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치매 가족을 돌보는 간병 가족들이 서울 용산구 치매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미술상담치료에서 직접 색칠한 그림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우리 가족의 치매] ② 가족의 고통
“‘치매가 있는 분이니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사과해도 상대방은 화가 안 풀리나 봐요. 하도 화를 내길래 나도 그만 속이 상했지요.”
17일 서울시 용산구 치매지원센터에서 진행 중인 치매환자 가족을 위한 미술상담치료 시간. 박재희(73)씨가 지난주에 겪은 일을 털어놨다. 밑그림이 그려진 종이 위에 크레용으로 알록달록하게 색칠을 하던 박씨는 20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78)이 휴대전화로 자꾸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이라고 했다.
“개나리꽃을 좋아해서 노랗게 칠했어요. 연둣빛 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봄이 됐으니 어머니 병도 좀 나았으면 좋겠어요.” 이날 처음 모임에 온 김아무개(54)씨는 색칠을 하다 친정어머니(81) 생각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둘째딸인 김씨는 지난주 어머니를 경기 파주의 요양원으로 보낸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 요양원에 보냈지만 자식 된 도리로 맞는 행동인지 지금도 혼란스럽다”며 울었다.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이 김씨에게 “처음이라 그렇다. 다 지나갈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역시 첫 참석자인 허아무개(64)씨는 6개월 전 뇌수술 후 인지기능장애를 겪는 아내(63)를 생각하며 크레용을 들었다. “내 마누라니까 내가 돌봐야지”라고 작게 말하는 허씨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치매환자 돌봄 가족들 1주일 1시간
함께 모여 그림그리며 속내 털어놔 서울시 통계 ‘가족이 치매돌봄’ 63%
책임감에 짊어진 짐 힘들다 말 못해
“환자와 떨어져 시간 갖기 필요해”
미술상담치료는 1주일에 한시간씩 10주 동안 진행된다. 비슷한 아픔을 나누는 이들을 만나자 자식들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 흘러나왔다. 서로의 처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치매 가족을 둔 고통이 줄어든다. 지난주 상담치료 시간에는 아픈 가족을 혼자 돌보며 차오른 분노와 우울을 풀기 위해 신문지를 구겨 만든 공을 벽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서울시에 사는 60살 이상 인구 174만명 중 서울광역치매지원센터에 치매환자로 등록된 이는 5만1820명(2014년 기준)이다. 서울시가 이 가운데 656명을 조사해보니 집에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비율이 62.7%에 달했다. 장기요양시설에 가족을 보낸 비율은 15%, 병원은 5%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이는 배우자가 39%로 가장 많다. 딸 23.6%, 아들 14.6%, 며느리 12.9% 순이었다. 이들은 치매 가족을 돌보는 데 하루 평균 9시간을 쓰고 있었다.
치매환자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이들에게 상담치료 1시간은 ‘행복한 외도’다. 김아무개(73)씨는 “남편은 약을 먹으면 괜찮아진다. 우리보다 더 심한 가정을 보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한다. 이만큼이라도 좋으니 남편이랑 나랑 여든여덟살에 사흘만 더 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정자(75)씨는 “‘기저귀에 대변을 눠도 좋으니 여보, 내 곁에만 있어줘’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박씨는 밑그림으로 그려진 ‘마주 보는 무늬’를 남편과 자신이라고 생각해 짝을 맞춰 같은 색으로 칠했다고 했다.
남편을 돌보는 과정에서 자신도 뇌경색이 온 박재희씨는 “전에 너무 힘들고 지쳐서 ‘당신 이만 먼저 가라’고 말했는데, 평소 귀가 어둡던 양반이 그 말은 잘 알아들어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박씨는 “자식들 힘들까봐 나 힘든 건 말을 잘 안 하게 됐다. 지금 내 마음을 달래주는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나마 여기 나와서 그림이라도 그리면 어릴 적 부모님한테 보살핌 받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양금용(49) 가족치료 전문상담사는 “가족치료는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람만 있을 수는 없다. 책임감으로 짊어진 짐이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자신이 성인군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상담치료 시간이 끝나자 가족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집에 있는 아픈 가족을 생각하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양씨는 “가족들은 치매에 걸린 가족 걱정에 집 밖으로 나오기가 미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환자와 떨어져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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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떨어져 시간 갖기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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