승장구
국외브랜드 수입했다 환율파동에 망해
1999년 사표낸뒤 불화로 합의이혼까지
운동 삼아 시작한 댄스스포츠에 몰입
국제지도자 자격증 따러 영국 유학도 
동호회 운영하며 매일 축제처럼 살아 
운동량·자세 등 시니어에게 맞춤운동
“딸아이와 통화하면서 오늘 강의한다고 했더니, 이혼한 게 무슨 자랑이냐고,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제 이야기가 자랑은 아닙니다. 홀로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불가항력으로 홀로됐다고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조용히 살다 죽어야 합니까? 누구라도 홀로될 수 있는 것이니 홀로 사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는 의미에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드림엔터에서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주최로 ‘시니어 5대 키워드 공략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일, 여행, 친구, 텃밭, 홀로 등 5개 키워드별로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담이 소개됐다. ‘홀로 살아가기’를 주제로 발표한 강신영(63)씨는 1999년 아내와 이혼했다. 그 전까지는 실패를 모르는 인생이었다. 서른다섯에 국내 대표적 스키장갑업체 공장장이 됐다. 건설업체 중동 근무 등 국외 경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6년 만에 수출 물량을 갑절로 늘리며 능력을 입증했다.

“그런데 1996년 환율이 800원대로 떨어지며 수출에서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국내 시장으로 눈을 돌려 영국 스포츠 브랜드의 한국 총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회사를 따로 만들어 제가 대표를 맡았죠. 그런데 1년 만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환율이 2000원대까지 치솟는 겁니다.”

사업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당시에 유행했던 말이 ‘책임경영’이었다. 신규 사업의 실패에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했다. 1999년 퇴직할 때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승승장구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삶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20년을 함께한 부부 사이에도 균열이 생겼다. 결국 합의이혼하고 아이들은 아내가 키우기로 결정했다.

“이혼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라면, 즉석밥, 즉석국을 박스째로 사들였습니다. 그때까지 전기밥솥에 보온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밥도 몇달 해보니 이렇게 간단한 걸 겁을 먹었구나 싶더군요.”

경영인 모임에 나가보니 외환위기로 실패한 사람이 많았다. 다들 돈에 혈안이 돼 있었다. 피라미드(다단계) 사업이 유행했고, 모아놓은 돈을 털어 음식점을 차리는 사람도 있었다.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다. 몇달 전만 해도 혈색이 좋던 사람이 심근경색으로 죽어가는 모습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산에도 가고, 자전거도 탔다. 몇년 전 시작한 댄스스포츠도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 지도자 자격증까지 땄지만 갈증이 컸다. 댄스스포츠의 본고장인 영국에 가서 국제댄스스포츠지도자(IDTA)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런던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면서 새벽부터 유명 댄스스쿨인 셈리스튜디오에 나가 밤늦게까지 춤만 췄어요. 이론은 한국에서 달달 외워 갔죠. 남자 동작, 여자 동작, 스텝별 부분동작, 자세와 각도까지 완벽하게 소화해야 딸 수 있거든요. 총비용이 1000만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혼자가 아니어서 아내에게 춤 유학 비용으로 1000만원을 달라고 했으면 줬을까요? 지금까지 오로지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썼는데, 처음으로 나를 위해 돈을 쓴다는 게 굉장히 기분 좋았습니다.”

귀국한 뒤 ‘댄스엔조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5년 동안 회장을 맡았다. 회원 수가 최대 3000명에 이르렀다. 지도자 및 칼럼니스트 활동도 하고, 책도 5권이나 냈다.

“동호회 활동이란 게 여러 사람을 만나고, 운영하는 일인데 춤까지 추느라 정신없었죠.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매일 축제였습니다. 혼자라 가능했겠죠. 하고 싶은 거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할 수 있는 게 홀로 사는 장점 아닙니까. 대신 가족의 해체와 인연의 단절, 외로움, 무절제는 큰 단점입니다. 홀로 사는 데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되는 분은 빨리 재혼하셔야 합니다.”

그의 일과는 오전에 개인 사무실에 나가는 걸로 시작한다. 한국의 스포츠 메카인 서울 동대문 지역에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20여개 국외 브랜드를 국내 업체와 연결해줬다. 오후에는 칼럼이나 책을 집필하고, 저녁에 댄스스포츠 학원으로 향한다. 대회에는 1년에 열번 정도 나간다. 친구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주말엔 산에 가느라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나이가 들면 자세와 체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집니다. 댄스스포츠는 시니어에게 필요한 요소를 다 갖고 있어요. 순환계와 호흡계에도 좋고, 운동량도 적당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이든 겨울이든 실내에서 할 수 있어요. 구민회관이나 복지관에서 배우면 한달에 1만원이면 되고, 백화점 문화센터는 3개월에 10만원 정도 합니다. 7만원짜리 신발 하나만 갖추면 시작할 수 있어요.”

그는 요즘 5060세대를 위한 강의에 열심이다. 댄스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싶어서다. 얼마 전에는 노인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댄스스포츠를 가르쳤다. 그런데 지켜보던 한 노인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여기가 카바레인 줄 알아?”

“댄스스포츠가 외도나 가정파탄의 온상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유럽 왕실에서 비롯된 스포츠라 예의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런 소문이라도 한번 나면 이 바닥에선 끝장입니다. 사실 스텝 맞추느라 정신없기 때문에 손을 잡고 있는지도 몰라요. 대신 부부가 함께 배우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운전, 골프, 댄스는 부부끼리 가르치지 말라는 말도 있거든요. 남자가 세 배 이상 까다롭기 때문에 아내한테 바보 소리 듣기 딱입니다. 하하.”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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