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인권·복지

“인생 2막에 과거 지위, 현재 나이가 다 무슨 소용?”

등록 2015-03-10 20:29수정 2015-03-11 09:48

박재석(가운데)씨가 지난 2일 이야기채록사협동조합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재석(가운데)씨가 지난 2일 이야기채록사협동조합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박재석씨
서울시 은평구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는 창업을 돕는 ‘인큐베이팅룸’이 있다. 비영리기관(NPO),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을 설립하려는 50, 60대들이 입주해 있다. 센터는 단순히 사무공간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교육, 홍보, 단체설립 실무, 경영 멘토링도 지원한다.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가 박재석(59)씨다.

인큐베이팅룸에 입주한 이야기채록사협동조합의 조합원들과 박씨가 지난 2일 만났다. 이야기채록사협동조합은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기록해 역사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날 처음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방문한 최병탁(76) 조합원이 박씨에게 “인생이모작이란 말을 처음 들어보는데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보통 벼를 추수한 논에 보리를 심는 걸 이모작이라고 하잖아요. 퇴직하신 분들에게 사회참여를 하거나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곳입니다. 회사에서 27년 동안 일하다 퇴직한 저도 이곳에서 인생이모작을 하고 있는 셈이죠.”

27년간 대기업서 마케팅하다 퇴직
한국여성재단서 인턴 거쳐 정식채용
다른 비영리기관들과 관계 잘 맺어
센터 출범 때 유일 시니어로 공채 

영리→비영리 연착륙 쉽지않아
어린 사람 말도 들을 수 있도록
바닥부터 시작” 마음가짐 필요

박씨는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주로 하다 에스원에서 2007년 말 희망퇴직을 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해고에 가까웠기 때문에 충격은 상당했다. 1년 가까이 등산 등으로 소일하던 그는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알게 됐다. 비영리기관에서 활동하기를 원하는 은퇴자를 위한 교육과정이었다. ‘놀면 뭐하나’ 싶어 2009년 수강했다. 당시에는 이 과정을 마치면 비영리기관에서 한달 동안 인턴을 할 수 있었다. 박씨는 한국여성재단에 배정됐다.

“한국여성재단에 갔더니 저보다 앞서 8, 9명의 시니어 인턴이 거쳐 갔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하루, 어떤 분은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면서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재단과 가치관이 안 맞았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턴에게 요구되는 실무능력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박재석씨는 자신의 두번째 인생을 비영리기관에서 시작했다.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박재석씨는 자신의 두번째 인생을 비영리기관에서 시작했다.
회사생활을 30년 정도 한 사람이면 부하직원을 관리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비영리기관의 인턴으로 들어가 오히려 지시를 받으며 하나에서 열까지 실무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실무를 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사무용 소프트웨어는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컴퓨터가 대중화될 무렵 우리 연배는 이미 중간관리자라 배운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다행히 저는 마케팅을 하다 보니 엑셀의 고급 기능까지 익혔습니다. 재단에서는 기본적인 엑셀 기능만 활용하고 있었는데, 제가 함수와 매크로 등 고급 기능까지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니까 저를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아요.”

한달짜리 인턴이 끝난 뒤에도 박씨는 계속 재단에 나가 일을 도와줬다. 3개월쯤 지나자 재단에서 월 50만원씩 활동비도 받을 수 있었다. 마침 보건복지부의 희망키움뱅크 사업을 한국여성재단에서 맡게 되면서 2010년 초 팀장급 상근활동가로 정식 채용됐다.

“직급은 팀장이라도 비영리기관에서는 잡다한 실무부터 시작해서 전방위로 다 해야 합니다. 또 결과를 중시하는 회사와 달리 비영리기관에서는 과정을 중시해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다행히 잘 적응해 사업 실적도 좋았고, 다른 단체들과 관계도 잘 맺을 수 있었어요.”

2012년 말 희망키움뱅크 사업이 종료되면서 박씨도 재단을 나왔다. 하지만 그동안 단체들과 맺은 인연이 자산이 되었다. 2013년 초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가 출범할 때 공채 1기로 뽑혔다. 현재 센터의 직원 중 유일한 시니어다.

“인큐베이팅룸에 입주한 시니어들은 아무래도 제가 또래고 비영리기관의 경험과 네트워크도 많다 보니 편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너무 친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저한테 한다는 거죠. 하하.”

비영리기관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싶은 시니어를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운이 좋았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그만큼 영리기업 퇴직자가 비영리기관에 연착륙하는 게 쉽지 않다. 어려움의 가장 큰 이유로 마음가짐의 문제를 지적했다. 많은 시니어들이 과거의 지위와 현재의 나이에 집착하는데 인생 2막에선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전 회사에서 갖춘 능력은 현재 비영리기관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남한테 지시하고 조언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제 스스로 일을 찾고 지시도 받는 자리로 가는 겁니다. 나이 어린 사람들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실무능력도 기본적인 건 갖춰야 합니다. 최소한 문서 작성 프로그램인 워드프로세서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은 다룰 줄 알아야겠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인생이모작 인큐베이팅룸 입주하세요
인생이모작 인큐베이팅룸 입주하세요
박씨는 내년이면 센터에서 정년을 맞게 된다. 퇴직한 뒤 정년이 없는 다른 비영리기관으로 옮길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창업할지 고민 중이지만, 70살까지 일을 한다는 목표는 뚜렷했다. 비영리기관에서 6년 가까이 일하며 축적해놓은 네트워크가 있어 마음만은 든든한 것 같았다.

“은퇴를 앞둔 분들은 인생 2막에 맞는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복지사나 경영지도사 등 관심 분야가 분명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도전하세요. 비영리기관에서 주관하는 각종 교육과정과 포럼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네트워크도 넓힐 수 있고, 비영리기관의 추세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려면 관심 있는 단체의 누리집에 회원 가입을 해 정기적인 뉴스레터를 받으면 좋겠죠. 저처럼 자원봉사가 취업의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소홀히 하지 마세요.”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