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8단지 제2경로당 공동작업장에서 할머니들이 두루마리 위생봉투를 포장하고 있다. 성북구 제공
서울 성북구의 경로당 공동작업장
길음뉴타운 임대아파트 할머니들
하루 2시간씩 위생장갑·봉투 포장
월급 20만원에 병원 가고 용돈까지
“출퇴근 쉽고 따뜻한 방이라 좋아”
성북구·복지관·마을기업 협업
주민센터에 무인발송택배함 설치
택배 포장으로 새 일자리 창출
길음뉴타운 임대아파트 할머니들
하루 2시간씩 위생장갑·봉투 포장
월급 20만원에 병원 가고 용돈까지
“출퇴근 쉽고 따뜻한 방이라 좋아”
성북구·복지관·마을기업 협업
주민센터에 무인발송택배함 설치
택배 포장으로 새 일자리 창출
지난달 27일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8단지 825동 바로 앞에 있는 제2경로당에 들어섰다. 벽면에 위생장갑으로 가득 찬 종이상자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이무자(69) 경로당 회장은 “우리 할머니들이 하나하나 포장한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오후 1시가 되자 앉은뱅이밥상 앞으로 할머니 6명이 모여들었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두루마리 위생봉투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둘둘 말린 위생봉투에 상표 등이 인쇄된 종이와 포장지를 감싼 뒤 양옆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잽싸지는 않지만 꼼꼼한 손길로 하나씩 완성해갔다. 이렇게 오후 3시까지 두 시간씩 한 주에 3~4번 일하고 있다. 한 달에 32시간을 일하고 받는 기본급이 20만원이다. “월급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 회장은 “집 바로 앞이라 출퇴근에 돈도 안 들고, 추운 날씨에 길에서 폐지 줍는 것보다 따뜻한 방에 앉아 여럿이 이야기 나누며 일하는 게 훨씬 낫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길음뉴타운 8단지 제2경로당에 공동작업장이 들어선 건 지난해 11월. 성북구가 2013년 7월 석관동 경로당에 이어 두 번째로 지정한 경로당 공동작업장이다. 윤희숙 성북구청 어르신정책팀장은 “경로당 안에 공동작업장을 만든 건 서울에서는 성북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로당이 공동작업장이 된 건 참 운이 좋았어요. 원래 8단지에는 제1경로당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제1경로당 회원들이 임대아파트인 825동 주민은 비회원이라고 우리한테 회장 투표권도 안 주는 거예요. 관리소장한테 하소연했더니 825동 바로 앞에 공간이 있다고 따로 경로당을 열어주셨어요. 그런데 경로당 지원프로그램을 신청하려면 매일 나오는 회원이 15명은 넘어야 하는데, 우리는 규모가 작아서 신청 자격이 안 된대요. 마침 공동작업장은 상관이 없다 해서 신청했는데 딱 된 거 있죠.”(이무자 회장)
경로당 회원 중에서 참여자를 모집해 6명을 뽑았다. 6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최고령자인 차부운(82) 할머니는 월급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혈압이 높아서 상계동에 있는 종합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고, 무릎이 아플 때마다 정형외과도 방문한다. 병원비도 문제지만 성치 않은 다리로 오가는 게 늘 힘겨웠다. 첫 월급을 받고 마음 편히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녀왔다.
“첫 월급을 받고 며칠 뒤에 대학 졸업반인 손자가 마침 집에 왔어요. 큰마음 먹고 용돈으로 2만원을 줬어요. 손자가 한사코 안 받겠다고 사양을 하기에 ‘너도 아르바이트하고 첫 월급 받았을 때 할머니한테 용돈을 주지 않았느냐. 할머니가 받은 첫 월급이니 그냥 받으라’고 그랬죠. 그런데 2만원을 든 내 손이 떨리긴 하더라고.”(차부운 할머니)
공동작업장이 생기기 전에는 다들 경로당과 병원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게 되면서 무엇보다 출근이 최우선이 되었다. 일도 신이 나서 한다. 어떤 날은 한 조의 작업 목표가 위생장갑 50팩을 포장하는 것이었는데, 짝꿍과 쿵작거리다 보니 어느덧 200팩을 넘긴 적도 있었다. 이렇게 작업량을 초과 달성하면 기본급 외에 성과급을 더 받게 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6명이 사이좋게 일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작업 물량에 욕심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박희원 길음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할머니마다 일의 속도가 제각각인데, 가장 느린 할머니에 맞춰 일을 하시고 마음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걸 보면 삶의 연륜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길음뉴타운 공동작업장은 성북구, 길음사회복지관, 마을기업인 ㈜살기좋은마을이 함께 협력해서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기본급은 보건복지부의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을 통해 성북구가 지급하고, 운영비와 성과급은 마을기업에서 지급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택배 포장이라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길음1동 주민센터 별관에 무인발송택배함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이곳에 택배를 맡기면서 포장작업을 따로 신청하면 공동작업장에서 맡아서 하고 있다. 포장비는 우체국과 비슷하게 책정했다.
또한 무인발송택배함과 공동작업장 사이는 ‘길음실버메신저’라는 어르신들이 오가며 택배를 전한다. 이들은 2012년부터 마을택배배송 일자리를 진행해 왔다. 택배회사에서 마을의 택배집하소에 물건을 쌓아두면 분류해 집집마다 배달하는 일이다. 2013년부터 길음실버메신저로 활동해온 김길웅(74)씨는 “하루에 한 사람이 기본으로 날라야 하는 물량이 41개인데 보통 할아버지들은 3시간에서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그렇게 한 주에 4일만 일하면 기본급만 38만원을 받는다. 나처럼 체력이 되는 사람은 더 일하고 성과급까지 합쳐 월 100만원 넘게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길음실버메신저 김정안(74)씨는 “택배라는 업무가 너무 고되다는 선입견 때문에 다른 할아버지들의 참여가 부진해서 안타깝다. 가끔 절임배추같이 무거운 게 들어올 때도 있지만 그렇게 자주 있지 않다. 택배를 하다 보면 주민들과 인사도 나누는 등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게 되고 글자와 숫자도 읽어야 해서 치매에도 좋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같은 날 할머니들과 길음실버메신저 할아버지들이 길음1동 주민센터 별관에 설치된 무인발송택배함 앞에 모였다. 할머니들은 보물 1호인 월급통장을 두 손에 꼭 쥐고 있다. 성북구 제공
올해부터 확대된 어르신 사회활동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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