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난 18일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서는 차벽과 최루액을 동원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논란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 실무진은 ‘경찰력 남용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위원장 성명을 준비했지만 보수 성향 인권위 상임위원들의 반대로 발표되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성명 발표에 반대했는지는 논의에 참여한 상임위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여당 추천 유영하 상임위원은 26일 “기자에게 할 말 없다. 산행 중이다”라며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익숙한 상황이지만, 야당 추천 몫인 이경숙 상임위원도 비슷한 답변을 하는 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위원은 인권위에서 세월호 집회 관련 성명을 준비했었다는 사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에는 “전혀 모른다.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다 이후 통화에서는 “성명 초안을 보지도 않고 ‘오케이’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세월호 관련이면 좋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지난달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추천으로 상임위원이 됐다. 임기 개시 두 달이 안 된 ‘초보’라 해서 ‘면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차관급인 인권위 상임위원에겐 인권 현안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 기준을 세우는 막중한 역할이 부여돼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인권위 안팎에서도 이 위원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은 편이다. 인권 현안 인식이나 회의 발언 등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권위원들 사이의 논쟁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 인권위 직원들과 소통함으로써 날로 보수화하는 인권위의 운영 방안을 개선하려는 고민도 아직 부족하다는 말이 들린다. 11명의 인권위원 중 보수 성향 인사가 다수인 상황에서 야당 추천 인권위원의 책임은 클 수밖에 없다.
야당은 공개추천·심사를 통해 이 위원을 선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추천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위원은 전직 야당 의원이고, 남편은 같은 당의 현직 3선 의원이다. ‘야당 몫 낙하산’이라는 평가가 부당하다면, 이 위원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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