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서울시 동작구 동작신협 노량진지점에서 열린 ‘어린이 교육 강사 협동조합’ 준비회의에서 김길영(가운데)씨가 발언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은 시니어 6명이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9월부터 8부작으로 방송할 예정이다.
종금·증권·보험사 출신 김길영씨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종합금융회사들이 주범으로 꼽혔다. 30개 종금사가 난립하며 고수익을 위해 동남아 등 개도국 고위험 채권까지 손을 댔다. 동남아 외환위기가 시작되자 100억달러 이상이 묶이며 외화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다. 정부는 종금사에 대해 인가 취소와 통폐합 등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을 펼쳤고, 2년 뒤 단 10곳만 남았다. 한불종금에서 21년 동안 일했던 김길영(60)씨도 수십 명의 동료와 함께 1999년 회사를 나와야 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다 한 증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기본급 100만원에 실적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됐다.
“단말기만 보면 직원들의 실시간 실적이 그대로 나오는데 창피해서 안 되겠더군요. 모아뒀던 퇴직금으로 실적을 메웠습니다. 고객이 별로 없으니까 제 돈으로 샀다 팔았다 한 거죠. 게다가 외환위기 때 260까지 떨어졌던 종합주가지수가 2000년에 1000을 돌파했거든요. 다우존스지수가 1만 갔으니 우리도 1만 간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왕창 투자했다가 1년 뒤에 반토막 나면서 다 날렸습니다.”
증권사의 실적 독려는 상당히 기술적이었다. 1인실을 쓰던 그가 실적이 떨어지자 지점장이 찾아왔다.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하니 잠시 옆 사무실로 가달라는 것이었다. 가보니 2인실이었다. 그래도 실적이 안 나오자 3인실, 4인실로 차례로 밀려났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4년 만에 증권사를 나와 슈퍼마켓도 해보고, 난방용 알루미늄관 대리점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2008년에는 손해보험사 대리점도 열었고, 2011년에는 생명보험사의 기업보험상담사(GFC)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다 영업이고, 실적이더군요. 인맥을 통한 영업은 3개월이면 바닥이 납니다. 석달 실적이 없으니 거기서도 방을 빼야 할 상황을 조성하더군요. 대놓고 나가라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듭니다. 지점장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데, 위에서 압박을 얼마나 받을지 아는데 그냥 있을 수가 없어요. 증권사랑 똑같습디다.”
외환위기때 종금사 구조조정에 나와
증권·보험사에서 계약직으로 영업
실적 안 나오면 방 뺄 분위기 압박
상처받고 칩거중 ‘인생 이모작’ 발견 어린이교육 시니어 강사 협동조합 참여
민생침해 모니터링하며 최대 60만원
경로당 코디네이터 활동 월 40만원
“스리잡 뛰며 수입 안정, 보람도 커” 2013년 보험사를 나온 뒤 집에만 있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새로운 경쟁에 뛰어들 엄두도 안 났다. 그러던 중 5060세대를 위한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알게 되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재취업 강의를 들었는데, 은퇴자를 위한 온갖 정보가 가득했다. 신세계였다. 그중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에서 ‘어린이 교육 강사 협동조합’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알림이 눈에 띄었다. 협동조합 설립 과정을 통해 중장년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겠다는 게 방송 취지였다. 일정 금액을 출자해야 하는데도 수십명이 지원했다. 김씨는 최종 6명에 뽑혔다. “6명이 매주 모여서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손 인형극, 놀이 강사, 전래동화 구연사, 독서지도사, 숲해설가 등 시니어 강사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파견하는 사업입니다. 저도 동화 구연을 배웠고, 유치원에 실습도 나가려고 해요. 우리가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은 9월부터 엠비엔에서 8부작으로 방송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만난 은퇴자 중 뜻이 맞는 사람끼리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취업 정보를 공유한다. 김씨도 아침마다 주요 누리집을 둘러보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단체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올 초에는 누가 “김샘, 금융기관 출신이라면서요? 서울시에서 민생침해 모니터링단 뽑는다는데 한번 알아보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민생침해 모니터링단은 대부업, 임금체불, 취업사기, 상조업, 불공정피해 등 5개 분야의 민생침해 사례를 조사하는 역할이었다. 김씨는 대부업 분야에 뽑혀 3월부터 활동하고 있다. 길거리나 인터넷에 나오는 사채 광고를 취합해 위반사항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만약 미등록 업체이거나 대출금리가 법정 규제 금리보다 높을 경우엔 서울시에서 전화번호 발신정지 조처를 통해 고금리 사채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이 작업이 만만치 않아요. 광고 명함을 보고 등록업체인지 비등록업체인지 알아봐야 하고, 대출금리도 확인해야 하거든요. 위반사항이 있는 명함들을 스캔해서 담당자한테 보내야 하는데, 스캐너 작동이 익숙하지 않아서 3월엔 실적이 좀 부족했어요. 위반사항 하나당 6000원씩 월 최대 60만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올 2월에는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seoulsenior.or.kr)에서 진행하는 ‘경로당 코디네이터’(<한겨레> 2014년 10월22일치 20면)에도 합격했다. 경로당을 돕는 일인데, 12월 말까지 10개월간 활동하며 월 40만원의 활동비를 받게 된다. “알아보니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가 참 많아요. 물론 지원자도 엄청나죠. 5060세대가 지나가는 곳마다 병목현상이 일어납니다. 평균 경쟁률이 5 대 1은 되는 것 같아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뽑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경쟁률은 50 대 1이나 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백세운동교실 강사는 재수, 삼수하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여러 일자리에 지원하면서 느낀 점은 지원자 대부분 준비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통계청에서 일당 5만원짜리 단기 조사원을 모집하는데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지원서 자기소개에 달랑 한 줄, 두 줄 쓰는 이들이 많다. 통계청 누리집에서 동영상 강의도 듣고 전문용어까지 공부해서 지원하는 사람과 경쟁이 될 수가 없다.
“일단 서류에 간절함이 묻어나야 합니다. 사회공헌 일자리라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사회와 공유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들어가야죠. 경로당 코디네이터 면접에 가보니 자신이 마치 공무원인 양 대답하는 지원자도 있더군요. 경로당 코디네이터는 도와주고 보조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직접 경험하며 수집한 일자리 정보와 취업 성공전략을 도심권인생이모작지원센터(dosimsenior.or.kr)의 ‘이모작 열린학교’에서 이달 중 강의한다. 교훈적인 내용에 치우쳐 있는 기존 은퇴 강좌와 달리 금융전문가답게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제가 지금 ‘스리잡’을 하고 있는데 국민연금까지 합치면 월수입이 200만원 가까이 됩니다. 기존 일자리보다 수입도 안정적이고, 또래들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니까 활력도 넘쳐요. 경로당에 가면 할머니들이 반겨주시고, 어르신과 마을을 위해 도울 일을 고민하니 신이 납니다. 금융기관에서 영업할 때는 실적 때문에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는데, 요즘은 보람도 찾고 생활비도 벌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증권·보험사에서 계약직으로 영업
실적 안 나오면 방 뺄 분위기 압박
상처받고 칩거중 ‘인생 이모작’ 발견 어린이교육 시니어 강사 협동조합 참여
민생침해 모니터링하며 최대 60만원
경로당 코디네이터 활동 월 40만원
“스리잡 뛰며 수입 안정, 보람도 커” 2013년 보험사를 나온 뒤 집에만 있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새로운 경쟁에 뛰어들 엄두도 안 났다. 그러던 중 5060세대를 위한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알게 되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재취업 강의를 들었는데, 은퇴자를 위한 온갖 정보가 가득했다. 신세계였다. 그중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에서 ‘어린이 교육 강사 협동조합’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알림이 눈에 띄었다. 협동조합 설립 과정을 통해 중장년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겠다는 게 방송 취지였다. 일정 금액을 출자해야 하는데도 수십명이 지원했다. 김씨는 최종 6명에 뽑혔다. “6명이 매주 모여서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손 인형극, 놀이 강사, 전래동화 구연사, 독서지도사, 숲해설가 등 시니어 강사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파견하는 사업입니다. 저도 동화 구연을 배웠고, 유치원에 실습도 나가려고 해요. 우리가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은 9월부터 엠비엔에서 8부작으로 방송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만난 은퇴자 중 뜻이 맞는 사람끼리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취업 정보를 공유한다. 김씨도 아침마다 주요 누리집을 둘러보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단체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올 초에는 누가 “김샘, 금융기관 출신이라면서요? 서울시에서 민생침해 모니터링단 뽑는다는데 한번 알아보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민생침해 모니터링단은 대부업, 임금체불, 취업사기, 상조업, 불공정피해 등 5개 분야의 민생침해 사례를 조사하는 역할이었다. 김씨는 대부업 분야에 뽑혀 3월부터 활동하고 있다. 길거리나 인터넷에 나오는 사채 광고를 취합해 위반사항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만약 미등록 업체이거나 대출금리가 법정 규제 금리보다 높을 경우엔 서울시에서 전화번호 발신정지 조처를 통해 고금리 사채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이 작업이 만만치 않아요. 광고 명함을 보고 등록업체인지 비등록업체인지 알아봐야 하고, 대출금리도 확인해야 하거든요. 위반사항이 있는 명함들을 스캔해서 담당자한테 보내야 하는데, 스캐너 작동이 익숙하지 않아서 3월엔 실적이 좀 부족했어요. 위반사항 하나당 6000원씩 월 최대 60만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올 2월에는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seoulsenior.or.kr)에서 진행하는 ‘경로당 코디네이터’(<한겨레> 2014년 10월22일치 20면)에도 합격했다. 경로당을 돕는 일인데, 12월 말까지 10개월간 활동하며 월 40만원의 활동비를 받게 된다. “알아보니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가 참 많아요. 물론 지원자도 엄청나죠. 5060세대가 지나가는 곳마다 병목현상이 일어납니다. 평균 경쟁률이 5 대 1은 되는 것 같아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뽑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경쟁률은 50 대 1이나 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백세운동교실 강사는 재수, 삼수하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여러 일자리에 지원하면서 느낀 점은 지원자 대부분 준비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통계청에서 일당 5만원짜리 단기 조사원을 모집하는데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지원서 자기소개에 달랑 한 줄, 두 줄 쓰는 이들이 많다. 통계청 누리집에서 동영상 강의도 듣고 전문용어까지 공부해서 지원하는 사람과 경쟁이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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