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성씨는 지난해 희망제작소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부산시 금정구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인 선아의집과 부산진구 제일경로당에
옥상텃밭을 만들었다.
장유성 도시농업시민협 대표
장유성(58)씨의 인생 2막은 15년 전에 이미 결정난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 두 돌 된 둘째 원형(17)이에게 발달장애가 있음을 알아챘다. 임상심리사인 아내가 병원에서 발달장애 여부를 진단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일찍 장애의 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다. 논술 강사로 일하며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교육상담도 하고 있었던 장씨는 “장애아동의 성장 과정을 알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남들보다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평생을 가는 장애이니 치유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명확하진 않아도 직업·주거·돌봄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장애인 복지공동체 모델을 가족의 미래로 떠올렸던 것이다.
멀게 느껴졌던 미래가 현실로 닥친 건 2010년 말, 맞벌이 부부 대신 원형이를 돌봐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다. 직장에 매인 아내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장씨가 원형이를 맡기로 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일과 양육을 병행했지만 반년 만에 일을 포기하면서 가계소득은 반으로 줄었다.
“장애인 부모는 아이에게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어 부모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가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시설에 아이를 맡기지 않고 부모가 직접 돌보려면 아이를 돌보는 일이 향후 수입으로 이어지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 농·생 특수학교 진학시키며
치유형 도시농업 가능성에 눈떠
장애인 편한 세상은 노인도 편해
복지관·경로당 옥상에 텃밭 조성 철마면 1만㎡ 부지에 공동체 준비
직업·주거·돌봄 동시에 해결
장애인 부모도 안심하고 눈감아야
마침 농업·생명 중심의 직업교육 중점 특수학교인 부산해마루학교가 부산시 기장군 정관면에 세워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길을 찾은 기분이었다. 학교에 대해 알아보면서 원형이보다 장씨가 먼저 농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태귀농학교와 도시농부학교, 도시농업전문가 과정까지 이수했다. 정신·육체적 문제를 농업활동과 농촌경관을 통해 치유하는 ‘치유농업’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실내에서 보호해요. 위험하다는 이유로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텃밭에 나와 흙과 풀을 보면 표정부터 달라져요. 농업활동이란 게 작물을 심고, 기르고, 물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바라만 봐도 농업이고, 흙과 비료를 날라도 농업이고, 열매를 따 먹어도 농업입니다. 텃밭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관찰하다 보면 ‘저 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겠다’는 감이 와요. 처음에는 호미질도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비료도 나르고 외발 수레도 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나 부모의 직업과 도시의 기반시설을 포기해야 하는 귀농·귀촌을 쉽게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 무렵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귀농·귀촌이 아니더라도 도시에서 장애인 복지공동체 모델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2년 부산도시농업시민협의회를 만들었고, 현재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공동대표까지 겸하고 있다. 2013년 3월 부산해마루학교가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운영위원장도 맡고 있다.
“특수학교마다 취업률을 자랑하는데 실상은 다른 경우가 많아요. 취직한 아이들 대부분 단순 가공과 조립만 합니다. 이런 작업은 발달장애의 재활은커녕 스트레스와 문제행동만 심화시켜요. 단순작업만 강요당하는 아이들의 삶은 피폐해집니다. 발달장애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어요. ‘10명이 있으면 10가지의 장애유형이 있고, 100명이 있으면 100가지의 장애유형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발달장애인 직업교육이 맞춤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죠. 치유형 도시농업에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물을 줘야 한다면 그 시간에 맞춰 불빛이나 ‘띵동’식의 알람 소리를 정할 수 있어요. 발달장애의 유형에 맞게 신호를 시각·청각화해서 포장이나 운송 작업도 가능하고, 조금 더 훈련하며 수확까지 가능합니다.”
장씨는 지난해부터 부산장애인부모회 회원들과 함께 ‘장애인·노인을 위한 도시텃밭’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장애인과 노인이 모여 사는 복지관·경로당 등의 옥상·실내·근교 등에 다양한 형태의 텃밭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희망제작소·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복지시설인 선아의집과 제일경로당 등에 옥상텃밭을 만들 수 있었다. 2012년부터 도시농업 사업을 펼쳐온 부산시도 올해부터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힐링 도시텃밭’을 새로 조성하기로 했다.(표 참조)
“장애인이 편한 세상은 노인도 편합니다. 장애인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지만, 어르신들도 잘 이용하시잖아요. 지적 장애인을 위한 치유형 도시텃밭은 치매가 있는 노인께 좋고, 신체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도시텃밭은 신체기능이 떨어진 노인의 운동용으로 좋습니다. 또 장애인 부모의 인생 이모작을 위해서라도 노인까지 개념을 확대하는 게 중요해요.”
장씨는 최근 장애인 복지공동체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해마루학교에서 가까운 철마면에 터 1만㎡(약 3000평)를 장기 임대한 뒤, 동금도시농업센터(facebook.com/dkcityfarm) 창립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연회비는 1계좌(33㎡) 15만원으로 임대료·유기퇴비 등 텃밭운영비로 사용한다. 이와 함께 장애인들이 도시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1만원의 행복텃밭’ 운동도 하고 있다.
“장애인 부모들이 흔히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런 소망을 더 이상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장애인 부모도 자식을 남겨두고 안심하고 죽을 수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동금도시농업센터에서는 발생하는 수입을 부모에게 환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적립하려고 합니다. 나중에 부모가 늙어서 직접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경제적 부담이 없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부산/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치유형 도시농업 가능성에 눈떠
장애인 편한 세상은 노인도 편해
복지관·경로당 옥상에 텃밭 조성 철마면 1만㎡ 부지에 공동체 준비
직업·주거·돌봄 동시에 해결
장애인 부모도 안심하고 눈감아야
부산진구 제일경로당 옥상텃밭.
장유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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