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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60살에 배운 사진…삶의 의미를 찍다

등록 2015-02-10 20:10

변용도씨는 “은퇴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라며 “새로운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또다른 인생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주최 제3회 8만시간디자인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 <몰입>은 얼음이 꽁꽁 언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꽃이 지고 난 연꽃을 촬영하는 시니어의 모습을 담았다. 변용도씨 제공
변용도씨는 “은퇴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라며 “새로운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또다른 인생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주최 제3회 8만시간디자인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 <몰입>은 얼음이 꽁꽁 언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꽃이 지고 난 연꽃을 촬영하는 시니어의 모습을 담았다. 변용도씨 제공
시니어 사진작가 변용도씨
“자, 다들 스마트폰을 꺼내 저를 찍어 보세요.” 지난달 29일 서울시 강남구 유어스테이지(yourstage.com) 회의실에 모인 10여명이 변용도(65)씨의 안내에 따라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들은 시니어 포털 누리집인 유어스테이지의 ‘디카와 놀자’ 회원들이다.

“그렇게 한 손으로 잡지 마시고, 두 손으로 양쪽 끝을 잡으세요. 그래야 사진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셔터 버튼을 바로 누르지 마시고, 화면 속의 제 얼굴을 먼저 터치해보세요. 초점이 잡히죠?” ‘디카와 놀자’는 매달 정기출사 모임을 나가고 있지만, 1월은 날씨가 추워 회장인 변씨가 실내 사진 강좌를 진행했다. 이날 첫 번째 강의 내용은 ‘스마트폰 잘 찍는 방법’이었다.

“이제 톱니바퀴 모양의 설정 버튼을 터치한 뒤에 화이트밸런스를 눌러보세요. 메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몇몇이 “형광등”이라고 대답했다. “맞습니다. 지금은 형광등이 켜진 실내에서 찍는 거니까 화이트밸런스를 형광등으로 설정해야 눈으로 보는 색감과 사진이 같아질 수 있습니다.” 2012년 말 ‘디카와 놀자’가 만들어질 때부터 활동해온 이강(71)씨가 “사진을 몇년째 찍고 있는데 스마트폰의 설정 메뉴는 처음 들어가 봤다”며 “고급 카메라랑 차이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기능이 있다”고 감탄했다.

보험사 해고 뒤 10년간 생계 급급
2007년 두 친구의 죽음에 충격
삶의 의미 찾아 ‘취미생활’ 시작 

사진교실 칭찬받고 공모전 도전
3년만에 국전 입선, 사진작가로
장애인·시니어에 재능 나눔도
“취미에 몰입하니 새 세상 보여”

‘디카와 놀자’를 이끌고 있는 변씨가 사진을 처음 배운 건 불과 5년 전이다. 2010년 유어스테이지에서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과 함께 좋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 구청의 무료 사진교실에 등록했다. 다른 수강생들은 수백만원짜리 고급 카메라를 가져오는데, 변씨는 집에 있던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비싼 카메라를 구입할 여유가 없었던 변씨는 괜히 주눅이 들고 자질도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점점 의욕을 잃어갔다. 그때 같이 사진을 배우던 여성 수강생의 “사진이 참 좋은데 사진작가에 도전해보라”는 한마디가 인생을 바꿔놓았다. 사진작가협회에 가입하려면 협회 사진강좌를 3회 이상 수료하고, 5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각종 사진공모전에 입선하면 2점 이상 받을 수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강남구 유어스테이지 회의실에서 변용도(가운데)씨가 ‘디카와 놀자’ 회원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강의하고 있다. 원낙연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시 강남구 유어스테이지 회의실에서 변용도(가운데)씨가 ‘디카와 놀자’ 회원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강의하고 있다. 원낙연 기자
그때부터 사진공모전에 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산책을 할 때도 술 마실 때도 카메라를 갖고 나갔다. 길을 건너는 도중 신호가 바뀌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다 운전사한테 욕을 먹기도 여러 번이었다. 심지어 파파라치로 오해를 받아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 노력은 2013년 결실을 맺었다. 국전인 제31회 대한민국사진대전 입선, 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주최 제3회 8만시간디자인공모전 우수상, 부산일보 주최 제21회 부일전국사진대전 우수상을 한꺼번에 받은 것이다. 점수는 이미 50점을 넘겨 사진작가증도 받았다.

“지난해 7월까지 4년 동안 찍은 사진을 세어보니 30만장이었습니다. 주위에서 ‘먹고살 만하니까 사진을 찍지’라고 하시는데 전혀 아닙니다. 지금 갖고 있는 카메라와 렌즈도 다 합쳐 50만원에 산 중고 캐논500D입니다. 노년의 취미활동은 자기 형편에 맞게 해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오래 못 갑니다.”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20년 동안 다니던 보험회사에서 1997년 말 갑작스레 해고를 당하면서 생계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만화방과 부대찌개 집을 차례로 열어봤지만 모두 힘겨웠다. 결국 장사를 접고 작은 회사의 조경관리사로 들어갔다. 말이 조경관리사지 청소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고 첫 월급은 40만원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점차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그 뒤로 드라마의 단역 배우, 꽃배달 서비스 등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먹고사는 데 급급하던 2007년 친구 두 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건강해 보이던 또래들이 심장마비 등으로 비명횡사하자 변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이룬 것도 없고 의미도 없더군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도 하자’는 결심을 했죠.”

2막 취미생활을 위한 변용도씨의 조언
2막 취미생활을 위한 변용도씨의 조언
마침 유어스테이지에서 ‘시니어 리더’라는 블로거를 모집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그가 응모했고 지금의 사진작가로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사진으로 한 달에 60만원 정도 벌고 있다. 각종 공모전 상금에다 의뢰받은 사진촬영과 사진강의, 개인지도 등으로 용돈 정도는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변씨는 “나에게 사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진지한 여가활동’”이라고 말했다.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부부의 결혼식 사진을 찍었고, 그룹홈 아이들의 나들이 사진도 찍어주었다. 자원봉사지만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사진 공부에 더 매달리게 되었다. ‘디카와 놀자’ 강의도 재능 나눔의 하나다.

“은퇴한 뒤엔 취미생활을 꼭 해야 합니다. 긴 여생을 재미있게 보내야죠. 하고 싶었던 일을 하세요. 그리고 취미에 머무르지 마세요. 작은 목표를 이룰 때마다 다음 목표를 정하세요. 자원봉사처럼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겁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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